식판은 아무 말 없이 말한다

- 돌아온 한 끼 앞에서 멈추는 시간

by진공

부글부글, 삑삑삑, 윙윙윙. 죽솥에서는 기포가 터지고 압력밥솥은 신호음을 낸다. 환풍기가 뜨거운 공기와 수증기를 빨아들이는 동안 작업대에는 식판이 늘어선다. 병원 주방의 아침은 대개 이런 소리 속에서 시작된다.

반찬을 나누고 밥과 국을 담는다. 이름표를 확인한 식판은 배식차에 실려 병동으로 올라간다. 주방을 정리하고 나면 얼마 뒤 그 식판들이 돌아온다. 나갈 때 담았던 음식은 줄어 있거나 그대로 남아 있다. 가지런했던 그릇은 다른 모습으로 놓여 있다.


처음에는 돌아온 식판이 곧 씻어야 할 식기였다. 남은 음식을 비우고 그릇을 모아 세척해야 했다. 빨리 마쳐야 다음 준비를 할 수 있었다. 같은 시간에 보내고 같은 시간에 받아 씻다 보니 내가 시계를 보는지 시계가 내 동선을 외우는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이른 시간부터 무거운 솥과 식기를 옮기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일을 익히는 동안에는 내 몸이 힘들다는 사실이 가장 또렷했다. 환자에게 식사를 보낸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루가 끝나면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지가 먼저 떠올랐다.


오래 일한 조리사가 어느 날 말했다.


“돈만 보고 하면 이 일 오래 못해요. 그래도 환자들 생각이 있으니까 하는 거죠. 한 끼라도 집밥처럼 드시게 하자는 마음이 있으니까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대꾸하지 못했다. 내게 생계는 중요했다. 월급을 받기 위해 출근했고 일을 마치면 쉬고 싶었다. 환자를 생각한다는 마음이 내 피로와 어떻게 함께 있을 수 있는지 그때는 분명하게 알지 못했다.

그 말은 일을 하는 동안 조금씩 돌아왔다. 특히 병동에서 내려온 식판 앞에서 그랬다.


어떤 날은 음식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다. 죽은 두어 숟갈 줄었고 국은 식어 있다. 반찬에는 손댄 흔적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 식판을 비우다 보면 누가 드셨는지 이름표를 다시 보게 된다.


왜 많이 남았을까. 몸이 불편했을까. 입맛에 맞지 않았을까. 음식의 상태는 어땠을까.


답을 알 수는 없지만 질문은 생긴다. 내가 준비한 음식도 돌아보게 된다. 반찬은 지정된 형태로 나갔는지, 죽의 농도는 알맞았는지, 식사를 보내기 전에 놓친 것은 없었는지 생각한다. 먹지 못한 이유가 음식에 있다고 단정할 수 없듯, 음식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먼저 결론 내릴 수도 없다.


죽과 국과 반찬이 섞여 돌아오는 식판도 있다. 식사하는 동안 그렇게 되었는지, 그릇을 정리하며 섞였는지는 모른다. 식판만 보고 환자가 어떻게 먹었는지 설명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가 보내고 다시 받기까지 내가 보지 못한 시간이 있었다는 것을 느낀다.


거의 비어 있는 식판을 받으면 마음이 놓인다. 오늘은 좀 드셨구나 생각한다. 음식을 만든 사람으로서 반가운 마음이 든다.


나는 일을 하며 보이는 것과 짐작하는 것을 구별하게 되었다. 남은 양은 볼 수 있다. 남긴 이유는 물어보거나 다른 이야기를 들어야 알 수 있다. 돌아온 식판은 그 자체로 완전한 답은 아니었다. 다음에 무엇을 살펴야 할지 생각하게 하는 흔적이었다.


나갈 때는 음식이 제대로 담겼는지 확인했다. 돌아올 때는 그 음식이 얼마나 남았는지 보았다. 두 번의 확인 사이에 한 사람이 식사한 시간이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조리사의 일이 음식을 완성해 내보내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돌아온 한 끼를 살피고 다음 준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까지 이어졌다.


주방에서 맡은 일은 지정된 식이에 맞는 음식을 준비하고, 정해진 양을 담고, 가능한 한 좋은 상태로 보내는 것이었다.


그 안에는 세심하게 해야 할 일이 많았다. 다짐찬은 필요한 형태에 맞게 준비하고, 죽은 정해진 농도를 살펴야 했다. 이름표와 음식을 맞추고 빠진 것이 없는지 확인해야 했다. 따뜻하게 보내야 할 음식은 배식 시간에 맞춰 담아야 했다.


좋은 마음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었다. 쌀과 물의 비율을 틀려 놓고 정성을 많이 넣었다고 할 수는 없다. 마음이 음식에 닿으려면 손이 제 일을 해야 했다.


오래 일한 조리사의 말도 그제야 조금 구체적으로 들렸다. 환자를 생각한다는 것은 매번 특별한 감정을 품는 일만은 아니었다. 피곤해도 식이를 확인하고, 익숙한 음식도 상태를 살피고, 돌아온 식판을 무심히 비우기 전에 한 번 보는 일이 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모든 식판 앞에 오래 머물지는 못한다. 쌓인 식기를 보면 마음이 급해지고 다음 작업부터 생각나는 날도 많다. 한꺼번에 들어오는 식판을 처리하다 보면 누구의 것이었는지 확인하지 못한 채 지나가기도 한다.

다만 눈에 들어오는 식판이 있다. 거의 손대지 않은 음식, 평소보다 많이 남은 국, 말끔하게 비워진 그릇 앞에서 잠깐 멈춘다. 그 순간 음식의 양 뒤에 먹는 사람이 떠오른다.


그분이 주방에서 누가 음식을 만들었는지 아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도 그분의 하루를 다 알지 못한다. 서로 모르는 부분이 많은 채로 한 끼를 준비하고 받아 든다.


나는 생계를 위해 일한다. 그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지금은 거기에 내가 만든 음식을 누군가 어떻게 먹었을까 궁금해하는 마음이 함께 있다. 돌아온 식판을 살피는 동안 생계를 위한 일이 다른 사람의 식사와 이어져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빈 식판은 씻겨 다시 쌓인다. 다음 끼니가 되면 그 위에 새로 만든 음식이 놓일 것이다. 같은 그릇을 쓰고 비슷한 일을 반복하지만 앞서 돌아온 한 끼를 없었던 일처럼 넘기고 싶지는 않다.


식판은 설명하지 않는다.


나는 남은 음식을 한 번 더 살핀 뒤 다음 식사를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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