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이 없던 두 아버지에 대하여
“누나, 아버지가 나한테 해준 게 뭐 있는데…….”
병원 입구에 잠깐 나와 있던 순간이었다. 낯선 사람의 말인데도 한 문장이 선명하게 귀에 꽂혔다. 고개를 돌리니 중년의 남녀가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말을 꺼낸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얼른 시선을 피했고 남자도 고개를 숙였다. 뒤에도 무슨 말인가가 이어졌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이미 한 문장이 나머지 말을 모두 밀어내고 있었다.
아버지가 나한테 해준 게 뭐 있는데.
내가 오래전 아버지에게 했던 말이었다. 거의 육십 년을 살아오면서 가장 후회하는 말을 병원 입구에서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다시 들었다.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이었다. 잠시 집에 내려와 있던 어느 날, 아버지는 낮부터 누군가와 술을 마셨다. 몸을 제대로 가누기 어려울 만큼 취했다. 가게에 계셔서는 장사에 방해가 될 것 같아 내가 모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다시 가게로 가겠다고 했고 나는 막았다. 기어이 나가려는 아버지와 실랑이를 벌이다 말이 튀어나왔다.
“아버지가 저에게 해준 게 뭐 있는데요.”
아버지는 화를 내지 않았다. 나를 꾸짖지도 않았다.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갔고 한동안 나오지 않았다. 그날 무슨 말을 더 주고받았는지는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아버지의 침묵만 남았다.
당시 나는 아버지에게 직접 용돈을 받아본 기억이 거의 없었다. 용돈도 학비도 어머니의 손을 거쳐 받았다. 스무 살의 내 눈에는 돈을 건네는 사람이 나를 먹이고 공부시키는 사람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어머니가 감당한 수고는 물론이고, 그 돈이 마련되기까지 아버지가 무엇을 했는지도 제대로 살펴본 적이 없었다. 필요한 돈을 받는 일에는 익숙했지만 그 돈을 마련하는 생활은 몰랐다.
세월이 흘러 내가 아버지가 되었다. 나 역시 아이들에게 직접 용돈을 주는 일이 거의 없다. 번 돈을 아내의 계좌로 보내면 아내가 생활비를 관리하고 아이들에게 필요한 돈을 준다. 그 사실을 생각하다 오래전 내 말 앞에서 멈춘 적이 있다. 아이들이 지금 내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어떨까.
“아빠는 우리에게 해준 게 뭐 있는데요.”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두려웠다. 아이들 때문에 마음 졸였던 시간과 말없이 감당했다고 여긴 걱정들이 한 문장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게 될 것 같았다. 그때야 방으로 들어가던 아버지의 등을 다시 떠올렸다. 그날 아버지가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내가 내뱉은 말이 얼마나 넓은 시간을 지워 버리는 말이었는지 뒤늦게 짐작하게 되었다.
병원 입구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이 누구인지도 나중에 우연히 알게 되었다. 내가 오랫동안 식사를 가져다드리던 환자의 자녀들이었다. 그분은 내가 병원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입원했다. 몇 달 동안 식판을 건네면서도 목소리를 거의 들어보지 못해 말을 하기 어려운 분인가 생각했다.
어느 날 호박죽을 가져다드리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또렷한 목소리가 들렸다.
“더 주세요.”
나는 뒤를 돌아봤다. 그분에게서 처음 들은 말이었다. 그 뒤에야 호박죽을 무척 좋아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다른 이야기는 거의 나누지 않았지만 호박죽이 나오는 날이면 그분이 떠올랐다.
어느 날에는 평소보다 큰 대접에 호박죽을 한가득 담았다. 옆에서 동료가 말했다.
“조쌤, 그분 대접죽 아니고 일반죽인데요.”
나도 알고 있었다. 정해진 식이와 양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그날은 더 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먼저 움직였다. 환자에게 필요한 양과 내가 넉넉히 담고 싶은 양을 구별하지 못했다.
그분의 호박죽을 담을 때마다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버지는 어떤 음식을 좋아했을까. 무엇을 한 번 더 먹고 싶어 했을까. 함께 밥을 먹은 날은 많았는데 선명하게 떠오르는 음식이 없었다. 눈앞의 환자에게 더 담아드리고 싶은 마음에는 아버지에게 그러지 못했다는 후회도 섞여 있었다. 그분이 내 아버지는 아닌데, 나는 그릇 하나에 오래된 마음까지 얹으려 했다.
말이 거의 없던 환자는 먹고 싶은 것을 내게 말해 주었다. 아버지에게는 내가 먼저 물어볼 수 있었다.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요즘 무엇이 힘든지, 무슨 생각을 하며 지내는지. 묻지 않은 질문들이 뒤늦게 떠올랐다.
아버지는 원래 말이 적었다. 자신의 속마음을 가족에게 길게 털어놓는 사람이 아니었다. 술이 들어가면 평소 하지 않던 말을 꺼내기도 했다. 음정이 맞지 않는 노래를 부르고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중얼거렸다. 어린 나는 그것을 주사라고만 생각했다. 듣기 싫어했고 굳이 알아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 말들이 무엇이었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다만 당시의 나는 아버지가 말하지 않은 것을 궁금해하지 않았고, 내가 듣기 싫어하는 모습 너머를 살피려 하지 않았다. 이제는 물을 사람이 없다.
병원 입구에서 들었던 남자의 말도 그 집안의 사정을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그 아버지가 자녀에게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하지 못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아들에게는 내가 모르는 상처가 있을 수도 있다. 내가 아버지에게 했던 말을 후회한다고 해서 그 남자의 말까지 같은 후회로 끝나야 하는 것은 아니다.
병원 입구에서 들은 한마디는 그 집안의 답을 알려 주지 않았다. 오래전의 나를 불러냈을 뿐이다.
아버지를 생각할수록 정작 돌아보게 되는 것은 지금의 나다. 힘든 일이 생기면 가족에게 말하기보다 혼자 삼킨 적이 많았다.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언젠가는 이해하겠지 여겼다. 가족에게 필요한 것을 마련하면 내 몫을 다한 것이라고 생각한 날도 있었다. 설명하는 일로 밥을 벌어 온 사람이 정작 제 마음 앞에서는 말수가 줄었다.
아버지를 닮지 않겠다고 생각하면서 그의 침묵까지 닮아가고 있었다. 내가 감당한 것들을 아이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면서도, 무엇을 걱정하고 어디에서 힘들었는지는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내가 아버지의 마음을 짐작하듯 아이들도 언젠가 내 등을 떠올리며 빈칸을 채워야 할지 모른다.
침묵도 유산이 된다.
그 유산만큼은 그대로 물려주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내가 해준 일을 늘어놓으려는 것은 아니다. 내가 보지 못했던 아버지의 수고가 있었다면, 내 아이들에게도 내가 미처 보지 못한 시간이 있을 것이다. 내 마음을 말하는 만큼 그들의 이야기도 들어야 한다.
나는 가까운 사람에게 속마음을 꺼내는 일이 서툴러 글을 쓴다. 무엇을 해주었는지 증명하기보다 어떤 선택을 했고 무엇을 후회하는지 숨기지 않으려고 쓴다. 아이들이 나를 이해하는 데 내 침묵만을 단서로 남겨 두고 싶지 않다.
아버지에게 아들로 다시 살아갈 시간은 없다. 내 아이들의 아버지로 살아갈 시간은 아직 남아 있다. 오래전에는 아버지가 무엇을 해주었느냐고 물었다. 이제는 내가 무엇을 보지 못했고 무엇을 묻지 않았는지 돌아본다.
그 답을 아이들에게 물려줄 숙제로 남기지 않으려 한다. 고마우면 고맙다고 말하고, 미안하면 무엇이 미안한지 이야기하려 한다. 입으로 꺼내기 어려운 날에는 글로라도 건네려 한다.
이제는 보이지 않게 사랑하지 않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