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가 팔던 국수와 내가 삶는 국수 사이
나는 국수를 싫어하던 사람이었다. 국수 냄새만 맡아도 마음 한쪽이 먼저 굳어졌다. 배고픔보다 가난이 떠오르는 음식이 있었다면 내게는 국수가 그랬다. 그런 내가 지금은 요양병원 주방에서 국수를 삶는다.
수요일이면 병동에서 익숙한 물음이 들려온다.
“오늘 국수 나와요?”
환자들의 얼굴도 조금씩 풀린다고 한다. 병원에서는 평범한 점심 메뉴 하나가 기다릴 만한 일이 되기도 한다. 그 소식에 주방은 분주해진다. 국수를 먹지 못하는 환자의 죽을 따로 끓이고 밥도 준비한다. 영양사까지 조리대 앞에 선다. 사람들의 동선이 겹치고 식판 배열이 달라진다. 잠깐 한눈을 팔면 국수보다 일이 먼저 불어날 판이다.
큰 솥의 물이 끓기 시작한다. 국숫발을 한 움큼 잡아 손목을 돌려 넣으면 하얀 면이 물속으로 퍼진다. 솥이 금세 거품을 밀어 올린다. 넘치려 하면 찬물을 붓고 다시 끓기를 기다린다. 익은 면을 건져 찬물로 옮기면 이번에는 두 손이 바빠진다.
처음 국수를 삶던 날에는 면이 끊어질까 싶어 조심스럽게 주물렀다. 옆에서 한마디가 날아왔다.
“그렇게 하면 안 돼. 빡빡 문질러야 윤기가 나.”
두 손에 힘을 주었다. 손가락 사이로 국숫발이 빠져나갔다가 다시 모였다. 물을 갈아 가며 씻자 미끈거리던 면이 매끄럽게 풀렸다. 지금도 찬물 속에 손을 넣을 때면 그 말을 떠올린다. 그 손끝에서 오래전 어머니의 일이 생각난다.
어머니는 부평동 깡통골목시장에서 국수를 팔았다. 리어카 위에는 육수통과 삶은 국수, 양념통이 놓여 있었다. 아침 일찍 시작한 장사는 밤늦도록 이어졌다. 어린 나는 그곳에서 국수가 그릇에 담기고 손님들 앞에 놓이는 모습을 수도 없이 보았다.
시장에 노란색 정비 트럭이 나타나는 날이 있었다. 누군가 “차 왔다”고 외치면 사람들이 물건을 챙기고 좌판을 접었다. 어머니는 국수통을 안고 뛰었다. 나는 그 뒤를 따라 뛰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도 멈출 수 없었다.
트럭이 사라지면 돌아왔다. 다시 자리를 펴고 국수통을 올렸다. 조금 전까지 달아나던 어머니가 손님을 맞아 국수를 말았다. 몇 번은 미처 피하지 못했다. 리어카가 트럭에 실려 갔고, 나중에 찾아왔을 때는 어딘가 찌그러져 있었다. 바퀴가 상하거나 판자가 부서지기도 했다. 어머니는 망가진 리어카 앞에 한동안 주저앉아 있었다.
어린 나는 슈퍼맨이 나타나 저 노란차를 없애 달라고 기도했다. 내가 아는 힘센 사람 가운데 어머니를 도울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은 그뿐이었다.
그 무렵부터 국수가 싫어졌다. 냄새를 맡으면 시장 바닥과 달아나던 어머니, 찌그러진 리어카가 함께 떠올랐다. 우리 집 형편이 냄새로 드러나는 것 같았다. 가능하면 먹지 않았고 가까이하고 싶지도 않았다. 어머니가 그 국수를 팔아 우리를 먹인다는 사실과 내가 국수를 부끄러워한다는 마음이 어린 내 안에 함께 있었다.
오십 대가 되어 그 국수를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내가 솥 앞에 서 있었다. 물이 끓기를 기다리고, 넘치지 않게 살피고, 면을 건져 씻었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의 식사를 준비하려니 잠시도 손을 놓을 수 없었다. 손님 앞에 놓인 국수 한 그릇만 보던 때에는 알지 못했던 일이 그 앞뒤에 이어져 있었다.
어머니도 국수를 삶고 그릇을 씻었을 것이다. 육수통을 올리고 리어카를 밀고, 장사가 끝나면 남은 것을 정리했을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어머니는 주로 달아나거나 주저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그 장면들 사이에서 어머니는 계속 일하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손을 수없이 보았다. 그 손이 하루 동안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지는 보지 못했다.
찬물 속에서 국수를 풀다가 어머니가 다시 손님을 맞던 장면을 떠올린다. 트럭이 사라졌다고 놀란 마음까지 금세 가라앉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국수를 말아야 했다. 어린 내게는 도망쳐야 하는 일이 너무 컸고, 이제 국수를 삶는 내게는 돌아와 다시 장사하던 일이 오래 남는다.
어머니는 말년에 치매를 앓으며 오랫동안 요양병원에서 지냈다. 그곳에서 국수를 드신 적이 있는지, 국수 냄새에 시장을 떠올린 적이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평생 다른 사람의 끼니를 마련하던 어머니도 그 시절에는 누군가가 준비한 식사를 받아야 했다.
지금 나는 그런 식사를 만드는 사람으로 일한다. 어머니가 머물던 병원에서 누가 어떤 마음으로 밥을 지었는지는 모른다. 내가 직접 챙기지 못한 끼니에도 누군가는 쌀을 씻고 솥 앞에 섰을 것이다. 그 생각은 멀리 가지 않고 지금 내 손으로 돌아온다. 오늘 준비할 국수가 아직 남아 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면 씻어 놓은 국수를 그릇에 나누어 담는다. 육수를 붓고 고명을 얹는다. 완성된 그릇들이 차례로 배식차에 오른다. 아침부터 국수가 나오는지 묻던 사람들에게 갈 한 끼다.
어릴 때는 이 냄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지금도 국수 냄새를 맡으면 노란 트럭과 찌그러진 리어카가 떠오른다. 그 기억이 따뜻하게 바뀐 것은 아니다. 다만 거기에 다른 장면이 더해졌다. 돌아온 자리에 국수통을 올리고, 손님을 향해 그릇을 내밀던 어머니의 손이다.
오늘도 수요일이다. 솥에서는 물이 끓고 나는 다음 국수를 넣는다. 잠시 뒤 찬물에 두 손을 담가 면을 씻을 것이다.
오래전 내가 외면했던 냄새 속에서 이제야 어머니가 하던 일을 조금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