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씩 빌린 이름

쑥갓

by서람


“고추냉이와 쑥갓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맛도 아니고 생긴 모습도 아니다. ‘오리너구리’라는 동물 이름처럼, 둘 다 익숙한 식물의 명칭을 끌어와 조합한 이름이다. 옛사람들은 낯선 식물과 마주했을 때, 새 이름을 짓기보다 익숙한 식물의 이름을 합쳐 그 특징을 드러내기도 했다.

흔히 ‘와사비’라 불리며 비교적 최근에 재배하기 시작한 고추냉이와 달리, 쑥갓은 오래전부터 우리 밥상에 있었다. 어릴 적 나는 밥상 위에 마주한 쑥갓을 좋아하지 않았다. 소쿠리에 상추와 함께 담긴 쑥갓을 철저히 외면했고, 찌개나 탕 위에 얹힌 생쑥갓은 젓가락으로 걷어냈다. 아이의 입맛에는 특유의 강렬한 향내가 낯설고 거북했기 때문이다.


코끝을 자극하던 그 향이 생존을 위한 방어의 흔적이면서 고유의 정체성이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나이가 들면서 비린내에 민감해졌고, 음식 맛을 결정하는 데 후각이 얼마나 큰 몫을 하는지도 몸으로 알게 되었다. 그제야 어린 시절 거북하게 느끼던 쑥갓의 향이 다르게 느껴졌다.

쑥갓은 참 묘한 채소다. 이름만 들으면 쑥과 갓의 중간쯤 되는 식물처럼 느껴져 '쑥을 닮은 갓'이라는 뜻으로 해석하겠지만, 식물학적 잣대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쑥은 국화과(科)인 데 반해 갓은 배추나 무에 가까운 십자화과다. 쑥갓이 국화과이므로 일단 갓과는 계통이 다르다. 더구나 같은 국화과 안에서도 쑥과 쑥갓은 서로 다른 속(屬)에 속한다. 형태는 쑥을 닮고 향은 갓을 떠올리게 할 뿐, 쑥갓은 결코 쑥도 아니고 갓도 아닌 독립된 존재인 셈이다.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한 쑥갓의 생존 전략은 고도화되어 있다. 잎은 쑥처럼 갈래갈래 찢어져 있다. 표면적을 잘게 나눈 그 형태 덕분에 바람은 잎 사이로 빠져나가고, 줄기는 좀처럼 꺾이지 않는다. 기온이 떨어지면 세포 내 당의 농도를 높여 얼지 않고 버티며, 특유의 강한 향 성분을 더 응축시킨다. 늦가을 쑥갓의 잎이 더 달고 진해지는 이유다.


스스로 지키려 발산한 그 독한 기운은 역설적으로 인간에게 청량한 풍미라는 선물이 되었다. 쑥갓은 음식의 주재료는 아니지만, 단 몇 줄기만으로도 요리 전체의 판세를 바꿀 수 있다. 특유의 향이 잡내를 잡고 맛의 균형을 세운다. 많이 들어가야 존재감을 드러내는 채소가 아니라, 적은 양으로도 음식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이 흥미로운 식물을 바라보는 시선도 문화에 따라 갈렸다. 쑥갓의 원산지는 지중해다. 제 고향에서는 채소가 되기보다 꽃으로 먼저 만났다. 노란 국화를 닮은 꽃이 아름다워 ‘왕관을 닮은 데이지(Crown daisy)’라 부르며 정원의 관상용으로 길렀다. 반면 동아시아에서는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보다 잎이 품은 내면, 즉 향에 주목하여 찬거리가 되었다. 같은 식물을 두고도 무엇을 먼저 보았느냐에 따라 그 쓰임이 달라진 셈이다.

우리는 살아가며 종종 누구를 닮아야 한다고 배운다. 부모의 기대, 스승의 가르침, 세상이 정해놓은 모범 답안을 닮아가느라 애를 쓴다. 그러나 쑥갓은 쑥을 닮았고, 갓의 이름을 빌렸지만, 어느 쪽도 아니다. 그 사실이 순간 내 삶의 모습처럼 느껴진다. 나 역시 살아오면서 누군가를 닮고 싶어 했다. 글을 쓰기 시작한 초창기에는 특정 작가의 문장을 필사하며 그 작가처럼 쓰고 싶었다. 화려한 수사와 대조법을 구사하려고 애를 쓰기도 했다. 요즘도 원고를 쓰다가 문득 멈춰,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문장을 무작정 닮아가고 있는지, 오롯이 내 문장을 쓰고 있는지 돌아보곤 한다.


이름은 빌릴 수 있어도, 향기까지 빌릴 수는 없다. 찬 바람이 불수록 쑥갓의 향은 짙어진다. 이름은 반씩 빌렸어도, 향기만큼은 온전히 제 것이었다.


쑥갓은 잎채소로 전해져 밥상의 한 자리를 얻었다. 탕의 고명쯤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알고 보면 영양도 만만치 않다. 베타카로틴과 칼슘, 철분, 칼륨 등이 풍부하다. 독특한 향은 주로 휘발성 성분에서 비롯되므로 요리에 넣어 오래 끓이기보다 마지막에 넣어 향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상추처럼 어린잎과 줄기를 자르면 곁가지가 자라 여러 번 수확할 수 있다. 꽃이 상당히 예쁘지만, 꽃대가 올라가면 질겨지고 맛이 떨어져 개화 전 수확한다. 도토리무침, 칼국수, 우동처럼 가볍게 먹는 요리에도 쓰이며 강한 향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는 경향이 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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