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욱
"또 아욱국이야?"
며칠째 밥상에 올라온 아욱국을 마주한 나의 투정 섞인 말이었다. 아욱국은 어린 시절 어머니가 유난히 자주 끓여주셨던 단골 메뉴다. 당시 우리 집 밥상은 소박했지만, 국만큼은 매끼 거르는 법이 없었다. 국 중에서도 아욱국은 특히나 자주 만났다.
식재료가 귀하던 시대에 국은 음식의 양을 늘림으로써 온 가족의 배를 불릴 수 있었던 지혜로운 선택이었다. 또한 늘 먹던 잡곡밥의 거친 식감이 목구멍을 부드럽게 넘어가도록 돕는 윤활유이기도 했다. 부족했던 한 끼 식사를 가장 풍성하게 완성해 주던 든든한 지원군, 그것이 바로 그 시절 국물의 역할이었다.
오늘날 우리 집 식탁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국이 오르는 일은 드물어졌다. 잡곡밥 대신 부드러운 흰쌀밥이 한몫했고, 무엇보다 저염식 건강 습관이 일상에 스며들면서 국물을 덜 찾게 되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자주 밥상에 올랐던 아욱국에는 그 시절의 가난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 가난을 견디게 한 음식이기도 했다.
아욱은 우리의 음식문화에서 단조로운 모습으로 자리해 온 채소다. 내 기억 속에서도 된장을 풀어서 끓인 아욱국이 전부였다. 구수한 국물에서 느껴지는 그 감칠맛은 익숙하고 편안하다. 그러나 그 익숙함이 오히려 아욱의 가능성을 오래 가두어 두었다고 볼 수 있다.
아욱잎을 만져보면 미끈한 점액질이 손끝에 남는다. 제 몸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낸 천연 방어막이다. 국물 속에서는 이것이 감칠맛을 내는 비결이 되지만, 다르게 조리한 음식에서는 낯선 식감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아욱을 오래 끓이고, 국물 속에만 머물게 했는지도 모른다.
아욱이 국거리만 되려고 그토록 애써 자랐을 리는 없지만, 우리는 그렇게 불러왔고 오래도록 믿어왔을 뿐이다. 필요에 따라 선택한 방식이 어느 순간 기준이 되고, 기준은 곧 한계를 만든다. 우리는 그 한계를 본질이라고 착각하며 사물을 바라보는 데 익숙해진 것이다.
아욱은 국거리로만 쓰이기엔 억울할 만큼 쓰임새가 넓다. 중국 고전에서는 ‘오채(五菜)’의 하나로 불리며 귀하게 여겼고, 서양에서도 아욱과 같은 속(屬)에 해당하는 ‘말로우’를 샐러드와 수프, 은은한 차로 즐겨왔다. 우리 역시 조금만 시선을 달리하면 나물이나 쌈으로 새로운 맛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다. 국물은 아욱이 잘 어울리는 자리였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이쯤에서 슬며시 내 안을 들여다본다. 아욱을 하나의 쓰임에 가두어 바라보았던 것처럼, 나 역시 스스로 하나의 자리에 묶어두고 있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내 강의 스타일은 원래 이래, 문제 될 것이 없어’, ‘이 나이에 뭘 새로 시작하겠어’, ‘나는 이 정도 일만 할 수 있는 사람이야’라며 익숙한 틀을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 익숙함을 택하는 동안, 미처 꺼내 보지 못한 가능성도 자연스레 갇혀있었다.
펄펄 끓는 국물 속에서 우리가 마주해 온 아욱의 모습은 분명 그 자체로 충분했다. 다만 오랫동안 그 자리만을 유일한 자리라고 믿은 것은 우리였다. 아욱이 국물 밖으로 나와 싱그러운 나물이 되고 샐러드가 될 수 있듯이, 우리 삶의 레시피도 조금 더 유연해질 수 있지 않을까.
대단한 도전이나 변신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오늘 저녁, 늘 먹던 방식 대신 아욱잎을 살짝 데쳐 호박잎처럼 쌈으로 마주해 보는 것이다. 이런 작은 시도면 충분하다.
‘이것 봐라, 아욱이 이런 맛도 있었네!’ 하고 미소 짓는 순간, 국물 밖으로 나온 것은 아욱이 아니라 내 생각이었다.
아욱은 아욱과(科)이며 꽃잎이 보통 5장이다. 식용, 약용, 섬유, 관상용까지 실생활에서 폭넓게 활용하는 식물 대가족이다. 그중 목화에서는 솜을 얻고 황마는 포대나 밧줄을 만든다. 무궁화는 대한민국의 국화로, 부용꽃은 크고 화려하다. 높게 자란 접시꽃은 다양한 색깔의 꽃을 피우고 어린 왕자로 유명세를 치른 바오밥나무도 한 집안이다.
‘가을 아욱국은 문 걸어 잠그고 먹는다’와 ‘가을 아욱국은 사위만 준다’라는 속담에서 나타나듯 가을의 서늘한 기운을 머금은 아욱은 보약 대접을 받았다. 말린 건아욱은 맛이 더 응축되어 된장과 찰떡궁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