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
“아이고 예뻐라 이 손 좀 봐라. 꼭 고사리손 같네”
아기가 살짝 주먹 쥔 손을 바라보며 사람들이 감탄해서 쏟아낸 말이다.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는 장면이다. 이때 ‘고사리손’은 단순히 크기가 작다는 의미를 넘어 생태적 특징까지 담고 있다. 고사리는 어린순이 올라올 때 연약한 생장점 보호를 위해 끝부분이 안쪽으로 동그랗게 말려 있다. 그 움츠린 모습이 마치 아기가 주먹을 쥐고 있는 앙증맞은 모습과 닮았다.
솜털까지 보송보송해 갓 태어난 생명의 부드러움과 신비로움을 동시에 연상시킨다. 비록 웅크리고 있지만, 머지않아 활짝 펼칠 아이의 무궁무진한 성장을 암시한다. 이렇듯 자연이 보여주는 첫 생명의 모습에서 아이와 고사리는 참 많이 닮아있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상태를 시각적으로 잘 보여준다.
땅을 뚫고 올라와 주먹을 쥐고 있는 듯한 고사리순은, 가장 연약해 보이지만 동시에 가장 강인한 생명력을 품고 있다. 실제로 고사리는 산불이 난 뒤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내는 식물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이런 강인함은 빽빽한 군락을 이루며 햇빛을 가려 다른 식물의 정착을 어렵게 만든다. 자연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이 때로는 다른 생명의 자리를 좁히는 일이기도 하다.
자연에서는 이렇듯 독하게 살아남은 존재지만, 우리의 밥상 위에서 고사리는 산에서 나는 쇠고기라 불리며 대접받았다. 성분과 식감 두 가지 조건을 제대로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고기처럼 단백질과 무기질 성분이 풍부하여 귀한 영양 공급원 역할을 했다. 식감도 고기의 결처럼 쫄깃하게 씹힌다. 조리 후의 색깔과 담백한 풍미가 쇠고기를 연상시켜 고기의 빈자리를 채워주었다. 식물임에도 어딘가 동물의 육질을 닮은 독특한 생물인 셈이다.
이처럼 유익하고 강인한 고사리도,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또 다른 면이 있다. 고사리를 안전하게 먹기 위해서는 반드시 삶고 물에 우려내는 지혜가 필요하다. 생고사리에는 독성물질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어머니는 김이 올라오던 가마솥에서 삶은 고사리를 건져내어 큰 그릇에 담아 여러 번 물을 갈아주셨다. 처음 담은 물은 짙은 갈색이었으나 점점 색이 옅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때는 몰랐다. 고사리는 뜨거운 시간과 긴 기다림을 지나야만 비로소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머니가 여러 번 갈아주던 물빛이 점점 옅어졌듯, 고사리가 품은 야생의 독성 또한 긴 기다림 속에서 비로소 씻겨 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 밥상을 풍요롭게 채우는 귀한 나물로 거듭난다. 고사리의 시간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사람의 삶도 그리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슬롯에 첫발을 내디딜 때는 한없이 여렸지만, 생존 경쟁 속에서 생고사리 같은 독기를 품기도 했다. 냉혹한 현실에 상처받지 않으려 마음을 굳게 닫았고, 때로는 버텨내기 위해 날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돌아보면, 지나온 세월은 깨달음의 시간이었다. 삶이란 독기를 품은 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뜨거운 시간 속에서 조금씩 우려내는 과정이다. 수많은 경험이 나를 삶아내었고, 가족과 동료들은 내 마음을 몇 번이고 헹궈 주었다. 그렇게 독성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비로소 누군가를 위해 내 마음을 펼칠 수 있었다.
봄마다 고사리는 아기의 손처럼 움츠린 주먹을 쥐고 올라온다. 지난해의 독기가 어디로 갔는지는 묻지 않는다. 다만 삶아지고 우려내고 나서야, 밥상 위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다. 나 역시 그 순리를 닮아가는 중이다. 내 안의 짙은 물빛이 조금씩 옅어지고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독성이 빠져나간 자리는 누군가와 함께 나눌 편안한 온기로 채워질 테니 말이다.
고사리는 양치식물이며 고사리과(科)에 속한다. 양치(羊齒)는 잎이 양의 이빨과 닮았다는 뜻이다. 제주도처럼 따뜻하고 습한 곳을 선호하며, 공룡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지구에 살아온 식물이다. 꽃이 피지 않는 민꽃식물로 잎 뒤에 붙어있는 포자(홀씨)로 번식한다. 화석연료인 석탄 대부분은 거대하게 자란 고사리류가 퇴적되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날로 먹으면 비타민B 분해효소의 작용으로 ‘각기병’ 증상이 나타나 다리에 힘이 빠지는데 이를 두고 한때 정력이 떨어진다는 속설이 퍼지기도 했다. 과학적 원리를 모른 채 부작용만을 경계했던 오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