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시간

버섯

by서람


“우산은 우산인데, 비 와도 쓸 수 없는 우산은?“


어린 시절 친구들과 가볍게 주고받던 수수께끼다. 사물의 형태를 빗댄 문제로 정답은 버섯이다.


”비 오면 크고, 해 나면 죽는 것은?“


이 질문 역시 답은 같다. 단순한 형태를 넘어 버섯의 생태를 떠올리게 하는 문제다. 그 시절에는 그저 재미있는 수수께끼였지만, 이제 다시 생각해 보면 그 짧은 질문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가 먹는 음식 중 버섯만큼 모호한 생명체도 드물 것이다. 종류에 따라 식용과 약용이 있고, 심지어 독버섯도 있다. 더 특이한 것은 생물학적 정체성이다. 버섯은 과연 어느 부류에 속할까?

마트에서 장을 볼 때 버섯은 의심의 여지 없이 채소 판매대에 있다. 요리할 때도 식물성 재료와 함께 쓰이기 때문에 일상에서는 채소라고 불러도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런데 분류학적으로는 다르다. 버섯은 채소뿐만 아니라 아예 식물도 아니다. 무나 배추와는 족보 자체의 차이가 크다.

채소는 기본적으로 식물이다. 식물은 대체로 광합성을 하고 잎, 줄기, 뿌리라는 몸 구조를 갖춘다. 버섯은 이 두 가지 요건을 만족하지 않으며, 특이하게도 곰팡이가 속한 균류(菌類)다. 식물처럼 땅에 붙어서 살 뿐, 영양을 얻는 방식은 오히려 동물 쪽에 가깝다. 채소처럼 다루되 그 정체는 식물이 아니었던 셈이다.


우리가 버섯이라 부르는 존재에는 알수록 놀라운 반전이 숨어 있다. 땅 위로 솟아나 눈에 보이는 모습이 전체가 아니다. 이것은 식물의 꽃에 비유되는 번식 구조에 해당한다. 식물이 꽃을 피워 씨를 만들듯, 버섯 역시 여기서 포자(홀씨)를 만들어 퍼뜨리는 몸체다. 그것을 자실체라고 부른다.

반면 보이지 않는 땅속에는 ‘균사’라는 가느다란 실 모양의 조직이 모여 그물망처럼 넓게 퍼져 있다. 균사는 다양한 방식으로 양분을 얻는다. 그러다 적절한 온도와 습도 등 환경 조건이 갖춰지면, 모아놓은 자원을 결집해 땅 위로 밀어 올린다. 그것이 자실체가 되어 포자를 흩날리는 소임을 다하면, 꽃이 지듯 형체를 잃고 스스로 사그라든다.

버섯은 식물처럼 몸 표면에 수분을 지켜주는 보호층도 발달하지 않았다. 그래서 습도가 적절히 유지되는 환경에서 잘 자라지만, 건조해지면 쉽게 생기를 잃는다. 결국 땅 위에 잠시 머물렀다가 사라지는 버섯은 번식을 위한 일시적 구조물일 뿐,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는 균사체가 실체였다.


지상으로 올라온 자실체만을 보고 버섯의 전부라 여겼듯, 나 또한 지난날 세상과 사람을 그렇게 바라보곤 했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에 쉽게 마음을 빼앗겼고, 말이 유창하거나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둔 사람을 대단하다고 여겼다. 반대로 말수가 적고 드러나는 것이 없는 이에게는 그만큼의 깊이가 없다고 단정 짓기도 했다.

한 사람의 진짜 본질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균사체와 같은 것이었다. 그 사람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땅속에서 보냈을 긴 시간을 헤아리지 못했다. 한낮의 햇빛 아래 허무하게 사라지는 외형보다 중요한 것은 견뎌낸 내면이다.


비가 지나간 뒤, 평소 즐겨 걷던 산바카라로에 들어섰다. 엊그제까지 보이지 않던 자리에 버섯이 불쑥 올라와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우연히 생겨난 개체라 여겼겠지만, 이제는 안다. 결코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때를 기다리며 오랫동안 땅속에서 준비해 온 생명이다. 그 옛날 수수께끼를 다시 읊조려본다. 비가 와도 쓸 수 없는 우산, 해가 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그 연약한 몸통 아래에는 대지를 움켜쥔 거대한 균사체의 세계가 숨어 있었다.

저녁상에 올라온 버섯전골의 깊은 국물 맛을 음미하며 비로소 깨닫는다. 이 깊은 맛도 아무도 모르는 어둠 속에서 오래 우러난 것이었다. 나는 지금, 대지를 품어 안는 '버섯의 시간'을 건너는 중이다.


버섯은 균계 중에서 주로 담자균에 속한다. 영양 방식은 세 가지이다. 동식물에 붙어사는 기생성, 사체나 배설물 등을 분해하는 부생성, 식물 뿌리와 양분을 주고받는 공생성이 있다. 한 예로 공생성인 송이버섯은 인공 처리로 재배가 어렵다. 나무뿌리와 균사는 연결되어 물질 교환과 상호 신호를 주고받는 관계를 형성하여 이를 균근 네트워크로 비유하기도 한다.

흔히 ‘독버섯은 화려하다’라는 속설이 있으나 식용과 비슷한 것도 있어 외관만으로 구별하기는 어렵다. 버섯은 인간에게 약용 효과가 좋은데, 항암 및 민간요법의 탁월한 약재로 활용되고 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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