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는 건 해볼게요

by최이삭



#14.


새롭게 맞은 한 주에도 일정이 많았다. 써야 할 글도 많고 일터에 복귀하려면 뉴스도 슬슬 챙겨봐야 했다. 그리고 이태원 참사 기억 시민 회의라는 공론회 행사와 시민 걷기 모임 일정도 잡혀있었다.


인생에서 안 해보는 것을 참 많이 해보는 날들이었다.


이태원 참사 글쓰기 프로젝트는 글만 쓰는 게 아니라, 참여할 수 있는 여러 행사가 있었는데 시민 회의도 그 중 하나였다. 사람들이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는 설명이 있었다. 모르는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부담되어 그냥 빠질까 생각했는데, 참가자가 혹시나 없을 것이 걱정되어서 한별이와 나는 또 같이 참여하기로 했다. 가서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이 생각만 하면 긴장이 됐다.


공론회 날 저녁. 모임장 안에 들어선 나는 깜짝 놀랐다. 많은 이들이 참석해 공간이 꽉 차 있었기 때문이다. 스티커로 된 명찰을 받아서 가슴팍에 붙이고 안내를 받아 자리에 앉았다. 어쩌다 보니 지각을 하고도 맨 앞자리에 앉게 됐다. 첫 순서로 유가족 분 중 한 분이 나와 참석한 시민들에게 인사말을 했다.


이날은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이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날이었다.

나는 지하철을 타고 이곳에 오는 길에 관련 기사들을 읽었는데, 그 속에서 길바닥에 주저앉아 울분을 터뜨리는 유가족들의 모습을 봤었다. 그는 사진 속에 있던 유가족 중 한 사람이었다.


고 임종원 씨의 아버지 임익철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유가족들은 시민들이 보내는 ‘연대’의 힘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며 “앞으로도 참사와 진실 규명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오후에 있었던 전 경찰청장 재판에 관한 얘기를 할 때 갑갑한 마음 속 분노가 터져 나오는 듯 했지만, 울컥거림을 꾹꾹 누르면서 끝까지 감사를 전했다. 그의 마음이 온전히 전해졌다.


‘그래,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해보자.’ 시민 회의가 끝나고 한별이와 나는 모임 주최 측이 나눠주는 ‘2주기 추모제 안내’ 포스터를 몇 장 들고나와 거리 곳곳을 돌며 붙였다.



#15.



이틀 뒤, 세 번째 시민 걷기 행사 날이 됐다.


이날은 한별이와 나, 둘이 아닌 셋이었다. 동료 작가가 친구랑 같이 참석하겠다고 행사에 신청했는데, 정작 자신은 아파서 오지 못하고 같이 오기로한 친구 혼자 참여하겠다고 온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그 친구는 내가 일했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나에게 이틀 동안 인수인계를 하고 다른 방송사로 이직을 한 동갑내기 피디 선영이었다. 살다보니 이렇게 또 인연이 되어 만나는 날이 있구나 싶어 반가웠다. 우리 셋은 유가족들과 시민들 사이에 끼어 종로구 일대를 함께 걸었다.


포스터가 벽에 잘 붙지 않아 꾸물대는 통에 우리는 무리에서 뚝하고 떨어지기도 했는데. 뒷줄에서 걷던 유가족들이 ‘이렇게 하면 잘 붙어요’ 알려주면서 뒤쳐진 우리를 기다려주기도 했다. 종로 거리의 버스 정류장과 벽 곳곳에 2주기 추모제를 알리는 포스터가 가득 붙었다.


이날의 코스는 시청역 근처 별들의 집에서 시작해서 종로대로 변을 따라 북촌 한옥마을로 가는 길인 송현동 길을 찍고, 경복궁 돌담길을 타고 내려와 종착지 세종문화회관으로 향하는 코스였다.


코스 중간 지점 쯤인 송현동 길 초입에는 서울공예박물관이 있다. 그 앞에 돌 계단이 길게 늘어져 있는데 우리는 그곳에 잠깐 쉬어가기로 했다. 지난 행사 때처럼,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자기소개를 하며 만남의 시간을 가지려는 것이었다.


‘대체 몇 명이 온 걸까. 백 명 가까이 될까. 아니면 훨씬 넘을까.’ 모든 사람이 쭉 앉다 보니 계단이 빼곡하게 가득 찼다.


그런데, 올 것이 오고 말았다.


몇 번 우리를 만났던 이태원참사 유가족 시민대바카라회의의 이미현 실장이 마이크를 들고 있는 슬롯자에게 귓속말을 하며 한별이와 나를 손가락으로 콕. 콕. 가리키고 있었다.


‘아, 제발...’


지난 시민 걷기에선 나무 뒤에 숨기라도 했는데, 이번엔 앞에 방송사 카메라들이 쭉 늘어서 있고 하필 자리도 가족들 사이 정중앙에 앉아버린 상태여서 숨을 수도 도망갈 수도 없었다.


“여기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서 글을 쓰고 있는 분들이 있다고 합니다. 자, 거기 두 분. 앞으로 나오세요!”


얼굴이 사색이 되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드는데, 뒤에 앉아 있던 수녀님이 등을 마구 떠밀며 말했다. “아휴~ 괜찮아. 빨리 나가!” 모두가 나와 한별이를 보며 계속 박수를 쳤다. 우리는 그렇게 유가족들과 시민 앞에 섰다. 내게 먼저 마이크가 넘어왔다.


“아.. 저는.....” 하는데, 백 명 쯤 되는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며 ‘그래 그래. 말해봐. 괜찮아.’ 하듯 고개를 계속 끄덕이고 있었다. 바로 앞에는 이정민 위원장이 앉아 계셨는데 우리 둘이 불편할까 봐서 인지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려 먼 곳만 바라보고 계셨다. 현기증이 났다. 입이 바짝 타들어갔다.


“아.. 안녕하세요. 저희는 ‘빠띠’라고 하는 시민들이 모인 플랫폼에서, 이태원 참사에 대한 추모 글쓰기 프로젝트를 하고있는 작가들입니다. 참사에 대해서 시민들이 어떻게 기억하고, 추모해야 할지, 유가족들의 아픔을 보고 또 희생자, 생존자를 보면서 어떻게 마음을 모으고, 연대 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이 자리에 왔습니다. 오늘날도 너무 좋은데 함께 걸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하고 말했다. (모르겠다. 대충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뒤이어 한별이가 마이크를 잡았다. 다행히 나보다 훨씬 더 좋은 말을 한 거 같았는데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한별이까지 자기소개를 마치자 우리를 격려하듯 모두가 크게 박수를 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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