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이태원 참사 유가족 대표 이정민 위원장을 인터뷰하기로 한 날이 됐다. 만나기로 한 장소는 서울 시청 근처에 있는 별들의 집이었다.
한별이가 간단한 간식이라도 사가자 했다. 우리는 시청 앞에서 만나 도넛과 커피를 바리바리 싸들고 별들의 집을 찾았다. 안으로 들어갔을 때 열 명 남짓한 가족분들이 큰 테이블에 모여 앉아 있었다.
“아, 저희가 몇 분이 계신지 몰라서.. 이것밖에 못 사 왔는데요..” 우리는 사 온 것들을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아니요. 너무 고마워요. 이것도 충분해요!” “커피도 같이 나눠 마시면 됩니다!” 가족들은 웃으며 좋아해 주었다. “어머, 이거 찍어서 우리 단톡방에 올려야겠다.” 한 어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커피와 도넛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날도 별들의 집엔 사람이 많았다. 무슨 행사가 있나 물으니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함께 보라 팔찌, 보라 리본 만들기를 하는 날이라 평소보다 사람이 많이 모였다고 했다. 시민들에 보라색 매듭 팔찌 만드는 법을 알려주고, 함께 만든 팔찌는 나중에 거리나 추모제 등에서 나눠줄 거라고 했다.
이정민 위원장이 조금 늦게 도착할 것 같다고 해서 우리는 안내를 받아 작은 방 안에 들어가 기다리고 있었다. 마이크 볼륨이 어찌나 큰지, 밖에서 팔찌 만드는 법을 알려주는 목소리가 아주 크게 들려왔다. 한별이와 나는 걱정과 함께 긴장을 하고 있었다. 혹시 인터뷰하다가 울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하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이정민 위원장이 방으로 들어왔다.
내가 이정민 위원장을 대면한 건 이날이 3번째였다. 방송국에서 한번, 걷기 행사에서 한번, 그리고 이날. 하지만 전화 통화를 했던 건 10차례 정도 됐고, 기사를 통해 이분을 본 건 수백 번은 넘을 거다. 그는 내가 낯설지라도 나는 그가 익숙했다. 하얗게 샌 머리와 길게 자란 턱수염. 침착하고 담담하고 절제된 표정. 하지만 눈물을 흘리는 모습도 분노하는 모습도 수없이 봐왔던 터였다.
우리가 인터뷰를 위해 준비한 질문 개수는 예상보다 많았고. 인터뷰는 꽤 긴 시간 동안 진행됐다. 대체적으로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행되긴 했는데 인터뷰 막바지에 나는 결국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우는 모습이 실례가 될 수 있다고 걱정했는데 다행히 한별이가 끝까지 중심을 잡아 분위기를 이끌었고 인터뷰는 잘 마무리될 수 있었다.
긴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자, 팔찌 만들기 수업도 곧 끝날 것처럼 보였다. 위원장님을 뒤따라 나오는 나와 한별이를 몇 분의 가족들이 빤히 쳐다보셨다. 위원장님은 이 친구들이 이태원 참사 관련해서 글을 쓰는데 오늘 인터뷰하러 왔다고 가족들에게 소개를 해 줬다.
우리가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데 저쪽 테이블 끝에 있는 한 어머니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쳐다보고 계셨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말했다.
“저희 다음 시민 걷기에 또 올게요. 그때 또 봬요.”
이정민 위원장이 우리에게 미소를 지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