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함께 길을 걸었다

by최이삭


#9.


두 번째 글을 어떻게 쓰면 좋을지 여러 갈래로 고민했다. 하지만 생각은 결국 한 곳으로 모아졌다. 참사 유가족을 직접 만나고 싶었다. 일을 하면서도 늘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그대로 전하는 게 무엇보다 최우선이라 생각했었다. 한별이에게 유가족 인터뷰를 해보면 어떻겠냐 물었다.


“좋아.” 그녀는 역시나 흔쾌히 응했다.


‘누구를 만나 인터뷰할 것인가’에 대해선 고민이 없었다. 방송을 통해 몇 번 얼굴을 뵌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이정민 위원장님이 해주셨으면 했다.


힘 있는 언론사도 아니었고, 그저 한 개인이, 시민들이 모인 인터넷 소통 공간에 글을 올리고 싶다고 이래저래 바쁘신 분에게 시간 내 달라 부탁하는 게 맞을까 싶었지만 우리는 한번 해보기로 했다. 다행히 타이밍 좋게 자연스레 만날 기회가 생겼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10월이 되면 3주 동안 매주 토요일마다 시민들과 함께하는 걷기 행사를 한다. 가을 단풍이 울긋불긋 든 종로구 일대를 시민과 함께 걷는다. 참사에 대한 기억을 되새기며,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 외치며, 거리에 추모제를 안내하는 포스터를 붙이기도 한다. 시민들도 ‘연대’의 마음으로 이들 곁에서 함께 걷는다.


우리가 인터뷰를 하기로 결심했을 때 SNS에는 ‘올해도 시민 걷기 행사를 진행한다. 많은 참여를 부탁한다.’는 안내 글이 떴다. 나는 이런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이 절대 아닌데 이번에는 한번 가보고 싶었다.


“별아. 우리 이거 할까?” 물었다.

“응. 무턱대고 인터뷰 요청을 드리는 것보다 직접 얼굴 뵙고 말씀드리면 좋을 거 같아.” 한별이가 말했다.



#10.


10월 첫 번째 주 토요일, 시민 걷기 행사 날이 됐다. 이른 아침, 우리는 ‘별들의 집’으로 향했다.

(*'별들의 집'은 별이 된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기억, 소통 공간이다.)


유가족들 뿐만 아니라 함께 걸을 많은 시민이 모여 내부가 북적였다. 우리가 어디를 걸을지, 무엇을 하며 걷는지 등에 대해 간략한 안내 설명을 듣고 행진을 시작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집에서 이곳으로 오는 내내 하늘은 우중충했다. ‘걷는데 비가 내리면 어떡하나.’ 우려했던 것과 달리 출발 시간이 되니 날은 점점 밝아지고 화창해지고 있었다. 바람까지 선선하니 불어서 걷기에 아주 딱 좋은 날씨가 됐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두 명씩 짝을 짓고 하나의 기다란 줄을 만들었다. 그리고 남산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유가족들과 시민들은 함께 구호를 외치면서 거리를 걸어 나갔다. 한별이와 나도 다른 이들처럼 거리에 포스터를 붙이며 뒤를 따라 걸었다.


걷다가 중간에 쉬어가는 시간이 됐다. 남산타워로 올라가는 초입 길 아래, 계단을 의자 삼아 사람들이 모여 앉았다. 그리고 잠깐의 시간 동안 유가족들과 이들을 돕는 몇몇 단체가 앞으로 나가서 자기소개를 했다.


서울에서는 먼 어느 지방에 살고 있다는 한 참사 희생자 친구의 어머니도 마이크를 잡았다. 그녀는 아직도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이 자리에 나오기를 결정하기까지 너무나 어려웠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용기를 내어 나왔다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덜덜 떨며 말했다. 모두가 그녀를 위해 박수를 쳐주었다.


언덕을 조금 더 올라 목적지인 남산 백범 광장에 도착했다. 점심때가 되니 쨍한 오후의 해가 머리 위까지 올라와 있었다.


우리는 잔디밭 나무 아래 그늘진 곳에 자리를 잡고 유가족들이 싸준 김밥을 나눠 먹었다. 서로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 앉아 도란도란 식사를 했다. 그 공간에 모든 것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따뜻했다.


식사를 마치자 아까 못다 한 자기소개 시간이 이어졌다. 가장 먼저 유가족들이 앞으로 나와 아이의 이름과 함께 자신을 소개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 자리에 참가해 준 시민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뒤이어 시민들의 소개가 이어졌다. 공부방 선생님을 따라온 어린 학생들, 매번 행사마다 이들의 곁에 함께한 수녀님들, 처음부터 유가족을 뒤에서 지원해 온 변호사들을 비롯해 여러 시민 슬롯단체와 종교 단체 등이 있었다. 이전엔 몰랐는데 이곳에 나와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이들이 이들과 함께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별이와 나는 우리 차례가 올까 조마조마해하며 나무 뒤편에 숨어있었다. 잘 넘어가나 싶었는데 우리를 발견한 어떤 분들이 카메라를 들고 다가와서 짧은 인터뷰를 요청했다.


“편하게 말씀해 주시면 돼요. 오늘 함께 하셨는데 짧게 소감을 말해주실 수 있을까요?”


어디든 앞장서 말을 잘하는 한별이가 그날따라 마음이 조심스러워 못하겠다고 나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평소 같으면 ‘아, 죄송합니다. 저 말을 잘 못해요.’ 하고 단박에 거절했을 텐데. 이상하게 거절할 수가 없었다.


일정을 마치고 해산할 시간이 됐다. 우리는 이정민 위원장을 찾기 위해 주변을 돌아봤다. 분명 방금 전까지 앞에 계셨는데 그 사이 어디로 가셨는지 아무리 찾아도 안 보였다.


“혹시 이정민 위원장님 보셨나요? 어디 계셨는지 아실까요?” 사람들에게 물어 물으며 남산 언덕길을 종종거리며 뛰어 내려갔다.


한참을 내려가니 멀리 길 건너편에 보라색 조끼를 입고 아주 빠른 걸음으로 내려가는 새하얀 머리의 남자가 보였다. 이정민 위원장이었다. 한별이와 나는 달려가서 그를 잡아 세웠다.


“위원장님, 안녕하세요. 지난 참사 1주기 추모제 날, 000 뉴스 팀에서 인터뷰했던 작가예요.”


나는 한 시민들이 모인 플랫폼에서 이태원 참사에 대한 글쓰기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데, 혹시 시간을 내어주실 수 있겠느냐고. 시민의 입장으로 유가족들을 직접 인터뷰해서 글을 올리고 싶다 말했다. 길을 가다 갑자기 붙잡혀 어리둥절해하던 그는 우리의 이야기를 곰곰이 듣고는 웃으며 “알겠다” 답했다. 그렇게 인터뷰 일정을 잡았다.



월, 화, 수,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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