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10월. 한 달의 스케줄표가 빼곡하게 채워졌다.
이태원 참사 프로젝트 글쓰기를 하고, 행사도 참가하고, 온라인카지노에 글도 주기적으로 올려야 했다. 9월 말쯤엔 직전에 일했던 회사에서 ‘다시 와 일할 생각 없느냐.’ 연락이 온 터라 일을 다시 시작하기 전에 검진할 겸 병원도 한 바퀴 돌아야 했다.
중순에는 세례식 일정이 잡혀있었다. 바빠서 쫓기듯 사는 걸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나는 일상의 바쁨 속에서 이상하게 활기를 느끼고 있었다.
그 달, 내가 글쓰기 프로젝트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기는 건 세례식이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세상에 신은 없다.’ 여기며 살았다. 마음 급할 때는 세상에서 들어본 온갖 신의 이름을 다 부르면서 간절히 기도하곤 했지만, 신이 정말 존재한다면 나한테 이렇게 잔인하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랬던 내가 틈만 나면 성당을 찾아가 기도를 하고 위안을 얻고 마음을 내맡기기 시작했다. 신기한 변화였다.
미사가 없는 시간, 성당 내부는 조명이 꺼져서 평소보다 더 고요하고 어둡다. 하지만, 그때에도 기도하기 위해 찾아온 이들이 항상 자리를 채우고 있다. 나도 자주 그들 틈 사이에 앉아 눈을 감고 기도를 했다.
나는 기도를 마치면 고개를 들어 제대 위에 매달려 있는 성체등의 빨간 불빛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하느님. 부디 제 기도를 들어주세요.’ 하고 수없이 말했다.
주로 병마와 싸우고 있는 친구의 부모님을 위해 기도하거나, 내 가족의 평안과 평화를 위해 기도했는데. 신기하게도 마음을 다해 기도하면 모든 것이 잘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세례를 빨리 받고 싶었고 언젠가부터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성당에서 세례를 받으려면 6개월간 진행되는 모든 교리 수업에 참석하고 주어진 숙제를 해야 한다. 처음 수업을 등록하면 출석 카드를 주는데, 도장을 다 채우지 못하면 세례를 받을 수 없었다.
그런데, 내 출석 카드에 빈자리가 한 칸 남아있었다. 단 한 칸.
이번 달에 있는 다른 교리반에서 수업을 보충할 기회를 놓치면 나는 조원들과 같이 세례를 받을 수 없었다. 빠진 수업의 회차가 돌아올 때까지 또다시 몇 달을 기다리지 않으려면 해당 수업일에 반드시 출석해야 했다.
수업 전날, 알람을 여러 개 맞추고 수업 시간을 반복해 확인한 다음 긴장한 채로 잠이 들었다. 하지만, 다음 날 수업에 턱걸이로 들어갔다. 지각하면 얄짤없이 수업을 들을 수 없는데 발바닥이 불나게 달려가 겨우 강의 시간에 맞췄다.
출석 체크를 하고 뒤쪽에 빈자리 하나를 찾아 앉았다. 땀이 삐질삐질 흘러나왔다. 가방에 있는 종이를 대충 접어 부채질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세례를 받으려는 사람이 참 많구나.’
신규 교리반에도 사람이 꽤 많았다. 나도 어린 나이에 이곳에 온 게 아닌데, 흰머리 희끗한 어르신들도 많이 있었다. 사람을 구경하다가 나는 낯설지 않은 얼굴을 하나 발견하고 멈칫했다.
내가 아는 사람인가. 어디서 봤더라? 안경을 낀 중년 남자. 평범한 회사원 같았는데 얼굴도 이름도 알 수 없었다. 그때는 하도 사람을 많이 보고 사는 직업이니 어디 지나가다 봤나, 하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