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녁잠이 늘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 떴는데 벌써 밤이다. 시간을 도둑맞은 기분이다. 유리창 밖의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거실을 물들였다. 의자에 앉아서 잠들었는데 꿈까지 꿨다. 꿈에서 본 장면들이 머릿속을 맴돌다 금세 흐릿해졌다.
메모장 앱을 켰다. 인상적인 꿈을 꾸면 노트에 기록한다. 꿈을 수집하는 오래된 버릇이다. 뒤섞여있는 이미지들을 퍼즐처럼 하나씩 맞췄다. 얼기설기 뭉쳐있는 조각을 떼서 나열하다 보면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대체로 맥락 없는 개꿈이지만 가끔 멋진 꿈을 만날 때도 있다. 잠을 자는 동안 현실과 무의식 사이의 경계선에 걸쳐있는 세계를 여행한다. 눈은 감고 있지만 머리는 빠르게 회전한다. 그래서 그런지 잠을 잘자면 글도 잘 나온다.
일상 속에서 글감을 찾는 내게 꿈은 또 다른 작업실이다. 농담 같지만 잠이 늘면 글도 같이 는다. 날씨가 추워지면 수면시간과 비례해서 작업량도 함께 증가한다. 이번 달은 지난달보다 글을 더 많이 썼다. 글쓰기가 밀리는 날이 거의 없는 한 주였다.
전보다 기온이 많이 내려갔다. 가을도 이제 곧 끝이다. 간절기지만 해가 지면 초겨울 날씨나 마찬가지다. 춥고 어두운 저녁이 되면 졸음이 몰려온다. 밤이 긴 계절을 맞이하는 자연스러운 몸의 변화다. 늦가을이지만 몸은 겨울나기를 준비하고 있다.
계절의 흐름에 맞춰 본능이 반응한다. 문명을 이루고 살고 있지만 몸속 생체시계는 자연의 일부였던 과거에 머물러있다. 흔적만 남은 꼬리뼈와 달리 계절감에 반응하는 동물적인 감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인간도 결국 동물이다.
한 번씩 자각할 때마다 신기하면서도 낯설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야생에서 비롯된 습성을 지울 수는 없다. 본능이나 본성이 정체성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뿌리를 잊지 않게 만든다. 여전히 인간은 자연과 이어져있다.
몸은 계절의 변화를 체감하고 세월의 흐름에 맞춰 순응한다. 겨울잠을 자고 날이 따뜻해지면 털갈이를 하는 동물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보다 자연과의 거리가 더 가까웠던 시절의 인류는 어땠을까? 혹독한 추위에 맞서 살아남았던 고대인들의 삶을 상상했다.
생존을 위협하는 매서운 겨울을 대비하기 위해 그들은 가을을 정신없이 바쁘게 보냈을 것이다. 역시 가을은 느긋하게 보내기 힘든 계절인 것 같다. 아름다운 시절은 짧다. 눈보라를 피해 몸을 숨기고 어두운 동굴 속에서 보내는 겨울은 얼마나 길고 지루했을까?
그래서 사람들은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상상력은 불안과 공포에 맞서는 강렬한 생존본능이다. 동면이나 다름없는 긴 잠을 자면서 꾼 신비한 꿈은 동화가 됐다. 대를 거쳐 내려온 전설과 먼 곳에서 건너온 설화를 들으면서 밤을 이겨냈을 것이다.
봄이 되면 이야기는 바람처럼 널리 퍼져나갔다. 말과 글 속에는 힘이 깃들어있다. 마음이 끌리는 이야기에 의지하는 것은 유전자 속에 각인된 일종의 본능이다. 외롭고 괴로웠던 날마다 바카라을 읽으면서 삶을 붙잡았다.
좋은 영화를 보면서 힘든 시간을 이겨낸 적도 있다. 아픔은 견디다 보면 지나가고 슬픔은 버티다 보면 끝난다는 사실을 이야기를 통해 배웠다. 날씨가 변하듯이 삶은 급변한다. 겨울에 쏟아지는 비나 봄에 내리는 눈처럼 인생은 예기치 못한 일들로 가득하다.
가만히 서서 꼼짝없이 소나기를 맞다 보면 내면의 가장 약한 모서리가 깎여나가는 것 같다. 어둡고 추운 터널 속에서 보이지 않는 출구를 찾아 헤매는 것처럼 갑갑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림길 앞에서 매번 삶을 선택한다.
멋진 반전이나 극적인 역전이 없어도 괜찮다. 매년 같은 계절을 보내면서도 우리는 봄꽃을 기대하고 여름휴가를 기다린다. 다들 평범한 날들 속에서 특별한 순간을 맞이하고 반복되는 일상에 소중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산다. 이런 발견의 기쁨이 삶을 가치 있게 만든다.
깨지 않는 아름다운 꿈보다 별 것 없는 하루가 더 낫다. 살아있어야 꿈도 꿀 수 있다. 졸린 눈을 비비면서 일어났다. 창문을 활짝 열었다. 바람은 부드럽지만 밤공기는 차갑다. 가을을 보내고 이제 겨울을 맞이해야 할 시간이다. 까만 하늘 위로 새하얀 별이 반짝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