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마지막 월요일. 귀갓길에 밤비를 만났다. 가로등 아래 노랗게 물든 벚꽃 위로 빗방울이 떨어졌다. 우산 밖으로 손을 내밀었다. 손 끝에 닿은 비는 차갑다. 입을 오므리고 날숨을 뱉었다.
옅은 입김이 피어오르다 빗속으로 흩어졌다. 올봄은 작년보다 발걸음이 더딘 것 같다. 한낮에 느낀 봄기운은 해가 저물면 순식간에 증발한다. 일교차가 큰 폭으로 벌어지는 밤이나 비 내리는 아침저녁은 초겨울날씨나 마찬가지다.
빗속을 달리는 차들이 밤의 그늘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도로 위에 남은 흐릿한 배기음은 빗소리에 뒤덮여 금세 사라졌다. 물기를 머금은 무거운 밤공기가 움직이면서 속도를 냈다.
정면에서 달려드는 찬바람을 피하려고 골목으로 들어갔다. 빌라들이 몰려있는 안양로 옆 사잇길은 조용했다. 바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까지 들어왔다. 갈림길 앞에서 잠시 고민하고 있을 때 눈앞에 빈집이 나타났다.
작은 앞마당이 딸린 2층 주택은 한기와 침묵만 감돌았다. 창문 밖으로 따뜻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주변 집들과 분위기가 달랐다. 삭막한 적막감으로 만든 울타리를 친 것 같았다.
벽돌을 쌓아서 만든 낮은 담장 너머 화단이 눈에 들어왔다. 바싹 마른 풀꽃의 잔해들이 가득했다. 비를 맞았는데도 손을 대면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 같았다. 계절감이 느껴지지 않는 공간이었다.
아물다만 흉터 같은 세월의 흔적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세상과 벽을 쌓고 고립된 느낌이 들어서 을씨년스러웠다. 현실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낯선 이질감은 본능적인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빈집에서 시선을 거두고 고개를 돌렸다. 불빛들이 이어져있는 길을 향해 걸었다. 시대가 변했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예전에는 빈집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이웃집이 이사를 나가면 곧바로 새 이웃이 들어왔다. 한집 건너 한집은 3대가 모여 살았다. 살 사람이 없어서 집이 버려진다는 개념이 통용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90년대나 2000년대는 어느 동네를 가든 아이들과 젊은 부부들이 가득했다.
안양은 평일이나 주말을 가릴 것 없이 늘 사람들로 북적였다. 동네 놀이터나 골목길은 저녁까지 뛰어노는 어린애들의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는 곳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변하지 않을 것처럼 여겼던 상식마저 달라진다.
그때는 당연했던 일들이 지금은 각별해졌다. 일상을 담은 기억은 이제 더는 찾아보기 힘든 추억이 됐다. 한 때는 사람 사는 이야기로 가득했던 삶의 터전은 비와 바람을 맞으며 낡아가고 있다.
빈집은 도시의 그늘 아래 자라는 버섯이다. 성장을 나타내는 그래프가 높을수록 그림자는 길고 어둠은 짙다. 가까스로 집이라는 형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본질은 버려진 황무지나 다름없다. 생기는 증발하고 껍데기만 남는다.
수도권과 지방을 나눌 것 없이 상황은 비슷하다. 수요가 몰리는 곳은 한정되어 있다. 마을이 아파트단지를 부르는 고유명사로 불리게 되면서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선호도 순위에서 밀려난 지역은 빠른 속도로 빈집이 증가한다.
삶의 다양성이 사라진 것이 빈집이 늘어나는 원인일지도 모르겠다. 복수정답을 인정하지 않는 경직된 슬롯에서 대안은 오답이나 마찬가지다. 아파트 비중이 낮은 외곽이나 구도심은 서서히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
오랜 정주민인 노인들이 떠나고 나면 들어올 사람이 없다. 다세대주택이 모여있는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크고 작은 빈집들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사람들이 떠난 빈집은 생기 없는 뱀의 허물 같은 초라한 모습이다.
계절이 빗겨나간 것처럼 햇살이 내리쬐는 봄날에도 빈집은 스산하고 쓸쓸하다. 주인 없는 빈집은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심리적인 시차가 존재하는 묘한 곳이다. 사람이 만든 공간의 주인공은 사람이다.
빈집은 배우들이 내려간 후에 텅 빈 연극 무대를 닮았다. 열기가 사라진 커튼콜 뒤에 남는 것은 침묵뿐이다. 삶이 빠져나간 자리는 온기를 찾아볼 수 없는 서늘한 폐허로 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