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원하는 건 무엇인가요?
칠흑 같은 어둠이 공기마저 감싸 안은 극장 안을 한 여인이 더듬거리며 들어왔다. 화면이 가장 잘 보이는 여섯 번째 줄 통로 쪽 의자에 간신히 몸을 앉혔다. 영화는 이미 시작되어 한 아이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어 여인을 응시하고 있었다.
작은 아이가 맨발에 잔뜩 웅크린 채 구석에 앉아 있고 아이 옆에선 세탁기가 괴물 같은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다.
"아이고, 아가야. 왜 거기서 그러고 있니?"
여인은 화면 속 아이에게 말을 걸 듯이 중얼거렸다.
잠시 뒤 문이 열리고 중년의 한 여자가 들어와 아이를 노려봤다.
"엄마한테 뭔가를 잘못했구나. 그렇다고 세탁실에 숨을 건 아니지."
여인은 화면을 뚫어지게 보았다.
중년의 여자는 아이가 마음에 들지 않은 것 같았다.
"너! 엄마 말 안 들으면 어떻게 한다고 했지?"
하며 금방이라도 아이를 어찌할 것처럼 험상궂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벽에 세워져 있던 가느다란 작대기를 들어 아이를 사정없이 때리기 시작했다.
"엄마! 잘.. 못.. 했어요. 다신 안 그럴게요!"
아이는 다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여자는 아이의 소리를 듣지 못했다. 자신의 화가 다 풀릴 때까지 아이를 무참하게 때렸다.
"안 돼! 하지 마. 어린 게 잘못을 하면 얼마나 했다고 때리냐고! 그만해!"
여인은 화가 났다.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치고 말았다. 극장 안에 여인의 목소리가 울렸다. 여인은 순간 이것이 영화라는 사실을 잊었다. 여자는 아이를 때리다 멈추고 나가 버렸다. 땀과 눈물이 범벅이 된 아이는 숨 죽여 울고 있었다. 작은 손으로 눈물을 닦으며 작은 몸을 떨었다.
"아가야...... 울지 마. 가엾어라. 얼마나 아팠을까......"
여인은 손수건을 꺼내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았다. 자신의 위로가 어린아이에게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손수건을 꼭 쥔 채 영화를 보았다.
"저 딴 게 자식이라고...... 내가 정말 못 살아! 어디 가서 그냥 콱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세탁실에서 나온 여자는 아이에게 들리도록 큰소리로 말했다. 밖에선 여자의 한숨소리와 함께 무언가로 도마를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여자가 나갔다는 걸 인지한 아이는 고개를 들고 문쪽을 바라봤다. 여자에게 맞은 부위가 아픈지 끙끙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이는 흠칫 놀라 자신의 손으로 입을 막았다.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누운 아이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거기 왜 누워있는 거야? 어서 빨리 나와!"
여인은 간곡하게 말했다. 그러나 아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장면이 바뀌고 여자가 들어와 아까와 같이 또다시 작대기로 아이를 때리기 시작했다. 외마디 비명조차도 지르지 못하고 아이는 속수무바카라으로 맞기만 했다.
"그냥 나와! 도망쳐. 제발... 누가 좀 도와줬으면......"
여인은 더 이상 영화가 보고 싶지 않았다. 순간 차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났다. 그런데 갑자기 영화는 빨리 감기 버튼이 눌린 것 마냥 영상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지점에 다다르자 다시 원래 속도로 재생이 되었다. 세탁실 문을 열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남자는 쓰러져 있는 아이를 바라봤다. 눈물을 흘리며 아이의 얼굴과 몸을 둘러보았다.
"미안해. 아빠가 빨리 알지 못해서...... 더 빨리 오지 못해서 미안해. 흑흑."
그렇게 남자는 아이를 품에 안고 밖으로 나가며 영화가 끝이 났다.
여인은 어리둥절했다.
"뭐야! 끝인 건가."
스크린은 완전히 꺼졌다. 영화관 안도 밝아졌다. 그제야 여인은 알게 되었다. 이 영화관의 손님은 자기 혼자 뿐이었단 걸.
여인은 앞쪽 출입문으로 걸어갔다. 문이 열리자 검은 나비넥타이, 흰 양복을 입은 직원이 활짝 웃으며 여인을 맞았다.
"영화는 어떠셨나요?"
직원은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여인에게 물었다.
"하나도 재미없었어요."
여인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러자 직원은 조용히 여인을 바라보다가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앞으로 다가와 말했다.
"당신은 사망했습니다. 영화는 당신의 인생이었습니다. 아이는 바로 당신입니다."
여인은 직원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자기도 모르게 입이 벌어진 채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기 위해 자기 손을 맞잡았다.
"저... 아이가... 나..라고요?"
여인은 믿을 수가 없었다. 직원은 여인의 눈을 보며 말했다.
"무엇이 가장 후회되나요?"
여인은 눈물을 흘렸다. 너무 많은 일이 후회가 되어 빗물처럼 흐를 것만 같았다.
"글쎄요. 모... 모르겠어요. 어쩌면 엄마를 보지 못한 일일지도요."
여인은 확신이 없었다. 직원은 계속 물었다.
"지금 원하는 건 무엇인가요?"
여인은 잠시 생각을 했다. 살면서 한 번도 무언가를 간절히 원했던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간절히 원해본다면
"엄마요. 엄마를 만나고 싶어요."
여인의 말이 끝나자마자 직원은 사라지고 사방이 암흑으로 변하더니 어두운 터널이 나타났다. 먼발치에서 희미한 빛이 보였다. 여인은 그 빛을 향해 걸었다. 처음엔 동전 크기였다가 둥근 빛이 공모양으로 바뀌더니 다시 커다란 원형으로 점점 커졌다. 그때 커다란 섬광이 여인을 순식간에 끌어당겼다. 순간 놀란 여인의 눈앞이 밝아지며 너른 꽃밭이 나타났다. 여인은 눈이 부셔 제대로 눈을 뜨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때, 멀리서 누군가 걸어오고 있었다. 흐릿한 형상이 점점 또렷해지며 낯익은 모습이 드러났다.
"엄마."
무서웠던.
여인을 아프게 했던 엄마,
그날 이후론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엄마였다.
엄마는 환한 미소로 여인을 향해 두 팔을 벌렸다. 잠시 망설이던 여인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엄마에게 다가갔다.
엄마 앞에 선 여인은 작은 아이가 되어 조심스럽게 엄마의 품에 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