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없을 큰 사랑이 그리워서
나는 여덟 살 봄에 학교에 들어갔다.
엄마는 마흔에 나를 낳았다. 동네 사람들은 나를 늦둥이라고 불렀다. 엄마는 커다란 보따리를 이고 지방 장터를 돌았다. 보따리 안에는 마른 멸치와 미역, 오징어와 김이 가득했다. 한번 장사를 하러 가면 보름 정도 집을 비웠다.
엄마의 몸에서는 언제나 짭짤하고 비릿한 생선 냄새가 났다.
나는 글자를 남들보다 빨리 읽었고, 셈도 곧잘 했다. 학교를 가기 전에 한글을 떼었더니 엄마는 동네방네 나의 영특함을 자랑하고 다녔다.
입학한 첫날, 담임 선생님은 내 이름을 칠판에 쓰며 말했다.
“오늘부터 범구가 우리 반 반장이야.”
아이들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어깨를 반듯하게 펴고 대답했다.
“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엄마에게 자랑했다.
“엄마, 나 반장 됐어.”
엄마는 오징어를 가지런히 펴던 손을 멈추고 환하게 웃었다.
“우리 막내가 반장이 됐어? 아이고, 장하다.”
엄마는 내 엉덩이를 통통 두드리고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까칠한 손바닥이었지만 나는 그 손이 좋았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선생님은 아무 설명도 없이 창민이를 교탁 앞으로 불렀다.
“오늘부터 창민이가 반장을 한다.”
나는 귀를 의심했다. 선생님은 나를 보지도 않았다.
쉬는 시간이 되자 어제 청소 당번이었던 석진이가 내게 다가와 소곤거렸다.
“어제 창민이 엄마가 선생님을 만나러 왔어. 예쁜 보자기를 주는 걸 봤어.”
“그 안에 뭐가 있었는데?”
“몰라. 그런데 선생님이 아주 좋아하셨어.”
창민이는 새로 산 운동화를 신고 교실을 돌아다니며 아이들에게 명령했다.
“떠들지 마. 내가 반장이야.”
나는 온종일 입을 다물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바카라가방을 내던졌다.
“엄마 때문이야!”
장사를 하러 가기 위해 짐을 싸고 있던 엄마가 놀라 나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니?”
“엄마는 학교에 한 번도 안 오잖아. 창민이 엄마는 선생님한테 선물도 줬대. 그래서 창민이가 반장이 됐어.”
엄마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그게 정말이니?”
“엄마도 뭐라도 갖다 줘. 나 다시 반장 시켜 달라고 해!”
나는 발을 쾅쾅 구르며 소리쳤다.
엄마는 한참 말이 없었다.
다음 날, 엄마는 장에 나가는 대신 학교에 왔다. 빛이 바랜 치마에 낡은 구두를 신고, 분홍 보자기를 들고 왔다.
나는 교실 창문으로 엄마를 보았다.
엄마는 교무실 앞에서 몇 번이나 옷매무새를 고쳤다. 그리고 허리를 깊이 숙여 선생님에게 보자기를 내밀었다.
선생님은 보자기를 받아 들었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다시 반장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음 날, 선생님은 수업이 끝난 뒤 나를 불렀다. 바카라상 밑에서 어제의 보자기를 꺼내 내 품에 안겨 주었다.
“이거 어머니께 다시 갖다 드려라.”
“왜요?”
선생님은 입술을 비뚤게 웃었다.
“마음만 받겠다고 말씀드려라.”
아이들이 킥킥 웃었다.
보자기 틈으로 마른오징어 다리가 삐죽 나와 있었다. 엄마가 새벽마다 먼 장터를 돌아다니며 팔던 오징어였다.
나는 얼굴이 뜨거워졌다.
집에 돌아오자 엄마는 마루에 앉아 멸치를 고르고 있었다.
나는 오징어 보자기를 엄마 앞에 힘껏 던졌다.
“선생님이 이런 건 필요 없대!”
오징어가 마루 위로 흩어졌다.
“엄마는 왜 이런 것밖에 없어? 다른 엄마처럼 좋은 걸 갖다 주면 안 돼?”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울면서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놀이터 그네에 앉아 한참을 울었다. 자꾸만 엄마한테 쏟아낸 말들이 마음을 긁었다. 해가 지자 낡은 아파트 창문마다 노란 불빛이 켜졌다. 아이들은 하나둘 엄마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그제야 조금 무서워졌다.
그때 놀이터 입구에 엄마가 나타났다.
엄마는 장에 갈 때 입는 낡은 겉옷도 걸치지 못한 채, 숨을 헐떡이며 놀이터를 돌아다녔다. 그네에 앉은 나를 발견하고는 새끼 잃은 어미 사슴처럼 달려왔다.
“여기 있었구나.”
엄마는 나를 꾸짖지 않았다.
“집에 가자.”
나는 고개를 돌렸다.
“싫어.”
엄마는 내 앞에 등을 보이며 쪼그려 앉았다.
“업혀. 날이 춥다.”
나는 망설이다 못 이기는 척 엄마의 등에 업혔다.
엄마 등은 생각보다 작았다. 장터를 돌며 무거운 보따리를 지던 등이었다. 나는 엄마의 목을 감싸 안았다. 엄마의 옷에서는 익숙한 바다 냄새가 났다.
집으로 가는 길에 엄마가 조용히 말했다.
“엄마가 미안해. 그것밖에 못해줘서......”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엄마는 선생님 마음을 살 만큼 좋은 건 없지만, 내 새끼 사랑하는 마음은......”
엄마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나는 엄마 등에 머리를 기댔다. 작은 떨림이 느껴졌다.
“엄마.”
“왜?”
“오징어 냄새 안 나.”
엄마가 걸음을 멈추었다.
나는 엄마를 더 꼭 안았다.
“바다 냄새 나.”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다시 걸었다.
집으로 돌아온 난 마루 한편에 곱게 접힌 보자기를 보았다. 나는 엄마 옆에 앉아 멸치의 머리를 함께 떼었다. 엄마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입가엔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지만 눈은 슬픔을 담고 있었다.
다음 날에도 창민이는 반장이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반장을 빼앗겼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게는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새벽마다 장터로 향하던 엄마의 등과, 그 등에 가득 실린 사랑이었다.
나중에 나는 알게 되었다.
엄마가 가져간 오징어 두 축은 남은 물건이 아니었다. 엄마가 가장 좋은 것만 골라 묶은 것이었다.
엄마에게는 그것이 가장 귀한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