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꽃

유난히 작고 아름다운 꽃 한 송이

by꽃님

산속 깊은 곳 오두막집에 홀로 양들을 돌보며 사는 목동이 있었어요. 유일한 친구는 양들뿐이었던 목동은 외롭고 쓸쓸했어요.

어느 날 목동이 양들에게 풀을 먹이고 있었어요. 양들 틈사이로 푸른 날개를 단 작고 귀여운 요정이 날아왔어요.

"넌 이름이 뭐니?"

목동이 요정에게 물었어요.

"이름이 뭐예요? 난 그런 거 없어요."

발그레한 볼을 씰룩이며 요정이 말했어요.

"다른 사람이 널 부를 때 쓰는 말이야. 네가 누군지를 알려주지. 이름이 없다면 앞으로 널 트윙클이라고 부를게'"

목동은 요정이 머물 작은 집과 침대를 만들었어요. 요정은 그의 옆에서 자기가 알고 있는 꽃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목동이 일하는 곳 어디든 요정은 따라다니며 목동에게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목동은 요정의 이야기를 듣는 게 좋았어요.

어느 날 목동은 요정에게 예쁜 드레스를 선물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처음으로 마을로 내려왔어요. 옷을 만드는 할머니를 찾아가 세상에서 가장 작고 아름다운 드레스를 만들어달라고 했어요. 할머니는 흔쾌히 허락했어요. 할머니의 솜씨가 워낙 좋아서 요정의 아름다운 드레스가 뚝딱 만들어졌어요. 목동은 난생처음 본 드레스가 신기하면서도 아주 마음에 들었어요.



목동은 기분이 좋았어요. 어서 빨리 집으로 가서 요정에게 드레스를 주고 싶었어요. 목동이 걸음을 재촉하며 다리를 건너는데 어디선가

"살려주세요!"

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다리 아래를 내려다보던 목동은 깜짝 놀랐어요. 여인이 물 위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어요. 목동은 여인을 구해주었어요. 간신히 목숨을 건진 여인은 목동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어요. 목동은 요정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향했어요.


예쁜 드레스를 본 요정은 무척 좋아했어요. 자기를 위해 마을까지 다녀온 목동이 고마웠어요. 요정은 목동을 기쁘게 해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매일 목동이 좋아하는 푸른 꽃을 꺾어오기 시작했어요. 온통 푸른 꽃으로 장식된 집안을 보며 목동은 행복했어요. 목동은 더 이상 외롭지 않았어요.


요정이 목동을 위해 푸른 꽃을 꺾으러 나간 날 궁궐에서 온 군사들이 목동을 데려갔어요. 그것도 모르고 요정은 열심히 꽃을 꺾었어요.

성에 온 목동은 눈이 휘둥그레졌어요. 성안에 멋진 장식품들, 멋진 옷을 입은 사람들, 좋은 향기에 목동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어요. 그날 물속에서 구해준 여인은 사실은 이 나라 공주였어요. 반란군에게 잡혀 강물에 던져졌던 거예요. 살아서 다시 여왕이 된 여인은 목동에게 멋진 파티를 열어주었어요.

화려한 왕궁 생활에 목동은 산속 오두막에 있는 양들과 요정을 까맣게 잊었어요.

요정은 목동을 기다렸어요. 오두막에 더 이상 먹을 풀이 없어졌어요. 요정은 슬펐어요.

겨울이 찾아오자 마지막 양마저 눈을 감았어요. 요정은 양의 차가운 몸을 작은 두 팔로 끌어안았지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어요.


목동이 만들어준 작은 집으로 돌아온 요정은 목동이 선물한 드레스를 입고, 목동이 좋아하던 꽃 한 송이를 품에 안은 채 침대에 누웠어요.
밤새 눈이 내렸고, 이튿날 요정의 작은 집은 눈 속에 파묻혔어요.



봄이 되자 텅 빈 양 우리와 오두막 주변에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났어요. 목동이 좋아했던 꽃들이었지요. 요정의 작은 집이 있던 자리에는 유난히 작고 아름다운 꽃 한 송이가 피어 있었어요. 꽃잎은 목동이 선물한 드레스와 같은 색이었어요.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늙고 지친 목동이 산속 오두막으로 돌아왔어요. 성의 화려한 생활 속에서도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 때문에 자신이 가장 행복했던 곳을 떠올린 것이었어요.
그러나 오두막은 무너져 있었고 양들은 보이지 않았어요. 목동은 먼지가 쌓인 식탁 위에서 말라붙은 꽃다발들을 발견했어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요정이 가져다 놓은 꽃들이었어요.
그때 작은 꽃 한 송이가 바람도 없는데 살며시 흔들렸어요.



목동은 꽃 앞에 무릎을 꿇었어요. 꽃잎 사이에는 요정이 드레스와 함께 달아두었던 아주 작은 리본 조각이 남아 있었어요. 그제야 목동은 자신을 기다렸을 요정을 떠올렸어요.
목동의 눈물 한 방울이 꽃 위로 떨어졌어요. 꽃에서 작은 빛이 피어올랐고, 빛 속에서 요정의 모습이 희미하게 나타났어요. 요정은 목동을 원망하지 않았어요. 예전처럼 환하게 웃으며 목동의 뺨을 어루만졌어요.
목동이 손을 내밀자 요정은 작은 빛이 되어 밤하늘로 올라갔어요. 수많은 별 가운데 가장 작지만 가장 밝은 별이 되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