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간송미술관, 아트도서관 방문기
연일 40도에 육박하는 매서운 폭염이 기세를 부린다. ‘미인(美人)’를 만나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다. 더구나 여름 더위로 유명한 대구가 아니던가. 조금이나마 더위를 피해보려 애썼으나, 아침부터 내리쬐는 햇빛은 나의 소박한 생각을 비웃는 듯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대구간송미술관과 지인이 일하고 있는 아트도서관이다.
늘 마음에 품었던 '여인'을 직접 대면한다는 마음에 아침부터 설레었다. 대구간송미술관은 이번이 여섯 번째이다. 이전에는 연수의 일환으로 단체 방문을 했지만, 개인적인 걸음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상설전시관의 컬렉션이 전면 교체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실물로 친견하지 못한 미인도를 관람할 기회였기에 더위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예술의 도시 대구는 ‘근대 서양미술의 발상지’이자 영남권 문화예술의 중심지이다. 한강 이남에서는 근대 서양미술이 가장 먼저 유입되어 꽃을 피운 도시이다. 한국 미술사의 거장인 이인성, 이쾌대를 비롯하여 서세옥, 이강소, 최병소 등이 대구를 기반으로 성장하고 활동하며 한국 미술의 기틀을 닦았다. 그러다 보니 예술품에 대한 안목과 구매력이 높은 전통적인 컬렉터 층이 두텁기로 유명하다. 국내외 대형 화랑들과 아트페어가 대구 시장을 특별 대우할 만큼, 미술 소비와 향유 문화가 전국 최고 수준으로 활성화되어 있다고 한다. 아울러 수성구, 달성군 등 지자체들이 정부 지정 법정 문화도시로 활약하며 도시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미술관이자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간송미술관의 분관이 대구에 자리 잡은 것은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른다.
간송미술관의 소장품은 단순한 유물의 수집이 아니라 ‘일제강점기 민족 문화의 단절 위기를 막아낸 방파제’이자 ‘한국 미술사의 뼈대를 이루는 핵심 기준점’이다. 간송의 소장품은 한국 미술이 중국의 영향 아래에만 머물지 않고 세계 최고 수준의 독창적 미감을 꽃피웠음을 증명하는 물적 증거가 된다. 특히,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등 조선 후기 화단을 이끈 거장들의 최고 걸작을 보유하고 있어, 간송 컬렉션 없이 조선 회화사를 기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쏟아지는 햇살을 뚫고 드디어 도착했다. 이른 시간임에도 많은 관람객이 몰려 있어 간송미술관의 위상을 실감케 했다. 제1전시관에는 이전 방문에서 볼 수 없었던 서화와 도자를 중심으로 전시되고 있었다. 일 년에 세 차례 소장품을 순차적으로 전시한다고 하니, 한 개인의 뛰어난 예술적 안목과 그의 문화유산에 대한 헌신, 그리고 이를 보존하고자 했던 열정에 절로 경의가 느껴졌다. 여름철에 걸맞게 부채화를 비롯한 서화 작품들이 눈길을 끌었다.
작품들의 명칭 또한, 기발하고 재미있었다. 오원 장승업이 남긴 비 갠 뒤의 산골 풍경을 담은 진경산수화 <미산이곡 眉山梨谷>은 습한 여름날의 정취를 고스란히 머금고 있었고, 여름철 강과 호수에서 즐겁게 고기를 잡는 풍경을 담은 <강호어락 江湖漁樂>과 <수탐포어 手探捕魚> 는 보기에도 무더위를 씻어내는 듯했다. 특히 손을 더듬어 물고기를 잡는 풍경을 담은 <수탐포어>는 '과연 이렇게 해서 물고기를 잡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다가도 그림의 한 곳에 잡힌 물고기가 그려져 있어 더 해학적으로 느껴졌다. 나귀를 타고 멀리 유람하는 <기려원유 騎驢遠游>, 꽃을 찾아 노니는 나비를 그린 <호접탐화 蝴蝶探花> 역시 한없이 평화롭고 낭만적이었다.
제2전시관은 유덕장의 작품 <설죽 雪竹> 한 점이 단아하게 내걸렸다. 8월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 만난 '눈 맞은 대나무'는 그 자체로 아찔한 시원함과 서늘함을 선사했다. 하얀 눈발이 내려앉은 이 <설죽> 그림은 겨울이 아닌 여름에 그려진 것이라고 한다. 그림으로나마 누군가의 더위를 식혀주고 싶었던 화가의 따뜻하고 다정한 마음이 더욱 시원하고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드디어 오늘의 목적, '미인(美人)'을 만날 차례이다. 그녀에게 이르는 길, ‘아름다운 사람이 있는 방, 미인도실’. 한지 특유의 은은한 향이 어두운 조명과 어우러져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긴 통로를 지나 정면에 위치한 작은 방에 다다르자, 한지로 마감한 온화한 공간, 방안에는 오직 한 사람, 아름다운 사람이 홀로 서 있었다.
단아한 자태의 여인이 배경이 없이 홀로 서 있는 모습,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느껴질 만큼 섬세한 머릿결과 가냘픈 어깨, 은은한 미소, 한복 아래로 살짝 내민 외씨버선 등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조선 미인도의 정수였다. 저고리 고름을 매만지는 손길과 살짝 숙인 고개 그리고 몸에 꽉 조인 듯한 상의에 비해 부풀린 치마의 풍성함에서 여인의 수줍음과 욕망이 동시에 읽혔다.
성리학의 나라이자 엄격한 남성 중심의 유교 슬롯였던 조선 후기, 신윤복은 당시 억압받던 여성(기생)을 전면에 내세워 아름다움의 주체로 격상시켰다는 점에서 혁명적이다. 그는 왜 이 그림을 그렸을까?
미인도를 관람하면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와 북유럽의 모나리자라고 하는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생각났다. 이들 세 작품은 여러모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동서양의 대표적 여성 초상화이자, 시대와 지역의 미적 이상향을 구현한 걸작이라는 점이 그것이다. 또한, 미술사적으로 <모나리자>는 신(神) 중심의 중세에서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 인문주의 정신의 선언이었고,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경우 왕족이나 귀족의 전유물이었던 미술이 일반 대중이 미술의 소비자가 되었던 17세기 네덜란드 황금기의 시대상을 반영하였듯, 신윤복 역시 남성 중심의 유교 슬롯에 던지는 조용한 도전으로서 이 미인을 그리지 않았을까?
진시 공간 자체의 기품 또한 인상적이었다. 진흙 속에 묻혀 있어도 명품은 제 스스로 그 빛을 드러내지만, 그 진가를 극대화하는 것은 결국 공간의 힘이다. 미인도실 공간 설계는 국립부여박물관 ‘백제대향로관’ 공간설계를 통해 그 진가를 드러낸 공간 스튜디오 WGNB가 참여했다고 한다. 그들은 통로의 벽과 전시관 내부를 한지로 꼼꼼히 채움으로써 한지가 주는 질감과 그 특유의 향이 진시공간을 한옥의 사랑방 또는 안방으로 탈바꿈시켰다. 그 덕분에 조용하고 편안한 방에서 깊숙이 보관해 둔 귀한 작품을 경건한 마음으로 감상하는 듯한 특별한 경험을 안겨주었다.
작은 공간에 관람객이 몰려 처음에는 충분히 감상하기 어려웠으나, 떠나기 전에 아쉬움에 다시 찾은 전시실은 운이 좋게도 비어 있었다. 맞은편의 <미인도>를 홀로 독대하며 관람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미술관을 나오니 한 여름의 열기가 한꺼번에 몰아쳤다. 개인적으로 여름을 좋아한다. 눈부신 햇살, 초록으로 뒤덮인 산과 들, 반짝이는 윤슬, 그리고 젊음의 상징 같은 활력이 넘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의 여름은 너무나 매섭다.
대구미술관 관람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지인이 일하고 있는 ‘대구 아트도서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아트도서이 자리한 곳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이다. 우록길(우록리)로 접어드니 수려한 산세와 청정한 계곡 풍경이 펼쳐져 가슴속까지 시원하게 해 주었다. '우록리(友鹿里)'라는 지명은 '사슴을 친구로 삼아 어울리는 마을'이라는 뜻을 지닌다. 세상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조용히 살아가고자 했던 지명의 유래가 이름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 조선으로 귀화한 일본 장수 사야가(沙也可, 김충선 장군)가 선조로부터 '김해 김 씨'의 성과 함께 함께 이곳에 뿌리를 내린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자연과 역사, 문화가 숨 쉬는 이곳에 아트도서관이 들어선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처럼 느껴졌다.
대구 아트도서관은 국내 최초의 미술 전문 사립 도서관이다. 이곳을 일군 허두환 관장은 여러모로 간송 전형필 선생을 떠 오르게 한다. 그는 평생을 걸쳐 수집한 방대한 미술자료를 슬롯와 공유하며 지역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해 온 인물이다. 30대 시절부터 국내외 인사동 화랑가, 고서점 등을 뒤지며 미술서적, 화집, 전시 도록, 리플릿 등을 수집했고, 국립도서관에서도 구하기 힘든 희귀 비매품 도록이나 근현대 미술 기록물들을 다량 소장하고 있다.
일반 대중도 시각예술 자료를 쉽게 접할 수 있는 문턱 낮은 문화 공간을 만드고자 2012년 대구 수성구 만촌동에 처음 아트도서관을 열었다. 그러나 2020년 대형 화재로 수십 년간 모은 소중한 장서가 소실되는 비극을 겪었다. 극심한 상심 속에서도 그는 절망을 딛고 이곳 가창에서 재기에 성공했다. 그는 단순히 바카라을 보관하는 관장을 넘어 지역 작가들을 발굴해 도서관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열어주고 대중 강좌를 기획하는 등 미술 대중화에 앞장서는 문화전도사의 역할을 하고 있다.
아트도서관은 3층건물로 지하층은 자료 수장고, 1층엔 북카페 겸 전시관, 2층엔 도서관과 갤러리 공간으로 쓰이며 3층은 주거공간이다. 1층 북카페에는 거대한 화집들과 고서적이 전시되고 있고, 한쪽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저서, 예술 관련 서적, 미술작품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었다.
2층에 올라가니 동서양 미술 관련 서적과 화집, 도록, 그리고 동화바카라에 이르기까지 서가마다 수많은 바카라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만약 바카라으로만 둘러싸여 있었다면 답답했을 텐데. 넓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바깥의 초록 수목이 차경(借景)되어 도서관 공간을 더욱 풍요롭고 여유롭게 만들어 주었다. 도서관의 구석구석 주인의 정성스러운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정리되지 않은 듯 쌓여 있지만 각종 서적과 자료는 주인의 뜻에 따라 제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이곳이 도서관(Library), 기록관(Archives), 미술관(Museum)의 기능을 겸한 라키비움(Larchiveum) 공간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국내 어디에서도 이토록 미술, 건축, 디자인, 사진, 회화 도록 등 이렇게 많은 시각예술 전문 자료를 한자리에 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허두환 관장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의 말에는 예술을 향한 순수한 열정과 깊은 철학이 베어져 있었다. 특히, 도서관 설립 배경과 아카이브의 중요성을 말할 때에는 한 사람의 집념과 헌신이 우리 슬롯에 얼마나 숭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간송의 헌신이 오늘날 우리 문화유산을 더 풍성하게 하고 한국미술의 세계화에 공헌했듯이, 허두환 관장의 열정 역시 대구를 예술의 도시로 단단하게 지탱하는 귀한 힘이 되고 있다.
도서관이야말로 시간과 지식과 예술이 멈추지 않는 한 매일매일 새로운 꿈을 꾸고 달려가고 그리고는 꿈을 이루는, 그리하여 마침내는 꿈이 아트가 되는 공간입니다. - 대구신문, 허두환 관장 인터뷰 중에서
누군가에겐 꿈이고, 누군가에겐 현실이다. 각박한 현실 속에서 꿈을 개척하는 일은 언제나 힘들고 외롭고 어렵다. 그의 꿈이 우리 모두의 풍요로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슬롯적 관심과 지원이 절실한 시점이다. 북카페에서 피자를 나눠 먹으며 '규모는 작더라도 나만의 문화 공간을 만드는 것이 로망'이라고 말씀드렸더니, 관장님은 특유의 소탈한 미소로 손사래를 치셨다. '그 길은 너무 힘들고 고됩니다. 그저 완성된 공간을 마음껏 즐기세요. 멋진 목욕탕을 새로 짓고 관리하려 애쓰기보다 좋은 목욕탕을 찾아가 즐기시면 됩니다'라고 하셨다.
늘 우리 가족을 사랑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 주시는 지인께서 나를 보면서 근래 본 모습 중에서 오늘 표정이 제일 좋아 보인다고 하셨다. 아마도 아트도서관에서 보낸 시간 덕분이었으리라. 좋은 공간을 알게 되었고 또한 온전히 즐길거리가 생겼음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돌아오는 길, 아트도서관에서 작은 미술 작품 한 점을 입양했다. 대구에서 활동하는 서양화가 강석원 작가가 그린 아트도서관의 풍경화이다. 올여름이 다 가기 전, 이번에는 관람자가 아닌 유유자적 독서와 힐링을 위해 이곳을 찾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