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동욱, <철학은 결말을 바꾼다>를 읽고
모든 시간 여행자들의 꿈이 있다. 결말을 바꾸는 것이다. - 서동욱, <철학은 결말을 바꾼다> 중에서
<어바웃타임>이라는 영화는 이러한 사람들의 욕망에 의해 탄생되었다. 영화 <어바웃타임>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르이고, 로맨틱 코미디의 거장 리처드 커티스 감독의 작품이라 여러 번 보았다. 볼 때마다 즐겁고 새롭다. 표면적으로는 '시간여행'이라는 판타지 요소를 가미한 로맨스 영화이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가족애와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깊은 메시지에 언제나 감동적이다.
주인공 팀(도널 글리슨 분)은 성인이 되던 날, 아버지(빌 나이 분)로부터 가문의 남자들은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능력을 사랑하여 사랑스러운 메리(레이첼 맥아담스 분)와 사랑의 결실을 맺고 결혼하여 가정을 꾸린다.
누구나 완벽한 인생을 꿈꾼다. 그런데 완벽한 인생을 만드는 것은 '완벽한 선택'에 의해서가 아니다. 팀은 시간여행을 통해 실수를 바로 잡고 서툰 순간을 리플레이한다. 하지만 과거를 바꾸어도 타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었고, 오히려 다른 사람의 불행이나 슬픔을 통제하려다 이로 인해 더 큰 부작용이 생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결국, 인생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게 진짜 삶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실 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영화에서의 상상 속 이야기이다. 한 번 흘러간 시간은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 모두가 안다. 그래서 늘 아쉬워하고 후회하며 자바카라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잊고 있는 것이 있다. 과거와는 달리 다가오는 미래는 현재의 삶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즉, 우리도 결말을 바꿀 수 있다.
바카라 <철학은 결말을 바꾼다>의 저자 서동욱교수는 철학자이자 시인이고 문학평론가이다. 들뢰즈연구로 벨기에 루뱅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서강대에 재직 중이다. 전작 <철학은 날씨를 바꾼다>로 많은 독자로부터 사랑받은 저자는 최근 이 바카라을 출간하며 다시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철학을 통해 결말을 바꿀 수 있다니 얼마나 매력적인 선언인가. 부제는 '삶의 무의미를 견디는 연습'이다.
내가 이 바카라을 읽게 된 계기는 최근 한 일간지에 실린 서 교수의 칼럼 '신상도, 맛집도, 새 애인도 권태롭다면'을 읽고 나서였다. 그의 글은 속독하기보다는 곁에 두고 천천히 곱씹으며 사유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특히, 직설적이지 않고 은유적으로 글을 써서 상처받지 않고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서 교수에 의하면 모든 권태의 원인은 나 자신에게서 비롯되며, 억지로 욕망을 없앤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은 허기와 포만감 사이에서 늘 권태에 빠지는 존재이며, 욕망이 곧 인간의 정체성이기에 권태는 필연적이다. 인간이 지금껏 해온 일이라곤 자기 자신에게 온갖 쾌락을 조공으로 바치는 것이었고, 그 조공이 지겨워지면 심술주머니를 터뜨리듯 권태를 일으킨다.
따라서 저자는 권태에서 벗어나는 해법으로 '나 자신과의 이별'을 제시한다. 권태를 소멸시키려면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하는 일에서 벗어나, 내가 온전히 몰두할 수 있는 가치 있는 다른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 자신을 위하는 것이 아닌 일', 과연 그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바카라의 전반에 걸쳐 그 답을 일상의 다양한 풍경을 통해 보여준다.
이 바카라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일상적인 감정과 제도들을 철학, 문학, 미술, 게임 등 다양한 인문학적 시각으로 들여다본다.
1부 일상의 보석에서는 먹방, 자유, 부끄러움, 쾌락, 외로움, 권태 등 매일 생활 속에서 맞닥뜨리는 소재에서 존재의 철학을 찾는다. 애초에 혼자인 자는 고독 자체를 알 수 없다. 타인과 더불어 있음을 전제되어야 더불어 있음의 결여적 양식으로 고독의 가치가 출현한다고 본다. 아울러 식사의 행위가 단순히 생존을 넘어 타인과 더불어 사는 삶의 형식을 결정함을 짚어낸다.
2부 인생의 공부거리에서는 공포, 사랑과 질투, 가족, 공부 등 인간을 성장시키는 경험을 다룬다. 특히, 실망이라는 쓰라린 경험은 인간의 유한성을 깨닫고 변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공부의 최종 지점은 '자유인'임을 강조한다. 공부는 삶의 연습이며, 삶의 문제를 뛰어넘기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생각의 연습'이다.
3부 세계가 숨긴 법칙은 보게임, 출산, 4차 산업혁명 등 공동체와 미래슬롯에 관한 철학적 전망을 제시한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의 핵심에 판단력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보드게임을 통해 민주주의 규칙과 소통을 연습을 과정을 논한다.
4부 우리가 사는 방식에서는 모방, 예술 감상, 음악, 지리학 등을 넘나들며 정형화된 삶의 틀을 깨는 다채로운 사유를 펼쳐 보인다.
글을 읽으면서 인간은 언제 진정으로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낄까 자문을 해보았다. 개인적인 경험을 보태자면,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가기가 두려운 치과 의자에 누웠을 때 나는 역설적으로 내가 살아있음을 강렬하게 느낀다. 지난 삶의 게으른 결과로 오랜 기간 동안 치료를 받아야 했을 때 마취에도 불구하고 깊이 파고드는 고통의 순간들은 내가 살아있음의 가장 완벽한 증거였다. 당시 나를 더욱 우울하게 만든 것은 치료를 받던 그 순간의 고통이 아니라 또다시 그 고통의 순간을 알면서도 내 발로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이었다.
나의 이 사소한 깨달음은 저자가 큰 사고로 고통 속에서 사유한 본질과도 맞닿아 있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섰던 저자는 당시 자신에게 덮쳤던 모든 걱정은 죽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살아나가는 방식이었다고 고백한다. 통증은 살아 있는 것 속에서만 요란하게 울리는 정직한 자명종이며, 삶은 삶에 충실하려 할 뿐이라고 한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고통 속에서 살아있음을 느끼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흔들고 살아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종교가 생겨나고 번뇌의 늪에서 벗어나고자 스스로 고통을 감내하기도 하지만, 결국 고통과 번뇌 속에서 사유의 힘을 깨닫고 인간이 다른 종과는 다른 존재임을 증명한다.
벗어나려 하지 마라. 현재의 자리에서 느끼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게 바로 '나'이고 인생이고 '삶'이다.
영화 후반부, 아버지가 팀에게 시간 여행의 팁을 건넨다. '첫 번째 살 때는 긴장과 걱정 때문에 보지 못했던 세상의 아름다움을, 두 번째 살 때는 여유를 가지고 미소 지으며 바라보아라.' 이 조언을 통해 팀은 평범하고 지친 매일의 일상과 실수로 가득한 하루조차, 자신의 마음가짐에 따라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이 될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팀은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가지 않기로 결심한다.
삶의 여정에서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맞닥뜨리는 오류와 오류의 만회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우리가 계속해서 삶을 영위하는 건 결국 잘못된 것이 그로 흘러가게 두고 싶지 않은 삶의 결말을 바꾸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말을 바꾸는 핵심은 결국, 마음가짐 즉 '생각의 힘'에 있다.
서동욱 교수는 정신없이 살다 보면 나날은 폐지처럼 쌓이고 생각만이 거기서 무엇이 가치 있는 한 페이지이고 소중히 간직해야만 하는 것인지, 무엇을 버려서는 안 되고, 어떤 것이 결말이라는 미래에 빛을 비춰줄 수 있는지 알게 해 준다고 말한다. 그는 이 바카라을 두고 삶에 대한 바카라이 아닌 삶과 함께 있으려는 바카라이다고 한다.
흘러간 시간을 되돌릴 순 없다. 하지만, 오늘을 바라보는 나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삶의 결말을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철학이 바꾼 결말은 결국, 오늘이라는 매일의 기적이다. 그럼에도 가끔은 시간 여행을 꿈꾼다. 삶이란 누구에게나 그리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과거로 돌아가지 않아도, 지금 이 순간을 깊이 사유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내 삶의 결말은 바뀌어가고 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