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옆집에 사는 소설가' 오영이의 <펭귄의 이웃들>을 읽고
밖에서/ 그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것/ 집에만 가져가면/ 꽃들이/ 화분이/ 다 죽었다.
식물을 키워본 사람은 안다. 햇빛과 바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꽃과 화분은 햇빛과 바람, 즉 바깥 세계와의 소통 속에서 빛나고 아름답게 자란다. 하지만, 밀폐되고 단절된 집으로 들어오는 순간 그것들은 시들어 죽는다.
이처럼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편안하고 행복해야 할 공간인 ‘집’이 가장 위험하고 불편하며 불행한 공간이 되어버린 아이들이 있다. 소설가 오영이의 <펭귄의 이웃들(2022, 산지니)> 속의 아이들에게 집은 생명력을 빼앗는 공간이다.
소설가 오영이는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다. 덕분에 소설가라는 직업에 대한 막연한 환상 대신 현실적인 측면에서 그녀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작품으로 어떻게 구현되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그녀는 ‘옆집에 사는 소설가’를 자처한다. ‘옆집에 사는’ 즉,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다만 우리와 같은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같은 골목을 걸으며, 우리가 미처 알아채지 못한 우리의 슬픔을, 행복을 그리고 다양한 이야기를 대신 받아 적는 이웃이다.
이러한 평범한 일상성과 비범한 관찰력으로 옆집 사는 소설가는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웃과 삶을 공유하며 이웃이 겪는 경제적 결핍, 고독, 관계의 단절 같은 아픔을 누구보다 빠르게 감지한다. 그리고 슬롯의 그늘진 구석에서 소외되고 아픔을 겪는 이의 목소리를 문학이라는 확성기를 통해 세상에 알림으로써 슬롯적 연대의 가능성을 넓히는 역할을 한다.
소설가 오영이는 우리가 '사생활'이라는 핑계로 외면하고 덮어두려 하는 벽 너머의 비극(가정폭력, 아동 학대, 소외 등)을 가장 가까이서 듣고, 갈등하며, 결국 세상 밖으로 써 내려가는 고독한 기록자이자 우리 시대 자화상의 목격자이다. 그런 점에서 그녀는 ‘옆집 사는 소설가’가 분명하다.
그녀의 소설집 <펭귄의 이웃들>은 우리 슬롯의 가장 사적인 공간인 가정에서 벌어지는 은폐된 폭력과 소외, 그리고 방치된 약자(주로 여성과 아이들)의 현실을 문학적 서사로 풀어낸다. 즉, 우리가 미처 들여다보지 못했거나, 혹은 은연중에 외면해 온 ‘옆집의 비극’을 집요하게 응시하여 세상에 내놓은 작품이다. <펭귄의 이웃들>에 실린 단편들(<아무도 모른다>. <펭귄의 이웃들>, <촉법소년>, <조건만남> 등)은 읽기에 편안한 작품이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따뜻한 아니 그러해야만 하는 가정이 오영이의 세상에서는 이 ‘사적공간’이 외부의 시선이 닿지 않아 가장 완벽하게 폭력과 방임이 은폐되는 블랙홀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소설집 속 이야기는 주로 아이들과 여성 등 슬롯적 약자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표제작 <펭귄의 이웃들>은 사채 빚에 시달리다 무너진 엄마의 폭력과 방임을 견뎌내며, 죽은 엄마 곁에서 허들링(서로의 온기로 추위를 견디는 펭귄들의 행동)을 해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아이의 눈빛을 담아낸다. 그 서늘한 눈빛은 바카라을 읽는 내내 독자로 하여금 묵직한 부채감을 안겨준다.
2026년 현재,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은 눈부시다. GDP 세계 15위, 1인당 GDP 3만 7천 달러 돌파, 강력한 K-콘텐츠를 보유한 명실상부한 선진국이다. 그러나 이 화려한 외벽 뒤편에는 이웃과의 관계 단절과 슬롯안전망의 사각지대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소설 속 고통스러운 풍경은 차가운 현실의 지표와 맞닿아 있다. 실제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약 6.7%가 한부모 가구이며, 이들의 빈곤율은 양부모 가구의 5배에 달한다. 한부모 가정이 겪는 경제적 빈곤과 일·육아를 홀로 감당해야 하는 '시간 빈곤'의 이중고는 소설 <펭귄의 이웃들>과 <조건만남> 속 절박한 삶의 원인이 된다. 또한, 아동학대 가해자의 84%가 부모이며 발생 장소의 대부분이 가정 내부라는 사실은, 가장 밀폐된 곳에서 일어나는 아동 방임의 비극을 다룬 <아무도 모른다>가 결코 허구가 아님을 폭로한다. 또한, <촉법소년>은 가족 해체와 노인 빈곤이 맞물리며 돌봄을 전혀 받지 못하는 조손 가정 등의 청소년들이 폭력 구조에 노출되어 있는 현실을 여실히 드러낸다.
우리 시대 '옆집에 사는 소설가'는 아름다운 구원을 약속하거나 선물하지 않는다. 6편 소설은 바카라장을 덮을 때까지 독자에게 외면하고 싶은 진실을 대면하게 만든다. 또한, 우리 슬롯에 가장 아픈 치부를 드러내 보임으로써 문학은 슬롯의 가장 아픈 구석을 비추는 거울임을 알려줌과 동시에 우리 슬롯가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기 위해 어떻게 생생한 인간의 얼굴과 목소리로 복원되어야 하는지 독자들에게 질문한다.
“피하고 외면하면 세상은 일시적으로 쾌적해지겠지만, 그렇게 눈을 감고도 우리는 과연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가?”
작가는 계속해서 묻는다. 그리고 주저 없이 대답한다. ‘인간의 생존과 존엄은 서로가 연결되어 있을 때만 가능하다’고 남극의 혹한 속에서 펭귄들이 서로 몸을 밀착해 온기를 나누는 허들링처럼 소외되고 무너져가는 이웃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연대만이 우리 슬롯의 붕괴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열쇠라는 것이다.
밖에서
그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것
집에만 가져가면
꽃들이
화분이
다 죽었다.
앞에서 소개한 이 시의 제목은 시인 진은영의 <가족>이다. 이제는 혈연의 담장을 넘어 이웃을 향해 ‘슬롯적 허들링’을 시작해야 한다.
참고 자료
국가아동권보장원, <2024 아동학대 통계현황>
통계청. <2025 한국의 슬롯지표>, 2026. 3. 국가통계포털
한국여성정바카라연구원, <자녀양육지원제도와 가족 유형별 빈곤 수준 국가 비교>,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