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간이로소이다(II)

- 스파이더맨, 오디세이, 그리고 호프를 보고

byeduist 이길재

최근 핫한 영화를 여러 편을 봤다. 영화 보기를 좋아하긴 하지만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만큼 여유가 없어서인지 그동안 자주 가지 않았다. 상반기 1,600만 명을 동원한 영화 관람 행렬에도 동참하지 않았고, 최애 소설(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영화도 보지 않았다. 완성도 높은 영화가 아니라는 판단에 국민적 관심에 대한 반대급부로 동참하기 싫은 삐뚤어진 마음과 바카라에서의 재미를 조금이나마 더 가져가고픈 마음에 시기를 놓친 게으름으로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지난 1주일이란 짧은 기간에 바쁜 시간을 쪼개 영화를 연속해서 3편을 본 이유는 아마 올여름 유례없는 폭염의 영향이 크다. 솔직히 쾌적한 실내에서 가성비가 높은 적은 비용으로 영화관람과 피서를 만끽하다니 이만한 횡재도 어디 있는가 싶다. 더구나 요즘 가장 핫한 영화 스파이더맨 4, 오디세이, 그리고 호프를 모두 관람했으니.


세 편의 영화 모두 영웅담이면서도 각기 다른 세계관과 재미를 선사했다. 무엇보다 즐거웠던 건 요즘 젊은 사람들의 대화에 낄 수 있었다는 점이다. 함께 식사하는 직원들과 함께 공통의 화제를 두고 얘기를 나눌 수 있다니 어찌 거부할 수 있는 선택지란 말인가. 없는 시간도 만들어서 보아야만 할 과제와도 같은 것이었다. 이것 역시 더위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스파이더맨은 마블 시리즈의 여러 히어로 중에서도 내가 가장 애정하는 캐릭터다. 다른 히어로들처럼 그 역시 원죄적 고뇌 즉, '큰 힘에는 큰 바카라임이 따른다'는 것과 미숙했던 유년기의 행동으로 인한 숙부의 죽음 그리고 이후 시리즈에서의 숙모의 죽음에 대해 죄바카라감에 사로 잡혀 있지만, 상대적으로 사춘기 시기의 나이에 따른 미숙하거나 영웅심리로 우쭐거리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편에서 스파이더맨은 완전히 달라졌다. 기존 시리즈에서의 아이언맨이나 닥터 스트레인지 같은 든든한 멘토도, 최첨단 슈트의 기술 지원도, 연인 MJ와 친구 네드의 조력조차 없다. 직접 만든 천 슈트를 입고 홀로 모든 선택과 바카라임을 짊어지며 '완전한 독립형 영웅'으로 거듭난다. 풋풋한 틴에이저의 웃음기를 걷어낸 자리에 상실감과 외로움, 그리고 가면 뒤에 자신을 숨겨야 하는 고독한 고뇌가 고스란히 묻어났다. 또한,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로서는 스파이더맨이 마천루 사이를 날아다니는 장면은 볼 때마다 상상 이상의 짜릿함을 느꼈다. 복잡하게 얽힌 현대 마블 세계관의 피로감에서 벗어나서 조금은 간결한 세계관에서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홀로 악과 맞서 싸우는 한 명의 영웅을 응원하게 되는 본연의 고전적 영웅담으로써 깊은 울림을 주었다.


가면이란 늘 양면적이다. 숨기고 싶고 때론 드러내고 싶고.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지만 그 내면엔 누군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복잡한 마음이 내포되어 있다. 나 역시 그렇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나의 일을 한다고는 하지만 가끔은 몰라줄 때 섭섭하기도 하다. 가면 뒤에 자신을 숨긴 스파이더맨처럼, 현실에도 자신의 공을 드러내지 않은 채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히어로들이 있다. 그중 몇 명은 나도 알고 있다. 물론 그들은 보이는 것, 예를 들면, 괴력이나 하늘을 날아다니거나 엄청난 속도로 달리거나 하는 능력을 가진 것은 아니다. 그들이 하는 일은 소박할지 몰라도 위대하다. 그리고 대부분 사람들은 그들이 한 일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래서, 히어로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그대들이 늘 접하는 당연한 것들이 누군가의 노력으로 희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가끔은 기억할 필요가 있고, 또한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그들도 외롭지 않다는 것을. 내가 하고 있는 일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한 것은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


이처럼 불완전함 속에서도 타인을 위해 애쓰는 게 인간이라면 영웅 서사의 원류인 오디세이 역시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오디세이는 3,000년 전의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인간 삶에 대한 성찰과 고뇌, 삶에 대한 깊은 담론을 가진 이야기이다. 최근 오디세이를 다시 읽고 있는데 영화와 원전의 기본 서사는 동일하되 영화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라기보다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디세이'라는 생각이 든다. 원전의 서사가 워낙 방대하다 보니 이야기를 어떻게 끌고 갈지 신의 존재에 대해 어떻게 접근할지 궁금했는데 감독이전에 훌륭한 각본가로써의 자질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서사의 몰입도가 높고, 특히, CG를 최소화하고 IMAX 필름을 사용한 영상미가 돋보인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3,000여 년의 세월이 지난 옛날이야기가 AI 등 디지털전환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무엇일까? 내 생각엔 결국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날 부각되고 있는 AI에 대한 미래를 보면, 장밋빛 미래이거나 AI시대에 살아가는 무기력한 인간의 모습을 그린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보여준다. AI가 생각하는 인간은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AI 새대를 살아가는 인간은 과연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오디세이는 한마디로 귀향에 대한 이야기이다. 특히, 완벽하지 않은 인간 본연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히어로의 이야기이다.


인간은 언제나 불완전하다. 필멸의 존재이기에 항상 영원한 삶, 불멸의 욕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그것을 뿌리치는 게 인간이다. 세이런의 노래가 죽음을 부를 수 있음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듣고 싶어 하는 게 인간이다. 죽을 고비를 넘겨 탈출에 겨우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겸손은 커녕 스스로 드러내는 게 인간이다. 오디세이를 보면서 또한, 읽으면서 많은 사람들은 이야기의 흐름을 논리적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7년간 칼립소의 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20여 년의 여정에 대한 합리적 타당성 그리고 페넬로페의 20여 년 간의 수절 등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내놓으며 이야기의 허점과 영화의 개연성의 부재와 비논리성에 대해 논쟁한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다. 그러한 모순을 가진 게 인간이다. 완벽하고 논리적이며 합리적인 완전무결한 인간, 그게 인간인가? 모든 것을 AI에게 맡기고 사유마저 외주화 하는 시대에, 효율적이지도 않고 때론 무모해 보이는 오디세우스의 여정은 '생각하고 느끼는 인간 본연의 고유성'이 무엇인지 일깨워준다. 오디세이는 3,000여 년 전의 이야기이지만 지금도 유효하고, 앞으로도 영원히 인간의 이야기로 남을 것이다.


호프는 첫 장면부터 주의를 끌더니 2시간 30여 분을 정말 딴생각이 들지 않게 이야기 끌고 간다. 1시간 넘게 전개되는 시가전에서 한 눈을 팔 겨를이 없었다. 극이 절정에 치닫고 앞으로의 전개가 궁금해질 즈음이 끝났다. 옛날 열악한 시절 영화관에서 한참 재미있을 때 갑자기 극이 중단되며 중간에 끊어먹던 그때가 생각났다. 영화를 보면서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개연성, '저게 왜 나오지?', '개연성이 맞나?'라고 이성적인 질문을 하기에도 버겁게 관객을 몰아붙인다. 현실적인 개연성을 따지자면 의문점이 한둘이 아니지만, 이 영화는 그런 논리적인 잣대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압도적인 몰입감을 선사한다. 호프를 보는 동안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솔직히 생각은 영화를 본 후의 일이고, 영화를 보는 동안엔 무념무상이었다. 영화라는 영상예술이 최초로 등장했을 땐 그저 움직임에 대한 신기함과 철로를 다니는 기차가 움직여 스크린 밖에 튀어나올 것 같은 두려움에 대한 인간의 인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 후 보이는 것 이외에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한 함축적 의미와 서사가 담기면서 여러 가지 해석과 시각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호프는 다음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는 데 의의가 있다. 스펙터클한 영상과 화려한 CG, 그리고 기존의 영상 문법과는 다른 제시는 열외이다. 우리가 접하는 현실 세계를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것으로 해석과 이해가 가능한지 묻고 싶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그저 이야기가 흐를 뿐이다. 그 속에서 개연성과 엄밀한 논리만을 찾는다면 굳이 영화를 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세 편의 영화를 보았고, 제작자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가 관객인 나에게 주어졌다. 단순히 재미있다, 재미없다의 수준을 넘어 옳고 그름, 논리성과 비논리성을 따져 들어가며 봐야 할 만큼 중요한가? 나는 그저 무더위를 피하고 싶었을 뿐이고 그 외 다른 여러 가지 생각과 느낌은 덤이다. 물론 이 덤은 나의 기존의 생각에 영향을 미쳤고 또한,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 더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비논리적이고 때로는 외롭고 미숙하지만, 그렇기에 끊임없이 고민하고 행동하는 존재. 세 편의 영화가 나에게 던진 대답은 결국 하나였다. 그렇다. 나는 인간이로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