쨍쩅한 햇빛이 땅을 덥히고 매미가 나무에서 시끄럽게 우는 여름의 한복판에서 지수는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독거노인의 끼니를 챙기는 봉사이다. 어떤 큰 결심이 있어서 시작한 건 아니었다. "역량은 뛰어나지만..."으로 시작해서 결국은 "다음에 다른 기회로 만나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로 끝나는 수많은 거절 이메일을 받다 보면 그녀 자체가 부정당하는 느낌이 든다. 남들은 거절 메일도 받다 보면 익숙해지고 괜찮아진다는데 지수는 도무지 나아지지 않는다. 아니, 그게 익숙해지는 게 가능한 일이긴 한 걸까? 이렇다 보니 어디든 그녀가 힘을 쏟을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경력은 얼마나 되는지, 이런 것도 해봤고 저런 것도 해봤는지, 리더십은 있는지 없는지 등의 수십 가지의 리스트로 빼곡히 들어찬 Requirements 없이. 그저 '김지수' 그녀 자체로만으로도 오케이가 될 수 있는 그런 곳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녀는 살기 위해 봉사를 신청했다.
"봉사자님은 배식을 도와주세요"
처음 나간 봉사에 지수는 쭈뻣쭈뻣하다. 팀장에게 대략적인 지시사항을 듣고 주위를 둘러보니 혼자 봉사에 나온 사람은 그녀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가 단체 봉사를 나온 사람들과 기존 봉사자들 사이에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보였는지, 눈매가 서글서글한 봉사자 분이 웃으며 그녀에게 말을 건넨다.
"처음 오셨나 봐요"
"아, 네"
"어떻게 오시게 되었어요?"
"SNS에서 우연히 봉사자를 모집한다는 글을 읽었거든요"
"아, 그러시구나. 저는 여기 나온 지 몇 년 됐어요. 옛날엔 봉사하기가 정말 힘들었어요. 땡볕에서. 그래도 지금은 천막도 있고 교대로 에어컨이 있는 실내에서 쉴 수도 있어요"
설사 땡볕에서 봉사를 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지수는 살기 위해 나왔겠지만 그래도 예전보다 환경이 좋아졌다니 지수는 운이 좋다고 생각을 했다. 처음 잡아보는 배식 조리기구로 서툰 손놀림이지만 주변의 봉사자분들의 도움으로 지수는 빠르게 일에 적응했다. 봉사자들의 연령대는 대부분 자녀를 성인으로 다 키운 50~60대가 가장 많았다. 체력이 괜찮으실까? 하고 걱정이 될만한 어르신 분들도 눈에 보였는데, 그분들은 예상외로 에너지가 50대 못지않았다. 인생의 한복판을 지나 이제는 노년에 접어드신 분들의 얼굴에는 무엇인지 모를 여유로움이 있다. 돈이 있어서 묻어 나오는 여유로움이 아니라 뭐랄까, 인생에서 어떤 고통을 만나더라도 인생이 그렇지 뭐 하며 툭툭 털어내며 묵묵히 그 고통을 통과할 것만 같은 그런 여유. 지수는 훗날 그녀가 저 나이가 되면 저런 여유로움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면 그땐 인생이 좀 쉬워질까.
배식을 받기 위해 어르신들이 줄 지어 들어온다. 지수는 긴장을 한다. 왠지 독거노인은 TV에서 본 것처럼 남루한 옷에 냄새를 풍기며 어두운 얼굴을 한 사람일 것 같아서. 하지만 줄 지어 들어오시는 분들 대다수가 단정한 옷차림의 어르신들이다. 꼭 그녀의 친정 부모님과 같은 분들이었다. 지수는 그녀가 겪어보지 않은 세상 일에 그동안 얼마나 편파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는지 깨달아 소름이 끼쳤다. 급식소에는 꼭 노인분들이 아니더라도 홀로 끼니를 해결하기 힘든 40대들도 꽤 오셨다. 그분들 또한 평범한 지수와 같은 모습이었다. 지수는 그분들이 겪고 있는 고통이 따뜻한 밥 한 끼로 잠시나마 누그러지길 바랐다. 그들의 얼굴에 지수의 얼굴이 있고, 지수의 얼굴에 그들의 얼굴이 있는 것처럼 사람은 모두 풍파를 겪는다. 그 길목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힘든 마음이 펴지지 않을까. 따뜻한 밥 한 끼를 내어주는 마음과 그 마음을 감사히 받는 마음이 참 아름답다. 그것을 보며 지수는 살기 위해 시작한 봉사가 정말로 그녀를 살려내고 있음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