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되겠지.

by무 지 개

주 업무가 살림이 되어버린 지수이지만 그녀의 고민은 회사를 다닐 때보다 더 깊고 어렵다. 그녀는 돈이 안 되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을 한다. 여기에서 개인적인 일이란 일기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돈을 벌기 위해 무엇을 하면 좋을까 와 같은 현실적 고민과 작은 실행 같은 것들이다. 지수는 자신이 취업 시장에서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어쩌면 경단녀라고 치부해 버릴 있는 상태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나이 40이 넘어가면 있던 사람도 나오는 게 회사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무엇을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하는 걸까. 이것이 그녀의 가장 큰 고민이었다. 재취업이 답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다른 답을 찾아봐야 한다. 주부는 어떤 이들에게는 로망일 수도 있지만 지수에게는 그 역할이 내심 불안하다. '무슨 일 하세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도무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그렇다고 당당하게 '집에서 살림해요'라고 말할 수 있는 배짱도 없다. 주부의 일이 밖에서 돈을 벌어 오는 것 이상의 노동력과 정신적 수고로움이 드는 일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음에도, 왜 스스로 당당하지 못하는가에 대해 그녀는 꽤 오랜 시간 고민을 했다. 그 일에 당당하지 못하다는 것이 슬롯적 가치 기준에 대한 것인지, 아니면 그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편견인 건지. 지수는 그 둘 중 명확하게 어느 쪽이 맞다고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주부'보다는 어떤 분야의 '커리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슬롯적으로 인정을 받는 것도 현실이고, 경제력의 여부가 그녀의 자존심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그녀는 무엇이든 다시 시작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지수는 자신이 마치 하얀 도화지 앞에서 붓을 들고 무엇을 그려야 할지 망설이는 꼬마 같다고 느꼈다. 어렸을 때는 거침없이 무언가를 그리고 색칠을 해서 하나의 그림을 완성해 냈는데, 이제는 붓을 쓰는 방법조차 까먹었다. 다른 친구들은 어떻게 그리지?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지만 그 많던 친구들도 이제는 거의 없다. 각자의 인생이 너무 바빠서 연락이 끊기고, 남아 있는 친구들도 지수가 참고할만한 레퍼런스를 들고 있지 않다. 그녀는 점점 외롭다는 생각을 한다.


지수는 간신히 물 위에 얼굴만 내놓고 숨을 쉬고 있지만 지금도 아주 작은 발차기를 하고 있다. 그 작은 발차기 덕분에 살아 있는 것이다. 큰 바다 위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져 있는 것 같지만 이렇게 작은 발차기를 하다 보면 친구를 만날 수도 있고 어느 섬에 도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큰 배를 만나 돛을 달고 바다 한가운데를 신나게 가로지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니 일상을 단정하고 긍정적으로 살아내기로 한다. 뭐라도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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