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by무 지 개

지수는 오늘 수민이를 만나기로 해서 설렌다. 바깥일을 하지 않으니 사람을 만날 일도 없고 이제는 만나는 친구도 별로 없어서 그녀는 가끔 입에 거미줄을 치고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남편과는 대부분 필요에 의한 말만 하고 청소년이 된 아이들도 어렸을 때만큼 재잘재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러니 오래간만에 누군가를 만나는 약속이 생기면 무슨 이야기를 하게 될지 두근두근하기까지 하다. 특히 수민이는 지수처럼 잘 나가는 워킹맘이었다가 주재원인 남편을 따라 외국에 오랫동안 살다 오느라 경단녀가 되었다. 그래서 둘은 공감대가 있어 서로의 속마음을 나눌 수가 있다.


"남편 진짜 너무 짜증 나. 매일 나한테 언제 돈 벌거냐고 닦달하는데, 알바 같은 거 할라치면 그런 게 돈이 되냐고 무시해. 왕년에 나 잘 나갔을 때 벌어오던 것처럼 벌어오길 바라는데 그게 지금 되냐고!"

"어머어머 우리 집 남자랑 똑같다 정말. 우리 남편도 나 돈 못 번다고 눈치 주는데 내가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너무 슬퍼. 집에서 노는 것도 아니고 집안 일 하고 애들 케어하잖아. 그리고 누구는 슬롯생활 안 하고 싶어서 안 하느냐고. 그 누구보다 돈 벌고 싶은 사람은 바로 나야 나. 근데 서류 넣는 것마다 족족 떨어지는데 매번 나 떨어졌다고 내 입으로 말하는 것도 진짜 쪽팔리고 속상하고. 알바를 하려고 해도 애들 집에 오는 시간이랑 겹쳐서 쉽지 않아. 우리가 남들처럼 뭐 옷이나 가방을 사재 끼기를 하니, 아님 과소비를 하기를 하니. 맞벌이 었다가 외벌이 돼서 짜증 나고 힘든 거 백번 이해하는데 그래도 집안일하는 와이프 존중이라도 해줬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말이야. 언제는 남편이 내가 집에서 완전 노는 줄 알길래 내가 집안일하는 시간을 재서 기록까지 해봤다니까. 설거지하는 시간, 청소기 돌리는 시간, 장 보는 시간, 밥 차리고 치우는 시간, 애 학원 라이드 하는 시간 등등!"


봇물 터지듯 지수와 수민이는 맞장구를 쳐가며 대화를 이어나간다.


"나 이번에 동네 도서관에서 무료 인문학 프로그램 신청해서 들었는데 너무 좋더라. 주제가 철학이었는데 대학 교수가 와서 설명해 주고 퀄리티가 너무 좋아. 너무 좋아서 남편에게도 내가 들은 거 이야기하고 싶은데 못하잖아. 너는 팔자가 좋다고 할까 봐. 자기는 밖에서 돈 버느라 힘든데 너는 그런 거 들을 시간도 있냐고"

"세상에, 나도야! 나도 우리 동네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 듣고 있는데 남편에게 공유를 못하겠어. 너는 집에서 노는구나 할까 봐. 너무 속상하지 않니. 나는 남편이랑 내가 보고 느끼고 좋았던 거 이야기하고 싶은데 남편이 비아냥 거릴까 봐 못하는 거. 에휴"


수민이도 오랜만에 지수를 만나 속이 후련하게 이야기를 한다. 둘은 밥을 먹고 바로 옆에 있는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킨포크 잡지에서나 나올 것 같은 분위기의 카페였다. 느긋한 재즈 음악에 기분 좋은 커피 향. 그리고 초록초록한 식물들이 적절하게 공간을 채워주고 있었다. 이런 카페를 얼마 만에 와보는지 지수는 기억도 안 난다. 주문한 커피를 받아 테이블에 올려놓으니 딱 SNS용 사진 각이다. 지수와 수민이는 너무 이쁘다며 호들갑을 떨면서 사진을 찍어낸다. 정작 사람 사진은 안 찍고 커피 사진만 연신 찍는다. 멀리서 찍었다가 가까이서 찍었다가 위에서 찍었다가 정면에서 찍었다가. 한동안 정신없이 찍어대다가 둘은 동시에 웃음을 터트린다.


"아니 이게 뭐라고 우리는 이렇게나 열심히 찍는 거야? SNS도 안 하는데!"


지수와 수민은 깔깔대며 웃는 자신들이 너무 좋았다. 마음 한편 어딘가에 주눅 들어있던 마음이 그 순간에는 활짝 펴서 깨끗하고 하얗게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서로를 위로하고 응원한다. 지수는 수민이가 있어서 다행이었고 수민이는 지수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수다를 뒤로 하고 둘은 쿨하게 헤어지며 말한다.


"잘 지내다가 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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