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

by무 지 개

지수는 착한 딸이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하지 말라는 짓은 안 했고 하라는 일은 열심히 했다. 좋은 가정환경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지수의 부모도 자식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와 응원을 보내주었고, 그 시대 부모들이 그러했듯 그들에게도 자식 농사가 큰 자랑이었다. 대학교 졸업 전에 대기업 공채에 합격한 지수는 부모에게 자랑스러운 딸이었다. 키우면서 속 썩인 일은커녕, 남들 다 온다는 사춘기도 없던 딸이었다. 착실하게 공부했고, 어렸을 때 외국에 나가 산 일이 없어도 영어 테이프를 수백 번 돌려 들으며 발음 연습을 한 덕에 외국에서 유년기를 보냈냐는 말을 듣는 딸이었다. 그런 딸이 결혼을 하고 온라인 게임생활을 하며 두 아이를 데리고 유학을 간 것은 그들에게 또 하나의 자랑이었다. 특히 지수의 친정엄마는 '우리 딸이 회사 임원이 되겠구나'라는 기대가 있었다. 뭐든 글로벌하게 목표를 잡는 내 딸이 슬롯적으로 성공해서 큰 인물이 되기를 바라는 그런 바람. 지수는 알고 있었다. 부모가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고 잘되기를 응원하는지를. 그래서 쌍둥이 육아도 도맡아 해 주셨던 것을. 지수는 그런 부모에게 좋은 것만 보여드리고 싶었다. 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스웨덴에서 돌아왔을 때에는 실패한 딸의 모습을 보여드린 것 같아 무척 괴로웠다. 그녀의 부모도 지수가 얼마나 힘들지 알았기에 아무것도 묻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온 딸을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지수는 그것이 너무 감사했다. 왜 스웨덴에서 잘 안된 건지, 회사를 퇴사했으면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지 궁금하셨을 부모님이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는 것이.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그녀에겐 큰 위안이었다.


대기업 맞벌이로 살던 딸 내외가 외벌이가 되니 지수의 부모도 걱정이 되었다. 손주들은 커가고 물가는 오르고, 돈 들어가는 곳이 많을 텐데 딸이 어찌 사려나 하는 걱정이 앞서지만 그때마다 딸이 괜찮다고, 사위가 잘 벌고 주식도 잘 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 하니 괜찮은가 싶기도 하다. 그러던 중 친정 엄마 생일에 일이 터졌다. 지수는 엄마의 생일을 위해 엄마가 좋아하는 고급 한정식 집을 예약하고 케이크를 준비했다. 오빠 가족까지 모이니 8명이다. 8명의 식사 값을 지수가 계산을 하고 나왔다. 지수는 우리가 식사를 대접했으니 엄마의 용돈은 따로 준비하지 않아도 되겠지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고 며칠 후 카톡이 왔다.


"딸, 엄마 생일인데 용돈은 없는 거야? 엄마도 그런 날은 좀 받고 싶은데 서운하네"

"엄마, 우리가 식사 값을 낸 거라 우린 용돈 따로 안 드려도 되는 줄 알았지. 오빠네가 드리지 않았어?"

지수는 적잖이 당황했다. 친정 엄마가 이런 걸로 연락하시는 분이 아닌데, 돈이 없으신 분도 아닌데 난데없이 왜 용돈타령이실까.

"그건 성의의 문제이지. 딸아."

성의? 지수는 갑자기 뭔지 모를 속상함이 밀려온다. 밥 값만 해도 수십만 원이다. 그건 성의가 아니란 말인가? 외벌이에 애들 학원비 대는 것도 빠듯한 현실이다. 물론 엄마에겐 늘 괜찮다고만 말해왔으니 엄마가 이 현실을 모르실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빠듯한 살림살이에 엄마의 용돈 투정을 듣고 있자니 지수는 폭발한다.

"엄마, 외벌이에 애들 학원비 대는 것도 빠듯한 살림이야. 나도 엄마에게 두둑한 용돈을 드리고 싶은데 내 통장에 돈이 30만 원 밖에 없어. 그럼 이거라도 보내드릴게"

지수는 엄마에게 30만 원을 이체한다. 괜히 엄마에게 화를 내고선 눈물이 난다. 엄마 생신에 마음대로 용돈도 못 드리는 자신의 무능력함에 짜증이 난다. 허 부장도 밉다. 엄마 용돈 좀 챙겨드리지.


며칠 후 지수의 통장에 입금 메시지가 뜬다.

"지수야, 엄마가 통장에 돈 좀 넣었어.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지 왜 말을 안 했어. 엄마는 네가 계속 괜찮다고만 하니까 정말 괜찮은 줄 알았지. 이 돈으로 너 하고 싶은 거 해. 너 먹고 싶은 거 사 먹고"

지수는 꺼억꺼억 소리를 내며 운다. 엄마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렇게 말하는 엄마의 마음이 너무 저려서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친정엄마는 어떻게 그렇게 다 알까. 엄마는 딸이 슬프고 딸은 엄마가 슬플까 봐 슬프다.


엄마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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