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보러 다니기 시작한지 고작 2주인데 2년이 지난것 같다. 지수는 영혼이 탈탈 털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아... 나 결혼 왜했지. 아무리 생각해도 인생 혼자 사는게 제일 나은 것 같은데.' 돌고돌아 결혼을 후회하지만 그런다고 나아지는건 없으니 지수는 다시 정신을 차리기로 한다.
"사모님, 여기는 보증금이 조금 높긴한데 일단 한번 보실래요?"
그 집은 어느 드라마 작가가 집무실처럼 사용한 곳이었다. 친정 어머니 혼자 사시고 딸이었던 드라마 작가가 매일 출근해서 글을 썼다.
"어서와요~ 천천히 둘러보고 가요"
작가의 친정 어머님인 할머니가 반찬을 하고 계셔서 온 집 안에 짭쪼롬하고 고소한 멸치 볶음 냄새가 진동을 했다. 집 안에 음식 냄새가 나는 것이 창피하셨던지, 할머니께서는 내심 미안한 표정으로 "아휴, 냄새가 좀 나죠?" 하셨으나 오히려 그 냄새가 집을 더 따뜻하게 만들었다. 지수는 그 냄새에 친정 엄마를 떠올렸다.
창이 많은 집이었다. 그 중 한 창문으로 조그맣게 옆 동산이 눈에 들어왔다. 추운 겨울이라 벌거벗은 나무들이 퀭해 보였다. 창문을 열면 옆집이 보일 만큼 촘촘한 동네인데, 산이 보인다는 것은 큰 메리트였다. 사실 지수는 집을 볼 때 집의 기능을 우선으로 보는 사람이었다. 뷰가 좋다는건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았다. 지수 인생의 대부분의 낮 시간은 회사에 있거나 학교에 있었다. 지수가 2년 동안 머문 친정에도 아파트 뒤에 바로 산이 있었지만 그것이 지수에게는 큰 장점이 되진 못했다. 오히려 수납 공간이 넉넉하고 집 안에 식기 세척기와 같은 가전들이 빌트인으로 되어있는지가 중요했다. 특히 40이 넘어 시작된 고질적인 주부 습진으로 고생하던 지수에게 식기세척기와 취미로 시작한 베이킹 때문에 오븐의 유무는 매우 중요했다. 이 집은 지은지 20년이 더 되었고 집 주인이 렌트만 계속 준 집이라 내부 인테리어는 매우 낡았다. 빌트인 된 가전은 모두 20년 전 모델들이라 지수는 과연 이 가전들은 작동은 하는 걸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요새 보기 드문 테라스가 작지만 하나 있었고, 그곳에 허 부장이 좋아하는 화분을 가져다 놓고 키워도 좋겠다 싶었다. 허 부장은 테라스를 보더니 마음에 썩 드는 눈치다. 창을 통해 햇빛이 거실 전체에 곳곳이 닿았다. 낡은 가전과 노후화된 인테리어가 고민되었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 이 컨디션에 이 가격이라니라는 말이 절로 나왔지만 이제는 비교할 매물도 없거니와 주소지를 한달 내에 옮기려면 선택지가 없었다.
그냥 계약하는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