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일이 결정되었다. 그래서 지수는 한숨을 돌린다. 집을 알아보고 계약까지 3주가 걸렸는데 그 3주 동안 몇 년은 늙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쨌든 큰 산을 넘었다. 이제는 짐만 옮기면 되었다.
이사를 앞두고 허 부장은 집 꾸미기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원래 눈에 보이는 것에 예민한 사람이다. 무엇이든 사용성보다는 비주얼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집 계약에 온 정신이 탈탈 털린 지수는 허 부장이 하고 싶다는 대로 내버려둘 참이었다. 그녀에겐 뭔가를 신경쓰고 결정하는 일에 쓸 에너지가 없었다.
지수가 아이들을 데리고 해외 생활을 하느라 짐은 지수의 친정과 허 부장 본가에 나누어져 있었다. 소파, 식탁, 냉장고와 같이 부피가 큰 짐들은 허 부장 본가에 넣어놨고, 그릇과 옷과 같이 잔챙이 짐들은 지수의 친정에 있었다. 그러다보니 정확하게 뭐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더욱이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는터라 아이들 침대, 바카라상과 바카라장 등은 다시 사야했다. 허 부장은 들뜬 모습이었다. 집을 어떤 톤으로 할지, 어떤 가구를 들일지를 고민하느라 아침에 눈 떠서 밤에 눈을 감을 때까지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지수는 그런 허 부장을 보며 지금 이렇게 풀세팅을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이사 후에 살면서 꾸며도 될텐데 한달 채 남지 않는 기간 동안 꼭 이래야 하나 싶다.
"창문 테두리 컬러가 별로던데, 시트지 같은걸 사서 붙여볼까?
"굳이? 우리 집도 아닌데 뭘 그렇게까지 해. 언제 이사갈지도 모르는데"
"뭐? 난 하루를 살더라도 내 마음에 들게 살건데?"
지수는 허 부장과 10년을 훌쩍 넘긴 시간을 같이 살면서도 왜 이렇게 부부는 다른가 하는 생각에 숨이 막혀온다. 결혼 전에는 찰떡이 콩떡처럼 이렇게 나와 맞는 사람은 없었는데 결혼 하고 나니 어떻게 결혼했나 싶도록 다르다니. 살면서 변한건지 우리 둘 다 뒤통수 맞은건지 알 수 없다.
지수에게 집은 언제든 떠날 수 있어야 하고, 그래야 하는 것이다. 왜냐면 '우리 집'이 아니니까. '우리 집'이 아니기 때문에 굳이 내 돈 들여 뭔가를 하는 건 불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집을 꾸미는 일에 소극적이다. 가구와 가전은 나의 것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신경을 쓸 수 있지만, 결국 이사를 가야하므로 그것 또한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지수는 언젠가 '우리 집'이 생길 때, 그때 모든 것을 신경써서 하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자기야, 이거 뭐야? 이걸 도대체 언제 산거야?"
"아 그거~ 당신 외국 나가 있을 때 내가 산거야. 이쁘지?"
짐을 확인하러 허 부장 본가에 간 지수는 난생 처음 보는 샹들리에를 보고 말문이 막혔다. 그 샹들리에는 꼭 미녀와 야수의 성에서 본 것만 같은 그런 조명이었다. 투명한 몸체에 빨간 촛대 여러 개가 모여있는 형태였는데 도무지 지수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옆에서 허 부장은 이 조명을 만든 브랜드와 가격, 그리고 이걸 어떻게 구했는지 등을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꼭 칭찬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도대체 이걸 어디에 어떻게 걸겠다는건지 지수는 알 수가 없다. 아니, 이걸 기존에 달려있는 등을 떼고 달아야한다는 사실이 짜증이 난다. 디자인도 디자인이지만 이걸 우리 집도 아닌 집에 달아야할 때에는 위험이 따른다. 기존에 있던 등을 떼서 어디에 보관할 것이며, 설사 등을 떼다가 깨지거나 고장이라도 나면 우리가 물어줘야 되는거 아닌가? 지수는 굳이 이런 일을 벌이는 남편을 상대하는게 지쳐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