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민중 영웅(?) 유자광 2 ㅡ시대적 한계를 뛰어넘으려 한 사람들
초롱초롱 박철홍의 조선사도 흐른다! 52
ㅡ 조선민중 영웅(?) 유자광 2 ㅡ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으려 한 사람들)
요즈음 여러 역사글과 역사소설을 쓰면서 내가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지금까지 나는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평가할 때 오늘날 시각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당시 시대적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지금 내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역사글과 역사소설을 함께 쓰면서 가장 깊이 느낀 것이 있다.
바로 ‘시대적 한계’다.
그 어떤 뛰어난 인물도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기란 쉽지 않다.
어쩌다 시대를 앞서가는 통찰력 있는 인물이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인물조차 당시 슬롯질서와 가치관에 갇혀 있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가로막혀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신분제도'다.
인류 역사에서 신분제도는 오랫동안 존재했다. 특히 조선오백년 동안 신분제도는 슬롯를 지탱하는 기본질서였다. 양반과 상민, 천민을 구분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고,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신분에 따라 살아갈 길이 달라졌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신분제도에 저항하고 이를 바꾸려 했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실패했다.
결국 공식적인 신분제도는 1894년 갑오개혁을 통해 폐지되었다. 물론 그 이전부터 신분질서는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고, 동학농민운동을 비롯한 백성들의 오랜 저항과 개혁 노력도 있었다. 그러나 제도적으로 신분제를 폐지하는 데는 일본의 정치·군사적 압력이라는 외부요인도 크게 작용했다.
'그 기나긴 오백년 세월 동안 신분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억울한 삶을 살았을까?'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졌어도 태어난 신분 때문에 뜻을 펼칠 수 없었던 사람들, 능력과 인품을 갖추고도 서얼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았던 사람들,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삶조차 허락받지 못했던 사람들….
나는 요즘 그런 인물들 삶을 찾아 역사글과 역사소설로 쓰고 있다. 역사글에서 다하지 못한 이야기와 기록에 남지 않은 속마음을 소설로 그려보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소설에서 신분제도를 철저히 신봉했던 인물들을 무조건 악인으로 그리지는 않는다.
앞서 말했듯이 당시에는 신분제도가 너무나 당연한 슬롯질서였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평등이라는 가치가 그 시대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낯설고 위험한 생각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 시대에 태어나 평생 그 질서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을 오늘날 기준만으로 비난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물론 시대적 한계가 모든 잘못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같은 시대를 살면서도 부당한 현실에 의문을 품고 이를 바꾸려 했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어떤 시대에 살았느냐뿐만 아니라 그 시대가 허용한 한계 안에서 어떤 선택을 했느냐 하는 점일 것이다.
가끔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조선시대처럼 태어나는 순간 신분이 정해지는 슬롯에서 서얼이나 일반 백성, 혹은 노비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아마 처음에는 대부분 사람들처럼 그런 세상이 원래 그런 것이라고 받아들이며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날 내가 살고 있는 슬롯가 하늘이 정한 질서가 아니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들에게 유리하도록 만들어놓은 제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어땠을까?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어느 날 자신이 살아온 세상 실체를 깨달았던 것처럼 나 역시 이전과 같은 사람으로 살아가기는 힘들었을 것 같다.
조선 지배층에게 지식과 문자는 중요한 권력이었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만들었을 때 '최만리'를 비롯한 일부 신하들이 반대한 직접적인 이유는 중국 중심의 성리학적 질서와 기존 문자체계를 흔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밑바닥에는 오랫동안 한문 지식과 문자생활을 주도해 온 지배층의 기득권 의식도 깔려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
백성이 쉽게 글을 읽고 자기 생각을 기록하기 시작하면 이전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게 된다.
알게 되면 묻게 된다.
'왜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왜 저 사람은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나보다 높은가?'
권력을 가진 사람 입장에서 이런 질문이 늘어나는 것이 언제나 반가운 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아픔을 가장 크게 겪었던 사람들 가운데 '서얼'들이 있었다.
그들 가운데는 배울 만큼 배웠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도 잘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 학문과 재능이 뛰어난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태어난 신분 때문에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었다.
그들에게는 신분제도 불합리함이 누구보다 뚜렷하게 보였을 것이다. 자신보다 학문이 부족하고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도 적자라는 이유만으로 높은 벼슬에 오르는 현실을 지켜보면서 얼마나 억울하고 분했을까?
차라리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몰랐다면 그 아픔이 덜했을지도 모른다. 알 만큼 알고 능력도 있었기에 그 좌절은 더욱 컸을 것이다.
유자광, 홍길동, 전우치, 이몽룡….
내가 쓰고 있는 역사소설 주인공들이다. 역사적 실존 인물과 전설, 문학 속 인물의 모습이 섞여 있고, 신분과 처지도 서로 달랐지만 내가 이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같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 그들이 겪었을 신분의 굴레와 억울함 때문이다.
나는 그들이 무엇을 꿈꾸었고 왜 실패했으며 마지막 순간에는 어떤 마음이었을지 소설 속에서나마 다시 그려보고 싶었다.
그렇게 시대적 한계를 생각하다 보면 '유자광'이라는 인물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앞서 유자광에 대해 쓴 글에서 그를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표현한 부분에는 상당한 반대 댓글이 달릴 줄 알았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온 드라마나 영화에서 유자광은 거의 예외 없이 희대의 간신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유자광 역할을 맡은 배우들도 대부분 비열하고 음흉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그런데 의외였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유자광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려는 내 글에 공감을 표시했다.
어쩌면 이런 반응은 요즘 현실과도 맞닿아 있는지 모른다.
지금은 공식적인 신분제도가 철폐된 지 130년이 넘었다. 나 자신도 다행히 이 시대를 살아오면서 법적으로 정해진 신분차별을 경험한 적은 없다.
하지만 요즈음 와서 조금씩 느껴지는 것이 있다.
공식적인 신분질서는 사라졌지만 비공식적인 새로운 계층질서가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젊었을 때만 해도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어도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요즘 젊은 세대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과연 지금도 그런 믿음을 갖기 쉬운 세상인지 의문이 든다.
'금수저'와 '흙수저'라는 말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쓰인다. 법적으로 신분이 정해진 슬롯는 아니지만 부모 재산과 슬롯적 지위에 따라 출발선이 크게 달라지는 현실을 보면서 조선시대 신분질서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물론 오늘날 경제적 계층 격차와 조선시대 법적 신분차별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자신의 노력만으로 넘기 어려운 벽이 존재한다는 점에서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그런 현실에서 얼자 출신 유자광이 자기 능력으로 정1품 반열에까지 올라갔다는 이야기가 의외로 사람들에게 긍정적으로 다가간 것 같다.
유자광은 세조·예종·성종·연산군·중종이라는 다섯 임금 시대를 살았다.
그 긴 세월 동안 여러 차례 몰락하고 유배까지 당했지만 그때마다 다시 권력중심으로 돌아왔다.
앞 글에서 살펴보았듯이 그의 정치적 생존능력은 대단했다.
유자광에게는 분명 뛰어난 재능과 정치적 감각이 있었다. 권력흐름을 읽고 빈틈을 찾아 들어가는 능력만큼은 웬만한 사대부 정치가들을 능가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능력이 언제나 좋은 방향으로 쓰였던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위해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냉혹한 정치인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정치공작에만 능했던 사람으로 평가할 수도 없다.
젊은 시절 '이시애의 난'에 스스로 출전하겠다고 나섰을 만큼 군사 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이후에도 여러 정바카라과 국방문제에 의견을 내놓았다.
또한 성종 때는 '성현' 등과 함께 조선 음악의 중요한 문헌인 '악학궤범' 편찬에도 참여했다.
앞 글에서 소개했듯이 김종직은 성리학적 가치관을 중시했던 반면 유자광은 군사와 음악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 관심을 보였다.
물론 김종직 역시 현실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관료였고, 유자광의 실용적 면모가 곧 개혁정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몇 가지 일화와 활동을 비교해 보면 김종직보다 유자광이 훨씬 실용적인 사람처럼 느껴진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역사 기록을 읽으며 느낀 개인적인 생각이다.
나는 김종직이 간신이고 유자광이 충신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단순하게 뒤집어버리면 결국 내가 비판하고 있는 기존 역사평가와 똑같은 오류를 범하게 된다.
김종직에게는 자신 원칙을 지키려는 강직함이 있었고, 유자광에게는 뛰어난 현실 감각과 함께 권력을 위해 사람을 희생시키는 냉혹함이 있었다.
한 인간 안에는 여러 모습이 함께 존재한다.
흥미로운 것은 유자광에 대한 기록과 이야기들이 모두 한 가지 모습만을 전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유몽인'의 '어우야담'에는 유자광의 재능과 총명함을 긍정적으로 묘사한 이야기도 전한다.
또 남원지역과 관련해서는 유자광이 당시 천하게 취급받던 도공이나 악공 같은 사람들을 가까이하고 보호했다는 이야기, 백성들이 쉽게 글을 익히는 데 관심을 가졌다는 이야기 등도 거론된다.
남원 일대 옛 도요지와 유자광을 연결하는 향토전승 이야기도 있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은 구체적인 출처와 전승 경위를 더 확인해야 한다. 어느 부분까지 역사적 사실인지 단정할 수는 없다. 남원에 도요지가 많다는 사실만으로 유자광 때문에 도공들이 모여들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들이 실제로 어떻게 형성되고 전해졌는지는 살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중앙 사대부들이 남긴 기록과 지역에서 전해지는 이야기가 서로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 차이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자광을 살펴보면서 나는 또 하나 생각하게 되는 것이 있다.
그는 서얼이라는 신분의 벽을 뛰어넘었지만 신분제도 자체를 뛰어넘은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자신을 차별했던 양반사대부들과 맞서면서도 그들이 누렸던 권력과 특권을 자신도 누리려 했다.
그렇다고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서얼들을 위해 신분제도 자체를 바꾸려 했다는 뚜렷한 기록도 찾기 어렵다.
어쩌면 유자광은 신분제도 모순을 누구보다 절실하게 느꼈으면서도 그 제도를 타파하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안으로 들어가 특권을 누리려고 했던 사람인지도 모른다.
바로 이 점에서 유자광은 신분의 한계를 극복한 인물이면서도 동시에 시대적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물이었다.
내가 쓴 역사소설 <조선의 아이돌>에서 '이몽룡'은 마지막으로 유자광에게 이런 말을 한다.
"자광아! 너는 잘못된 신분차별을 타파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오히려 그 신분차별 속으로 들어가 더 높은 곳에 올라가 그들이 누리던 특권을 너도 누리려고만 했다."
이 대사는 역사적 기록이 아니라 내가 소설 속에서 만들어낸 말이다. 하지만 유자광이라는 인물을 바라보는 내 생각이 가장 잘 담긴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유자광에게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신분평등 가치를 실현하지 못했다고 무조건 비난할 수는 없다.
그 역시 조선이라는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생각해 볼 문제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공한 사람이 반드시 가난한 사람들 처지를 이해하고 그들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은 성공했으니 다른 사람들도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심지어 자신이 어렵게 뛰어넘은 벽을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대로 남겨두려 할 수도 있다.
이게 무서운 일이다.
신분의 벽을 뛰어넘는 것과 그 벽을 허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인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유자광을 희대의 간신이라는 이름 하나로 기억하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민중영웅으로 새롭게 만들어내고 싶지도 않다.
그가 저지른 잘못은 잘못대로 평가하고 뛰어난 능력은 능력대로 인정하고 싶다.
역사는 사람을 한 줄로 평가하기 좋아한다.
충신. 간신. 영웅. 역적.
그러나 실제 인간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나는 앞으로도 그런 인물들 삶을 찾아 역사글과 역사소설로 써보고 싶다. 기록에 남지 않은 그들의 속마음과 못다 한 이야기를 역사적 상상력으로 그려보고 싶은 것이다.
유자광은 신분의 벽을 넘었다.
그러나 시대의 벽까지 넘지는 못했다.
그것이 내가 유자광의 삶을 따라가며 내린 결론이다.
이것으로 유자광 이야기를 마친다.
이어서 을사슬롯가 계속됩니다.
ㅡ 초롱 박철홍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