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영원한 행복을 그리다. 네바문의 연회
네바문은 신왕국 제18왕조, 기원전 1350년경 테베에서 활동한 아문 신전의 곡물 관리 서기관이었다. 그의 이름은 ‘아문은 나의 주인이다’라는 뜻이며, 아내 하트셉수트(고귀한 여성들 중 가장 뛰어난 자)와 함께 연회·습지 사냥·정원·농경 등 살아 있을 때의 풍요로운 삶을 무덤 예배당 벽에 남겼다. 참고로 하트셉수트는 유명한 여성 파라오 하트셉수트와는 다른 사람이다.
나는 Room 61에 들어섰다.
가장 먼저 네바문의 습지 사냥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²
이제는 익숙한 이집트 회화였다. 한 방향에서 본모습을 그대로 옮기지 않는다.
가장 잘 보이는 모습을 골라 한 화면에 펼쳐놓는다.
작은 배 위에 네바문이 서 있었다.
그 뒤에는 아내 하트셉수트가 있었고, 네바문의 다리 아래에는 어린 딸이 앉아 있었다. ¹²
네바문은 크게, 아내는 그보다 작게, 딸은 훨씬 작게 그려져 있었다.
중요한 사람을 크게 표현하는 이집트 회화의 방식도 그대로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규칙보다 다른 것이 먼저 보였다.
세 사람이 함께 있었다.
네바문은 새를 사냥하고 있었다.
하트셉수트는 남편 곁에 서 있었고, 어린 딸은 아버지 가까이에 있었다.
파피루스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새들이 한꺼번에 날아올랐고, 물속에서는 물고기들이 헤엄쳤다. ²
분명 사냥 장면인데 나는 자꾸만
가족사진을 보는 것 같았다.
마치 네바문이 수천 년 뒤 이 그림을 바라볼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우리 가족은 이렇게 함께 있었습니다.”
우리도 이런 사진을 찍는다.
여행을 가면 가족을 세워두고 사진을 찍는다.
아이를 가운데 세우기도 하고, 서로 어깨를 붙이기도 한다.
그리고 훗날 그 사진을 다시 꺼내본다.
그날 우리가 행복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서.
네바문의 그림도 그런 것처럼 보였다.
죽은 뒤에도 잊고 싶지 않은 어느 하루.
가족과 함께했던 한순간이 습지 속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나는 다음 그림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번에는 정원과 연못이었다. ¹²
연못은 위에서 내려다본 것처럼 펼쳐져 있었다.
물속까지 훤히 보였다.
물고기와 새가 있었고, 연못 주변에는 무화과나무와 대추야자 같은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²
나무는 옆에서 본모습이었다. 가지에는 잎과 열매가 가득했다.
역시 이집트다운 그림이었다.
실제 눈으로 한 장소를 바라보면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볼 수 없다.
하지만 이집트의 화가는 연못은 위에서 보고, 나무는 옆에서 보고,
물속의 물고기까지 꺼내 보여주었다.
보이는 한순간보다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를 모두 보여주려 했다.
그림 안에는 부족한 것이 없어 보였다.
습지에서 가족의 행복을 보았다면,
정원에서는 그 가족이 살아가던 풍요로운 세계가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조금 더 걸었다.
이번에는 소들이 나타났다. ²
줄지어 서 있는 소들의 눈이 유난히 크고 순해 보였다.
한 마리는 금방이라도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볼 것 같았다.
그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달랑.
나는 그림 가까이 다가갔다.
물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림 속 소들에게 방울이 달려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줄지어 움직이는 소들을 보고 있으니 어디선가 목에 걸린 방울 하나가
흔들리는 것만 같았다.
달랑.
달랑.
그 소리는 머릿속에서 조금씩 달라졌다.
찰랑.
이번에는 좀 더 가볍고 맑은 소리였다.
나는 하토르를 떠올렸다.
사랑과 음악, 춤과 기쁨의 여신.
그리고 그녀와 깊이 연결된 악기, 시스트럼.
흔들 때마다 금속이 부딪치며 맑은 소리를 냈을 것이다.
그 소리를 따라가듯 나는 다음 그림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연회였다.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누군가는 잔을 들고 있었고, 누군가는 옆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래쪽에는 여성 음악가들이 앉아 있었다.
네 명 가운데 한 명은 이중 피리를 불고, 세 명은 손뼉을 치며 박자를 맞추고 있었다.
그 옆에서는 두 명의 무용수가 춤을 추고 있었다. ¹²
피리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손뼉이 박자를 만들었다.
그 사이로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웃었다. 잔과 잔이 부딪쳤다.
여인들이 몸을 움직일 때마다 가슴을 넓게 감싼 웨세크 목걸이의 구슬도 가볍게 흔들렸을 것 같았다.
얇은 리넨 옷자락은 사람들의 움직임에 따라 사각거렸을 것이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서는 하토르의 시스트럼이 계속 울리고 있었다.
그림은 조용했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어느새 그림 앞에서 음악을 듣고 있었다.
피리가 이어지고, 손뼉이 박자를 만들고, 사람들이 웃는다.
그때 여인들의 머리 위에 놓인 작은 원뿔 모양이 눈에 들어왔다.
‘향유 콘’이라고 불리던 것이었다.
나는 잠시 그 공간의 향기를 상상했다.
연꽃의 향이었을까.
향료와 기름의 냄새였을까.
아니면 재스민처럼 달콤한 꽃향기였을까.
꽃향기, 와인 냄새, 사람들의 체온, 그리고 열린 공간을 지나온 바람.
3천 년 전 이곳의 실제 향기는 이미 사라졌다.
오랫동안 향유 콘은 향유나 향료와 관계된 물체로 해석되어 왔지만, 그 정확한 기능과 의미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³ 하지만 연회에는 와인과 꽃과 향료가 있었을 것이다. ²
그런데 이상했다.
피리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음악이 있었다.
향기를 맡을 수 없었다. 그런데 향기가 있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그런데 즐거움은 느껴졌다.
그 순간
고부스탄의 암각화가 떠올랐다.
사람들이 손을 잡고 춤을 추던 그림.
얼굴도 없었다. 눈도 없었고, 입도 없었다.
표정이 없으니 그들이 웃고 있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런데 몇 개의 선으로 만들어진 몸의 움직임만 보고도
나는 그들의 리듬을 상상했다.
사람들이 함께했던 즐거움까지 느낄 수 있었다.
네바문의 연회도 마찬가지였다.
소리는 없었지만 음악이 있었다.
향기는 없었지만 향기가 느껴졌다.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그림 속에서는 춤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림은 눈에 보이는 것만 그리는 것이 아니었다.
고부스탄의 사람들은 몇 개의 선으로 즐거움을 남겼다.
그리고 수천 년 뒤
이집트의 화가는 술과 음악과 춤, 향기와 사람들을 그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었다.
행복.
그런데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세네페르와 센네젬의 그림을 보았을 때
나는 무덤 안쪽으로 들어가 죽은 사람이 살아갈 세계를 바라보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네바문의 그림은 달랐다.
이 그림들은 무덤 예배당의 벽을 장식하고 있었다. ¹²
네바문의 미라는 더 깊은 매장 공간에 묻혔지만,
위쪽 예배 공간은 가족과 지인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열려 있었다. ²
사람들은 이곳에서 제물을 바치고, 기도하고, 네바문과 그의 아내를 기억했다. ²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나는 공간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그림을 바라보니 사후세계보다 살아 있었던 날들이 먼저 보이기 시작했다.
습지에서는 가족이 함께 있었다. 정원에는 나무가 자랐다.
연못에는 물고기가 헤엄쳤다. 가축이 있었고, 연회가 열렸다. ¹²
죽은 사람을 위한 공간인데 그림 속에는 죽음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삶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삶은 이상하리만큼 행복해 보였다.
그때 다시 네바문의 아내 하트셉수트가 떠올랐다.
습지에서 그녀는 남편 곁에 있었다. 딸도 함께였다. ¹²
나는 상상해 보았다.
혹시 하트셉수트도 남편과 함께했던 순간들이 이 벽에서만큼은 사라지지 않기를 바랐던 것은 아닐까.
남편은 죽었다. 미라가 되어 죽은 자의 세계로 건너갔을 것이다.
하지만 함께했던 자리와, 함께 바라보았던 풍경과, 함께 들었던 음악과,
함께 마셨던 술과,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던 순간까지 모두 사라져야 했을까.
나는 알 수 없다.
누가 이 장면들을 선택했는지, 하트셉수트가 얼마나 관여했는지,
그녀가 실제로 어떤 마음으로 이 그림을 바라보았는지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나는 그림에 답을 요구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질문 하나를 가지고 다시 그림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죽은 네바문의 눈이 아니라 살아남은
하트셉수트의 눈으로.
그녀는 남편과 함께했던 무엇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기를 바랐을까.
남편의 생명이었을까. 풍요로운 삶이었을까.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했던 행복한 한순간이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바랐던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니 네바문의 연회는 더 이상 단순한 연회로 보이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것은 술과 음악과 춤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그들이 붙잡아두고 싶었던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찰나의 행복.
우리는 행복을 붙잡을 수 없다.
좋은 시간은 지나가고, 음악은 끝나고, 술잔은 비고, 사람들은 언젠가 헤어진다.
그런데 그림 속에서는 달랐다.
피리는 아직도 연주되고 있었다. 무용수는 여전히 춤추고 있었다.
연회의 잔은 아직 비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가족은 함께였다.
사라지는 한순간을 사라지지 않게 만드는 것.
어쩌면 그것이 그림이 할 수 있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순간 휴대전화가 울렸다. 알람이었다.
이제 박물관을 떠나야 할 시간이었다.
Room 61을 나왔다.
몇 걸음 걷다가 갑자기 한 사람이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다시 보고 싶은 사람.
람세스 2세.
나는 바쁘게 계단을 내려갔다.
사람들 사이를 지나 그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다시 그 거대한 얼굴 앞에 섰다.
처음 그를 보았을 때 나는 왕을 보았다.
전쟁을 했고, 거대한 신전을 세웠으며, 자신의 모습을 돌에 새긴 파라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나는 이미 룩소르에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서 일까.
그래서였을까.
거대한 석상 속에서 이번에는 왕이 아니라 한 남자가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행복을 이야기하면서 사랑을 빼놓을 수 있을까.
네바문의 그림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했던 행복한 한순간을 붙잡아두었다면,
람세스 2세는 사랑하는 한 사람을 위해 영원을 남겼다.
수천 년 전 한 왕이 사랑했던 여인.
그리고 이제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다시 따라가 보려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영원히 사라지지 않게 할 수 있을까.
그 여자의 이름은
네페르타리.
1. Parkinson, Richard B. The Painted Tomb-Chapel of Nebamun: Masterpieces of Ancient Egyptian Art in the British Museum. London: British Museum Press, 2008.
네바문의 무덤 예배당, 가족 장면, 습지 사냥, 정원, 가축, 연회 및 전체 도상 해석의 기본 자료. 해당 저서는 2008년 British Museum에서 출간된 네바문 벽화의 종합 연구서다. OBNB
2. British Museum. “Room 61: Egyptian Life and Death.” Collection Online. Accessed September 27, 2026.
네바문의 무덤 예배당이 약 기원전 1350년경 제작되었으며, 가족과 지인들이 기도와 제물을 바치며 네바문 부부를 기념한 공간이었다는 점과 습지 사냥·정원·가축·연회 등 대표 벽화의 내용 확인에 사용. British Museum Room 61: Egyptian Life and Death
3. Stevens, Anna, Corina E. Rogge, Jolanda E. M. F. Bos, and Gretchen R. Dabbs. “From Representation to Reality: Ancient Egyptian Wax Head Cones from Amarna.” Antiquity 93, no. 372 (2019): 1515–1533.
고대 이집트의 머리 위 원뿔형 물체가 단순한 그림 속 상징만은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고고학적 연구. 아마르나 출토품의 주성분은 생물학적 왁스로 확인되었으며 정확한 기능은 여전히 논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