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이집트인은 왜 보이는 대로 그리지 않았을까?
오후,
카이로에서 룩소르로 가는 열차에 올랐다. 기차가 남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카이로의 회색빛 건물들이 천천히 뒤로 밀려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창밖에는 사막이 펼쳐졌다. 끝없이 이어지는 황톳빛 땅.
그런데 그 사이로 갑자기 짙은 초록이 나타났다.
나일강이었다.
강 주변에는 농경지가 길게 이어졌고, 대추야자나무들이 늦은 오후 햇빛을 받고 서 있었다.
곳곳에는 하얀 재스민도 피어 있었다. 사막 한가운데 피어난 작고 하얀 꽃이었다.
나는 창가에 앉아 한동안 밖을 바라보았다.
햇빛이 나일강 위에서 반짝였고, 강변의 초록빛은 사막과 선명하게 맞닿아 있었다.
사막은 메말라 있었지만 강이 지나가는 자리에는 생명이 있었다.
나무가 자라고, 꽃이 피고, 사람이 살았다.
나일강은 사막을 가르는 하나의 생명선처럼 보였다.
열차가 남쪽으로 달리는 동안 오후의 빛도 천천히 기울었다.
은빛으로 반짝이던 강물은 어느새 금빛을 머금었고, 마을과 들판은 붉은 저녁빛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룩소르에 도착했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와세트라고 불렀고, 그리스인들이 테베라고 불렀던 도시.
신왕국 시대에는 이집트의 가장 중요한 정치·종교 중심지 가운데 하나였다.
도시의 동쪽에는 거대한 신전들이 세워졌고, 나일강 건너 서쪽에는 왕과 귀족들의 무덤이 자리 잡았다.
카이로에서는 과거가 현재 사이에 섞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면, 룩소르에서는 조금 달랐다.
고대 이집트가 아직도 도시 한가운데 서 있는 것 같았다.
나일강을 건너기 위해 선착장으로 갔다. 하지만 이미 배 운항은 끝난 뒤였다.
주변을 둘러보다가 한 젊은 뱃사공을 만났다.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생활 영어는 꽤 능숙했고, 일상적인 대화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다 그가 뜻밖의 말을 꺼냈다. 자기 집에 초대하겠다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겁도 없었다.
처음 만난 사람을 따라 낯선 마을의 집으로 들어갔으니 말이다.
하지만 유적지만 보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이집트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고 싶었다.
마을은 생각보다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집들은 조금 독특했다. 완성된 집도 있었지만 위층이 아직 덜 지어진 집들도 눈에 띄었다.
그의 집도 그랬다.
1층에서는 가족이 생활하고 있었고, 2층은 아직 건축 중이었다.
그에게 듣기로는 이집트에서는 집을 한 번에 완성하기보다 필요가 생기거나 형편이 될 때마다
조금씩 위층을 올려가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집은 완성된 건물이라기보다 가족의 시간과 형편에 따라 천천히 자라나는 공간처럼 보였다.
그 집에서 저녁을 함께 먹었다. 처음 만난 여행자에게 밥을 내어주고, 차를 권하고,
다시 숙소까지 데려다주는 모습이 낯설면서도 이상하게 익숙했다.
우리나라 시골에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밥 한 끼 내어주던 그 오래된 인심과 닮아 있었다.
이후 이집트를 여행하면서도 비슷한 장면을 여러 번 경험했다.
자신들이 먹던 음식을 나누어주고, 차를 권하고, 잠시라도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어는 달랐지만 사람을 대하는 마음은 이상하리만큼 익숙했다.
그날 밤 하나의 생각이 따라왔다.
지금의 이집트 사람들이 낯선 사람에게 음식을 내어주고 차를 권하듯,
수천 년 전 이곳에 살던 사람들도 비슷한 마음으로 사람을 맞이하지 않았을까.
물론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런 상상을 하며 다음 날 나는 그들을 만나러 떠났다.
왕과 신이 아니라, 배를 타고, 물고기를 잡고, 새를 쫓고, 꽃을 들고, 가족과 함께 살아갔던 사람들.
그들이 남긴 무덤 안의 벽화는 나에게 하나의 타임캡슐처럼 느껴졌다.
사람은 사라졌지만 그들의 하루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중 내가 먼저 보고 싶었던 것은 멘나의 무덤(TT69)이었다.
멘나는 신왕국 제18왕조 시대에 살았던 엘리트 관리였다. 그는 왕과 아문 신전과 관련된 농지를 관리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무덤은 오늘날 룩소르 서안 셰이크 압드 엘구르나의 테베 네크로폴리스에 남아 있다. ¹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무덤 북쪽 벽의 습지 사냥 장면이다.
오늘날 우리가 자주 보는 그림은 화가 니나 드 가리스 데이비스가 1924년 원본을 실물 크기로 옮긴 복제화다.
원본은 제18왕조, 투트모세 4세에서 아멘호테프 3세 시대인 기원전 약 1396~1347년경의 것으로 본다. ²
멘나와 그 가족의 습지 사냥 장면, 멘나의 무덤(TT69) 벽화(니나 드 가리스 데이비스 모사, 1924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원본 이미지를 AI로 해상도 보정하여 사용함.
멘나의 벽화에는 이집트인이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 거의 모두 들어 있다.
먼저 사람의 크기가 다르다. 무덤의 주인인 멘나는 주변 인물보다 훨씬 크게 그려졌다.
고대 이집트 미술에서는 인물의 크기를 통해 슬롯적 중요성이나 위계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았다. ³
중요한 사람은 크게, 주변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작게 표현했다.
옷차림에서도 차이가 보인다. 멘나와 그의 아내는 정교한 리넨과 장신구를 갖추고 있고,
주변 인물들의 모습은 상대적으로 단순하다.
크기와 옷차림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또 하나의 언어였다.
하지만 이 그림에서 더 흥미로운 것은 사람의 몸을 그린 방식이다. 얼굴은 옆으로 향한다.
눈은 정면에 가깝다. 어깨와 가슴은 펼쳐져 있지만, 허리와 다리는 다시 옆으로 돌아간다.
우리가 한 방향에서 보는 실제 사람의 모습은 아니다.
이집트 화가는 몸 전체를 하나의 시점에서 바라보기보다 얼굴과 눈, 어깨와 다리가
각각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방향을 골라 하나의 몸 안에 결합했다.
이를 흔히 복합 시점(composite view)이라고 부른다. ³
그런데 모든 사람이 똑같은 자세로 그려진 것은 아니다.
배 가장자리에서 몸을 깊이 숙이는 여성처럼 행동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인물은
보다 자연스러운 옆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림의 규칙이 모든 사람을 기계적으로 똑같이 만드는 절대적인 공식은 아니었던 셈이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누구이며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사람만 그런 것도 아니다.
배는 옆에서 본모습으로 그렸다.
그래야 긴 선체와 앞뒤로 솟아오른 배의 형태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물고기도 옆모습이다. 머리와 몸통, 지느러미와 꼬리가 가장 잘 드러난다.
그런데 강은 다르다. 강물은 화면 아래에 마치 펼쳐놓은 것처럼 그려져 있다.
그 안에서는 물고기와 악어가 훤히 보인다.
수면 위의 배와 물속의 물고기를 현실에서는 한 자리에서 동시에 이렇게 볼 수 없다.
하지만 이 그림에서는 가능하다.
화가에게 중요한 것이 한 사람의 눈에 보이는 순간보다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³
중앙에는 거대한 파피루스 숲이 솟아 있다. 줄기는 길고 곧게 세웠고, 윗부분은 반복되는 형태로 정리했다.
실제 파피루스의 복잡한 모습을 그대로 복사한 것이 아니라, “이곳은 파피루스가 자라는 나일강 습지다”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그 사이에는 수많은 물새가 날아다닌다. 아래에는 물고기와 악어가 헤엄친다.
작은 고양이 한 마리는 파피루스 줄기를 타고 올라가 새를 노리고 있다. ²
이 장면의 고양이는 신의 모습이 아니라 습지 풍경 속에서 새를 사냥하는 동물로 표현되어 있다.
여성들이 들고 있는 꽃도 눈에 들어온다. 푸른 수련, 흔히 ‘푸른 연꽃’이라고 부르는 꽃이다.
이 장면의 연꽃과 틸라피아(물고기), 물새들은 단순한 자연 묘사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연꽃은 풍요와 재생을 떠올리게 하고, 새끼를 입 안에서 보호하는 틸라피아 역시 재생과 연결되었다.
습지는 또한 질서 있는 세계와 그 바깥의 거친 힘이 만나는 경계 공간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²
그러므로 이 장면은 단순한 사냥 풍경도, 고대의 자연도감도 아니다.
나일강 주변에 무엇이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 자연을 이집트인이 어떤 의미로 바라보았는지까지 담아낸 그림이었다.
그리고 다시 두 명의 멘나를 바라본다. 왼쪽에서는 새를 사냥하고, 오른쪽에서는 물고기를 잡는다.
서로 다른 시간이 하나의 화면 안에 들어 있다.
사람의 지위도 보이고, 물속도 보이고, 서로 다른 시간도 한꺼번에 펼쳐진다.
그래서 멘나의 벽화는 한순간을 그대로 옮긴 풍경화라고 하기 어렵다.
시간을 펼치고, 공간을 열고, 보이지 않는 것까지 한 화면 안에 담아낸 그림이다.
이집트 화가는 눈앞에 보이는 세계를 그대로 복사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세계를 가장 잘 보이도록 그렸다.
이 그림을 오래 보고 있으니 뜻밖의 화가 한 사람이 떠올랐다.
피카소였다.
수천 년 뒤 피카소 역시 사람을 하나의 시점에 가두지 않았다. 물론 두 시대의 목적은 전혀 달랐다.
이집트 화가는 여러 시점을 하나의 질서 안에 모았고,
피카소는 여러 시점을 통해 고정된 하나의 시선을 흔들었다.
이집트는 여러 시점을 질서로 묶었고, 피카소는 여러 시점으로 질서를 흔들었다.
하지만 두 그림을 보고 있으면 비슷한 질문이 떠오른다.
한 사람을 한 방향에서만 보는 것이 정말 가장 완전한 모습일까.
그런데 멘나의 무덤을 바라보다 보니 또 하나의 질문이 남았다.
왜 이집트인은 사람과 자연을 이렇게까지 자세히 무덤 안에 남겼을까.
왜 얼굴과 몸을 가장 알아보기 쉬운 모습으로 그리고, 배와 강, 물고기와 새, 파피루스와 꽃까지
벽에 그려 넣었을까.
그것도 살아 있는 사람들의 집이 아니라 죽은 사람의 무덤 안에 말이다.
멘나의 무덤은 단순히 시신을 묻어두는 장소가 아니었다.
무덤 예배실에서는 죽은 이를 위한 의례가 이루어졌고,
벽화와 공간은 살아 있는 세계와 죽음 이후의 세계를 이어주는 장례문화의 일부였다.⁴
그렇다면 그림 역시 죽은 사람을 추억하기 위한 장식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살아 있을 때 누렸던 삶과 죽음 이후에도 이어지기를 바랐던 세계가 그 안에 함께 들어 있었다.
여기서 질문은 달라진다. 죽은 사람에게 왜 그림이 필요했을까.
이 질문을 따라가면 우리는 곧 죽은 사람의 심장이 저울 위에 올라가는 또 다른 그림 앞에 서게 된다.
사자의 서와 심장의 무게
1. American Research Center in Egypt, “Tomb of Menna (TT69) in the Theban Necropolis.”
멘나 무덤이 룩소르 서안 테베 네크로폴리스에 위치하며 제18왕조의 엘리트 무덤이라는 사실과, 멘나 무덤 보존·연구 프로젝트의 기본 정보를 참고했다.
2.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Menna and Family Hunting in the Marshes, Tomb of Menna.”
북벽 습지 장면의 연대와 구성, 니나 드 가리스 데이비스의 1924년 실물 크기 복제, 멘나의 새 사냥과 물고기 사냥, 틸라피아·물새·악어·고양이 및 연꽃 등의 상징을 참고했다.
3. Edith W. Watts, The Art of Ancient Egypt: A Resource for Educators,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1998.
고대 이집트 미술의 인체 표현, 위계적 크기, 여러 방향에서 본 특징을 한 화면에 조합하는 방식 등 이집트 회화의 기본적인 시각 원리를 참고했다.
4. Melinda Hartwig, ed., The Tomb Chapel of Menna (TT 69): The Art, Culture, and Science of Painting in an Egyptian Tomb, Cairo: The American University in Cairo Press, 2013.
멘나 무덤의 구조와 벽화 프로그램, 무덤 예배실의 장례·의례적 기능, 살아 있는 세계와 죽음 이후의 세계를 연결하는 공간적 의미를 참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