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보이지 않는 세계를 그리다.

10장, 불멸의 사랑을 그리다. 람세스 2세와 네페르타리

by김현준


람세스 2세와 네페르타리

사랑에 관한 고전을 떠올리면 나는 먼저 《로미오와 줄리엣》을 생각한다.

서로 사랑했지만 끝내 함께하지 못한 두 청춘.


사랑은 짧았고, 죽음은 빨랐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수백 년을 살아남았다.

그보다 훨씬 오래된 사랑이 있다.


무려 3천 년이 넘는 시간을 건너온 이야기.

람세스 2세와 네페르타리다.


별이 지지 않는 방.

나는 룩소르 서안, 왕비의 계곡에 서 있었다.

황갈색 절벽이 뜨거운 햇빛을 그대로 받아내고 있었다. 바람은 메말랐고 발밑에서는 고운 모래가 바스락거렸다. 여기에 네페르타리가 잠들어 있었다.

QV66.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리는 무덤.


1904년 이탈리아 고고학자 에르네스토 스키아파렐리가 발견한 이 무덤은 네페르타리의 아름다운 벽화로 유명하다. 그러나 발견 당시부터 벽화의 상태는 매우 불안정했고, 이후 오랫동안 보존과 관람 제한이 반복되었다. ¹ ⁴ 그러나 지금은 다시 오픈한 것으로 알고 있다.


문은 닫혀 있었다.

나는 그 입구 가까이까지 갔지만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룩소르 마지막 날 저녁이었다.

숙소 로비에서 나일강에서 만났던 뱃사공 청년을 다시 만났다.

룩소르에 머무는 동안 몇 번 만나다 보니 제법 가까워져 있었다. 그는 나보다 한참 어렸지만 서로 너무 다른 세상에서 살아왔기 때문인지 이상하게도 나이 차이는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테이블 위에는 짙은 루비빛 카르카데 차가 놓여 있었다. 잔 속의 얼음은 천천히 녹고 있었다.

그는 다음 달이면 홍해로 떠날 예정이라고 했다. 그곳에는 관광객이 더 많고 지금보다 돈도 더 벌 수 있다고 했다.

나 역시 내일이면 나흘 동안 머물렀던 룩소르를 떠날 예정이었다.


다음 목적지는 알렉산드리아였다.

그곳에서 마지막으로 클레오파트라의 흔적을 찾아본 뒤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러자 그는 아스완을 권했다.

이집트까지 왔다면 아부심벨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람세스 2세가 세운 거대한 신전.

그리고 그 곁에 있는 네페르타리와 여신 하토르를 위한 작은 신전.

그곳에는 네페르타리를 두고 ‘그녀를 위해 태양이 빛난다’는 독특한 표현도 남아 있다. ²


나는 잠시 마음이 흔들렸다.

이미 여행 일정은 거의 끝나 있었다.

그는 그런 내 표정을 보더니 가방에서 그림엽서 몇 장을 꺼내 건넸다.

선물이었다.

다음 날에는 일을 해야 해서 기차역까지 배웅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뭐라도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받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나라를 찾아온 친구라고 했다.


나는 수첩을 꺼냈다.

내 이메일 주소를 적어 건넸다. 언젠가 영어를 읽고 쓸 수 있게 되면 꼭 연락해 달라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내가 아끼던 볼펜 하나를 그의 손에 쥐여주었다.

나는 그의 엽서를 받았고, 그는 내 볼펜을 받았다.

다시 만나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래도 그날 저녁만큼은 서로의 삶 속에 작은 흔적 하나를 남겼다.


방으로 돌아와 그가 준 엽서를 침대 위에 펼쳐놓았다.

카르나크 신전. 거대한 기둥 사이로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다음 장에는 오벨리스크가 하늘을 향해 솟아 있었다.

한 장을 더 넘기자 절벽 아래 하트셉수트의 장제전이 길게 펼쳐졌다.


그리고 다음 장.

손이 멈췄다.

짙은 푸른색 천장. 그 위에 작은 금빛 별들이 가득 떠 있었다.

네페르타리의 무덤이었다.


나는 엽서를 조금 더 가까이 들었다. 푸른색은 생각보다 깊었다.

그 위에 반복해서 그려진 노란 별들은 단순한 무늬라기보다 밤하늘처럼 보였다.

실제로 QV66의 천장은 검은색 바탕 위에 이집션 블루를 칠해 깊은 청색을 만들고, 그 위에 노란 별들을 반복해서 그려 넣었다. ¹ ⁴

죽은 왕비의 머리 위에 누군가 하늘 하나를 그대로 펼쳐놓은 것 같았다.


다음 엽서에는 네페르타리가 신들 앞에 서 있었다.

새하얀 옷자락이 몸을 따라 길게 흘러내렸고 화려한 머리 장식이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그녀는 무덤 속에 가만히 누워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신을 만나고, 그들 앞에 서고, 죽음 너머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¹


나는 다시 별이 그려진 엽서를 집어 들었다.

한동안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갔다.

어느새 룩소르에는 밤이 내려앉아 있었다.

낮 동안 뜨겁게 달아올랐던 도시는 어둠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지만 한 곳 만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룩소르 신전이었다.

노란 조명을 받은 기둥과 석벽이 검은 밤 속에서 떠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람세스 2세가 앉아 있었다.

거대한 석상은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린 채 수천 년 전과 다름없는 얼굴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창가에 멈춰 섰다.

손에는 아직 네페르타리의 엽서가 들려 있었다.


고개를 숙였다.

푸른 천장과 금빛 별.


다시 고개를 들었다.

창밖에는 람세스가 있었다.


다시 엽서.

다시 창밖.


한 사람은 그림이 되어 내 손안에 있었고,
한 사람은 돌이 되어 밤의 신전 앞에 앉아 있었다.

그 사이에는 3천 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 있었다.

그런데 그날 밤만큼은 두 사람이 이상하리만큼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람세스 2세.

네페르타리.


나는 엽서를 창가의 불빛 가까이 가져갔다.

별들이 조금 더 선명해졌다.

람세스는 네페르타리에게 무엇을 남기고 싶었던 것일까.

나는 손 안의 별들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러자 어느 순간,

3천 년 전의 밤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람세스 2세와 네페르타리는 실제 인물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언제 처음 만났는지, 어떤 말을 주고받았는지, 어떤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는지는 기록으로 알 수 없다.


이제부터 이어지는 만남과 대화, 셴과 호루스의 눈을 둘러싼 이야기는 모두 나의 상상이다.

역사가 남겨놓은 빈 공간을 잠시 이야기로 걸어가 본다.



다시 만날 때까지.

아주 오래전.

아직 아무도 그를 ‘위대한 람세스’라고 부르지 않던 시절이었다.

소년 하나가 언덕 위에 혼자 앉아 있었다.

조금 전 전차에서 떨어진 참이었다. 무릎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두 팔로 무릎을 감싼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어깨가 작게 들썩였다. 소년은 울고 있었다.

무릎이 아파서가 아니었다. 자존심이 상해서였다.

왕의 아들이었다.


누구보다 말을 잘 다루어야 했고 누구보다 전차를 능숙하게 몰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떨어졌다. 소년은 입술을 깨물었다.


“바보 같아.”


주먹으로 모래를 움켜쥐었다.

그때였다. 언덕 아래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잠시 뒤 소년의 앞에 그림자 하나가 멈춰 섰다.


“왜 여기 혼자 있어요?”


소년이 화들짝 고개를 들었다.


또래의 소녀가 서 있었다. 그는 급히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소녀는 아무 말 없이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천천히 무릎으로 내렸다.


“피가 나는데요.”


소년은 괜히 눈썹을 추켜올렸다.


“괜찮아.”


소녀는 더 묻지 않았다.

그의 앞에 쪼그리고 앉아 품에서 작은 천을 꺼냈다.

천 한쪽에는 푸른 실로 눈 모양이 수놓아져 있었다.

소년이 물었다.


“그게 뭐야?”


“호루스의 눈.”


소녀는 천을 접어 상처 위에 올렸다.

소년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다.

소녀가 웃었다.


“안 아프다면서요.”


소년은 입을 다물었다.

소녀는 천천히 그의 무릎을 감싸기 시작했다.


“호루스도 상처를 입었어요.”


소년이 처음으로 그녀를 제대로 바라보았다.


“호루스가?”


“네.”


“신인데?”


소녀는 천의 끝을 당겨 매듭을 묶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소년을 바라보았다.


“호루스가 위대한 건 처음부터 완전했기 때문이 아니라….”


잠시 말을 멈추었다.


“상처를 입고도 다시 일어났기 때문 아닐까요?”


소년의 시선이 무릎으로 내려갔다.

피 묻은 상처 위에 푸른 호루스의 눈이 놓여 있었다.

소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름이 뭐예요?”


소년은 잠시 망설였다.


“메리아문.”


소녀가 천천히 따라 불렀다.


“메리아문.”


그리고 웃었다.


“이제 이름을 알았으니까 나중에 다시 만나도 알아볼 수 있겠네요.”


소년이 물었다.


“너는?”


“네페르타리.”


소년은 그 이름을 천천히 되뇌었다.


“네페르타리.”


바람이 불었다.

소녀의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소년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목에 걸고 있던 작은 고리를 풀었다.


둥근 선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 모양.

셴이었다.

소년은 그것을 네페르타리의 목에 걸어주었다.


“이건 뭐예요?”


“셴.”


“무슨 뜻인데요?”


“끝이 없다는 뜻 이래.”


네페르타리가 손가락으로 둥근 고리를 따라 그었다.


“끝이 없으면 어디까지 가요?”


소년은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다시 만날 때까지.”


네페르타리가 웃었다.

소년은 조금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너를 다시 찾아낼 거야.”


“왜요?”


소년은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리고 내 아내로 삼을 거야.”


잠시 정적이 흘렀다.

네페르타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소년의 얼굴이 붉어졌다.


“왜 웃어?”


네페르타리는 그의 무릎을 가리켰다.


“먼저 전차에서 안 떨어지는 것부터 배우세요.”


그녀는 웃으며 언덕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소년은 한동안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한 사람의 무릎에는 호루스의 눈이, 다른 한 사람의 목에는 셴이 남았다.


네페르타리(Nefertari) 네페르(아름다운) + 타리(동반자, 짝) "아름다운 동반자" 또는 "가장 아름다운 이" 메리아문(Meritamun ) 메리(사랑받는) +아문(신 아무) "아문 신의 사랑을 받는 자"


기원전 1279년 경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 세티 1세가 아들을 바라보았다.


“너도 이제 혼인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


람세스가 고개를 숙였다.


“위대한 파라오시여. 제가 혼인할 여인을 직접 선택하게 해 주십시오.”


세티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마음에 둔 여인이 있느냐?”


람세스는 잠시 망설였다.


“이집트에서 네페르타리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을 찾아주십시오.”


얼마 뒤 왕궁에는 네페르타리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들이 하나둘 찾아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기억하는 얼굴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오후였다. 한 여인이 왕궁 안으로 들어왔다.

람세스는 그녀를 보는 순간 움직임을 멈췄다.

오래전 언덕 위에서 보았던 눈. 바람에 흔들리던 머리카락. 자신을 바라보며 웃던 얼굴.

분명 그녀였다.

그러나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물었다.


“이름이 무엇이냐?”


여인이 고개를 숙였다.


“네페르타리입니다. 왕자님.”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왕자님께 청이 하나 있습니다.”


“말해보아라.”


“저는 이미 마음을 약속한 사람이 있습니다.”


람세스의 눈빛이 흔들렸다.


“내가 누구인지 아느냐?”


“위대한 이집트의 왕자이십니다.”


“그런데도 나와의 혼인을 거절하겠다는 것이냐?”


네페르타리가 무릎을 꿇었다.


“용서해 주십시오. 하지만 아주 오래전 한 사람과 약속했습니다.”


람세스가 천천히 물었다.


“그 사람의 이름이 무엇이냐?”


네페르타리가 고개를 들었다.


“메리아문입니다.”


궁 안이 조용해졌다.

람세스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곧 웃음이 터졌다.

네페르타리는 영문을 모른 채 그를 바라보았다.

람세스가 가까스로 웃음을 멈췄다.


“네페르타리.”


“예, 왕자님.”


“그렇게까지 마음이 굳다면 내가 그 메리아문이라는 남자를 찾아주마.”


네페르타리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때 람세스의 시선이 그녀의 목에 머물렀다.

옷깃 사이로 작은 고리 하나가 보였다.


“그 목걸이는 무엇이냐?”


네페르타리의 손이 자연스럽게 목으로 올라갔다.


“그분이 주셨습니다.”


람세스는 잠시 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말했다.


“끝이 없다는 뜻이지.”

네페르타리의 손이 멈췄다.

람세스가 한 걸음 다가섰다.


“다시 만날 때까지.”

네페르타리의 눈이 커졌다.


“메리아문…?”


람세스가 미소를 지었다.


“약속대로 널 찾아왔다.”


그는 품에서 오래 접혀 있던 작은 천을 꺼냈다. 빛이 바랜 천 한쪽에 푸른 무늬가 남아 있었다.


호루스의 눈.


네페르타리의 손이 천천히 셴을 움켜쥐었다.


그녀의 목에는 여전히 셴이 걸려 있었고, 그의 손에는 오래된 호루스의 눈이 남아 있었다.



사막의 별


람세스 2세 재위 5년. 기원전 1274년경.


이집트군은 북쪽 카데시를 향해 진군하고 있었다.

아문. 라. 프타. 세트.

신들의 이름을 가진 네 사단이 움직였다.

그들이 맞서려는 상대는 히타이트 왕 무와탈리 2세가 이끄는 군대였다. ³


낮 동안 불처럼 달아올랐던 사막은 해가 지자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냈다.

모래바람이 한차례 군영을 훑고 지나갔다. 천막이 흔들리고 횃불이 꺼질 듯 흔들렸다.

그러다 바람이 멈췄다. 세상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람세스가 천막 밖으로 나왔다.

고개를 들었다. 하늘이 열려 있었다.

짙은 푸른 어둠 위로 셀 수 없이 많은 별이 떠 있었다.

누군가 검푸른 천에 금가루를 끝없이 뿌려놓은 것 같았다.

그때 뒤에서 병사 하나가 달려왔다.


“파라오시여.”


“무슨 일이냐?”


병사가 숨을 골랐다.


“왕비께서 오셨습니다.”


람세스의 얼굴이 굳었다.


“뭐라고?”


멀리 횃불 사이로 한 여인이 보였다. 모래먼지를 뒤집어쓴 네페르타리였다.

람세스가 그녀 앞에서 멈췄다.


“여기가 어디라고 오셨소.”


네페르타리는 먼저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며칠째 제대로 쉬지 못한 얼굴. 눈가에 피로가 내려앉아 있었다.


“당신을 이렇게 보내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람세스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걱정하지 마시오. 나에게는 이집트의 군대가 있소.”


하지만 네페르타리는 그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람세스의 눈빛이 흔들렸다.

왕도 두려워할 수 있다는 것을 그녀는 보았다.

네페르타리는 목에 걸고 있던 셴을 풀었다.

람세스의 목에 걸어주었다.


“기억하십니까?”


람세스가 작은 고리를 손끝으로 만졌다.


“끝이 없다는 뜻.”


네페르타리는 이번에는 호루스의 눈을 꺼내 그의 가슴에 걸어주었다.


“그때의 메리아문처럼 다시 저를 찾아오겠다고 약속해 주세요.”

두 사람은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수천 개의 별이 그들 위에 떠 있었다.

네페르타리가 말했다.


“무트와 콘수에게 맹세하세요.”


람세스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엇을 말이오?”


“죽어서가 아니라 살아서 내게 돌아오겠다고.”


람세스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무트와 밤하늘을 건너는 콘수에게 맹세하오.”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반드시 살아서 당신에게 돌아오겠소.”


네페르타리가 고개를 저었다.


“그것으로는 부족합니다.”


“무엇이 더 필요하오?”


“죽어서도 찾아와야 합니다.”


람세스가 웃었다.


“그렇다면 살아서 한 번.”


그가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갔다.


“죽어서 또 한 번 찾아가겠소.”


두 사람은 별빛 아래에서 오래도록 서로를 끌어안았다.


얼마 뒤 람세스는 네아린을 불렀다.


“왕비를 와세트까지 모셔라.”


“명령을 받들겠습니다.”


왕비의 행렬은 어둠 속에서 남쪽으로 향했다. 뒤편의 군영 횃불이 하나둘 멀어졌다.

한참을 달렸을 때 네페르타리가 말했다.


“네아린.”


“예, 왕비님.”


“전차를 세워라.”


말들이 멈췄다. 네페르타리는 전차에서 내려 북쪽을 바라보았다.


“나는 와세트로 간다.”


네아린의 얼굴에 안도의 기색이 스쳤다.


“하지만 너희는 아니다.”


“왕비님?”


“북쪽으로 가라.”


“카데시로 말입니까?”


“그래.”


네아린이 망설였다.


“하지만 파라오의 명령은 왕비님을 지키라는 것이었습니다.”


네페르타리는 다시 북쪽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를 안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위험해지면 물러나는 분이 아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더 앞으로 나아가는 분이다.”


네페르타리가 그를 바라보았다.


“와세트는 내가 지킨다.”


그리고 또렷하게 말했다.


“너희는 파라오를 지켜라.”


곧 전차들이 하나둘 방향을 돌렸다. 말들의 머리가 북쪽을 향했다.

네페르타리는 마지막 전차가 어둠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그제야 목으로 손을 가져갔다. 손끝이 허공을 스쳤다.

셴이 있던 자리는 비어 있었다.



카데시, 오론테스강 근처.


한 병사가 말을 몰아 람세스의 군영으로 뛰어들었다.


“파라오시여!”


“무슨 일이냐?”


“라 사단이 공격받았습니다.”


람세스의 얼굴이 굳었다. 실제 카데시 전투에서도 람세스가 이끄는 아문 사단은 먼저 진군했고, 뒤따르던 라 사단은 히타이트 전차군의 기습을 받아 큰 혼란에 빠졌다. ³


“프타와 세트는?”


“아직 뒤에 있습니다.”


그 순간 땅이 울렸다. 처음에는 천둥 같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수많은 말발굽과 전차 바퀴가 대지를 두드리는 소리였다.

람세스가 검을 뽑았다.


“아문의 군대여!”


그가 전차에 올라섰다.


“전차병은 나를 따르라!”


말들이 뛰쳐나갔다. 곧 이집트 전차와 히타이트 전차가 뒤엉켰다.

전차와 전차가 충돌했다. 말이 쓰러졌다.

바퀴가 부서졌다. 화살이 모래먼지를 뚫고 날아왔다.


쾅!


람세스의 전차가 크게 기울었다. 그의 몸이 모래 위로 내던져졌다.

순간 화살 하나가 가슴을 향해 날아왔다.


퍽.

람세스가 숨을 멈췄다. 그러나 화살은 몸을 뚫지 못했다.

가슴의 금빛 장식에 박혀 있었다.


호루스의 눈.


전장의 소리가 멀어졌다.

아주 오래전 언덕이 떠올랐다.

전차에서 떨어져 혼자 울던 소년. 그리고 그의 상처를 감싸주던 소녀.


“호루스가 위대한 건 처음부터 완전했기 때문이 아니라….”


“상처를 입고도 다시 일어났기 때문 아닐까요?”


그가 눈을 떴다. 손으로 모래를 짚었다.

한쪽 무릎을 세웠다. 그리고 다시 일어섰다.

손끝이 셴을 움켜쥐었다.


“네페르타리….”


그때였다. 부우우우—

긴 나팔 소리가 전장을 갈랐다.

모래먼지 너머에서 이집트 전차들이 나타났다.

선두에 네아린이 있었다.


“파라오시여!”


람세스가 소리쳤다.


“네가 왜 여기 있느냐! 왕비를 와세트까지 모시라고 하지 않았느냐!”


네아린이 숨을 몰아쉬었다.


“왕비께서 명하셨습니다.”


람세스의 표정이 굳었다.


“뭐라고?”


“와세트는 자신이 지킬 테니….”


네아린이 검을 뽑았다.


“우리는 파라오를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람세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손끝에는 셴이 닿아 있었다. 가슴에는 호루스의 눈이 있었다.


“네페르타리….”


잠시 뒤 람세스가 고개를 들었다.


“네아린.”


“예, 파라오시여.”


“전차를 가져와라.”


람세스가 다시 전차 위로 뛰어올랐다.


“이집트의 군대여!”


병사들이 왕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아직 쓰러지지 않았다.”


검을 높이 들었다.


“전진하라!”


전차들은 다시 모래먼지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람세스는 살아 돌아왔다.

사막의 밤, 네페르타리에게 했던 약속처럼.


앞의 장면은 역사가 아니라 소설이다.

여기에서 다시 역사의 기록으로 돌아온다.

이집트 왕실 기록은 카데시에서 람세스 2세가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아문의 도움을 받아 직접 적을 격퇴한 영웅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현대 연구에서는 이 전투를 이집트의 결정적 승리로 보지 않는다. 카데시는 이집트의 지배하에 들어오지 않았고 이후에도 히타이트의 영향권에 남았다. ³ 또한 카데시 기록에는 전투 중 람세스 측을 지원한 이른바 ‘네아린’ 또는 ‘네아린 부대’가 등장하지만, 네페르타리가 그들을 돌려보냈다는 기록은 없다. 호루스의 눈이 화살을 막았다는 이야기도 없다.


별빛이 흐르는 밤.

람세스 재위 24년 이후. 기원전 13세기 중엽.

궁 안에는 며칠째 약초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 창문 사이로 저녁바람이 들어와 얇은 천을 흔들었다.

침상 위에는 네페르타리가 누워 있었다. 처음에는 가벼운 열이라고 생각했다.

곧 나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열은 내려가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면서 그녀의 얼굴은 조금씩 야위어갔다.

의사들이 방을 드나들었다. 약초를 달이고 몸에 향유를 발랐다.

사제들은 신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했다. 람세스는 침상 곁에 앉아 그 모든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번 싸움은 달랐다.

적이 보이지 않았다. 검을 뽑을 수도 없었다. 전차를 몰고 달려갈 수도 없었다.

카데시에서는 수많은 전차가 자신을 향해 달려왔어도 싸울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람세스가 네페르타리의 손을 잡았다.

너무 가벼워진 손이었다.

잠시 뒤 네페르타리가 천천히 눈을 떴다.

한동안 람세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불렀다.


“메리아문.”


람세스의 손이 멈췄다.

오랫동안 아무도 그를 그렇게 부르지 않았다. 파라오. 상·하 이집트의 왕. 라의 아들.

수많은 이름으로 불렸지만 그녀 앞에서만큼은 여전히 메리아문이었다.


“내가 여기 있소.”


네페르타리가 희미하게 웃었다.


“알아요.”


침상 곁의 등잔불이 흔들렸다. 람세스의 시선이 그녀의 목에 머물렀다.

오래된 셴.

세월이 흘러 표면은 닳아 있었지만 둥근 형태는 그대로였다.


“아직도 가지고 있었소?”


네페르타리가 손끝으로 고리를 만졌다.


“당신이 다시 찾아오겠다고 했잖아요.”


람세스가 웃으려 했다. 그러나 미소는 오래가지 못했다.


“언제나 내가 당신을 찾아왔잖소.”


“네.”


네페르타리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찾아와요.”


람세스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어디로 가든.”


“어디에 있든.”


람세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찾아내겠소.”


네페르타리가 희미하게 웃었다.


“다시 만나도 당신을 알아볼 수 있을 거예요.”


람세스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손등에 이마를 댔다.

왕은 울지 않았다.

아니, 울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눈물 한 방울이 네페르타리의 손등 위로 떨어졌다.

그 순간 그는 파라오가 아니었다.

수많은 신전을 세운 왕도, 전쟁터에서 군대를 이끈 장군도 아니었다.

그저 한 여자의 손을 놓고 싶지 않은 남자였다.

창밖으로 밤이 깊어졌다. 별빛이 창 사이로 희미하게 스며들었다.

네페르타리의 손가락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마지막으로 그의 손을 감싸듯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천천히, 힘이 풀렸다.

람세스는 움직이지 않았다.


“네페르타리.”


대답은 없었다. 조금 뒤 다시 불렀다.


“네페르타리….”


등잔불만 흔들렸다. 람세스는 그녀의 손을 놓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마침내 그의 시선이 그녀의 목으로 내려갔다.

셴.


그는 작은 고리를 조심스럽게 풀었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어린 시절 자신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다시 만날 때까지.


람세스는 셴을 손안에 꼭 감쌌다.


“당신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오.”


창밖에는 별이 떠 있었다. 카데시로 떠나기 전 두 사람이 함께 바라보았던 별처럼.

그날의 약속도 떠올랐다.


살아서 한 번. 죽어서 또 한 번.


람세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이번에도 내가 찾아가겠소.”


밤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별빛만이 조용히 방 안으로 흘러들고 있었다.



네페르타리가 정확히 언제, 어떤 이유로 세상을 떠났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게티 보존 연구 자료에서는 그녀가 람세스 2세 재위 24년 이후 기록에서 사라지는 점을 근거로 대략 기원전 1255년경 사망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러나 정확한 사망 연도와 사인은 확인되지 않았다.⁴



그러나 한 가지는 남아 있다. 왕비의 계곡 QV66.

그곳에서 네페르타리는 여전히 신들을 만나고 있다.

짙은 푸른 천장 아래, 수많은 금빛 별과 함께.


사막에서 다시 만난 별

나는 다시 엽서를 떠올린다.

짙은 푸른 천장. 그 위에 떠 있던 수많은 금빛 별.

그리고 창밖 룩소르의 밤에 앉아 있던 람세스 2세의 거대한 석상.

한 사람은 돌이 되었고, 한 사람은 그림이 되었다.

그리고 네페르타리의 무덤 천장에서는 별이 지지 않았다.


다음 날 나는 카이로에 도착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알렉산드리아로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마음이 바뀌었다. 알렉산드리아는 다음에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보다 나는 사막의 별을 보고 싶었다.

화이트 사막. 사흐라 엘베이다.

나는 그곳으로 향했다.

도시를 벗어나자 풍경은 점점 비어갔다.

건물도 사라지고, 사람도 사라지고,

마침내 지평선에는 사막과 바람만 남았다.


해가 지자 사막은 어둠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리고 밤이 열렸다. 별이 쏟아졌다.

하늘 어디를 보아도 별이었다.

너무 많아서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디에서 끝나는지 알 수 없었다.

사막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별은 더 가까웠다.

그 별들을 바라보며 람세스와 네페르타리가 함께 보았을지도 모를 밤하늘을 상상했다.


서로의 손을 잡고 올려다보았던 하늘.

살아서 한 번, 죽어서 또 한 번 찾아가겠다고 약속했던 두 사람.


물론 그 이야기는 내가 만든 이야기다.

하지만 그날 사막에 서 있으니 두 사람이 아주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별빛 아래에서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었다.

네페르타리와 람세스 2세가 어딘가에서 같은 별을 바라보고 있을 것 같았다.

그날 이후 나는 별을 좋아하게 되었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별을 볼 때마다 한 이야기를 떠올리게 되었다.


돌로 남은 왕. 그림으로 남은 왕비.

그리고 3천 년이 넘도록 지지 않는 푸른 천장의 금빛 별.


이렇게 나의 이집트 미술 여행을 마친다.

나일강을 떠나 이제 에게해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다음 이야기는 그리스와 로마다.

신이 조금씩 인간의 얼굴을 닮기 시작하고, 인간의 몸이 미술의 중심으로 들어오던 세계.


이집트의 별을 뒤로하고, 이제 대리석의 세계로 걸어가 본다.


1. McDonald, John K. House of Eternity: The Tomb of Nefertari. Los Angeles: The J. Paul Getty Museum / Getty Conservation Institute, 1996.
네페르타리의 생애와 칭호, QV66의 공간 구성, 사후세계의 도상, 신들과 네페르타리의 관계 등을 참고하였다.


2. Tyldesley, Joyce. Ramesses: Egypt's Greatest Pharaoh. London: Viking/Penguin, 2000.
람세스 2세의 생애와 왕실, 네페르타리, 아부심벨의 역사적 배경을 참고하였다. 아부심벨 작은 신전은 하토르와 네페르타리에게 봉헌되었으며, 네페르타리에게 붙은 ‘그녀를 위해 태양이 빛난다’는 표현은 게티 자료에서도 확인된다.


3. Kitchen, K. A. Pharaoh Triumphant: The Life and Times of Ramesses II, King of Egypt. Warminster: Aris & Phillips, 1982.
람세스 2세 재위 5년의 카데시 전투, 아문·라·프타·세트 사단, 히타이트와의 전쟁과 당시 정치·군사적 배경을 참고하였다.


4. Corzo, Miguel Angel, and Mahasti Ziai Afshar, eds. Art and Eternity: The Nefertari Wall Paintings Conservation Project, 1986–1992. Los Angeles: Getty Conservation Institute, 1993.
QV66 벽화의 훼손 상태와 보존 사업, 안료와 제작 방법, 청색 천장과 노란 별, 무덤의 보존 역사를 참고하였다. 네페르타리가 람세스 재위 24년 이후 기록에서 사라지며 대략 기원전 1255년경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도 함께 참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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