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보이지 않는 세계를 그리다.

8장. 죽은 뒤에도 나는 나이고 싶다. 사자의 서, 심장의 무게

by김현준
센네젬(Sennedjem, 다정한 형제 )은 이집트 신왕국(약 기원전 1550~1070년경) 제19왕조의 왕실 장인으로, 람세스 2세 시대에 활동했다. 그의 무덤 TT1은 대략 기원전 13세기에 조성되었으며, 그의 아내는
이이네페르티(아름다움이 왔다.)이다.『아니의 사자의 서』 역시 같은 제19왕조, 약 기원전 1250년경에 제작되었다. 즉 센네젬과 아니는 거의 같은 시대의 사람들이다.


센네젬의 무덤과 『사자의 서』

아침, 숙소 앞에 택시 한 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 나일강에서 만난 뱃사공이 소개해준 기사였다.

문을 열고 올라탔다. 차는 룩소르 서안으로 향했다.

창밖으로 한동안 초록빛이 흘러갔다. 밭이 이어지고 야자수가 흔들렸다. 사람들이 밭 사이를 오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 초록이 끊겼다.

마치 누군가 선을 그어놓은 것처럼, 풍경이 갑자기 황갈색으로 변했다. 산에는 메마른 돌과 흙뿐이었다.

살아 있는 땅과 죽은 자의 땅.

고대 이집트에서 서쪽은 태양이 지는 방향이었고, 무덤과 죽은 자의 세계와 깊이 연결되었다. ²

태양은 매일 그곳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나도 지금, 그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차에서 내렸다. 뜨거운 공기가 얼굴을 때렸다. 발을 디딜 때마다 마른 흙이 바스러졌다.

십여 분쯤 걸었다.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작은 무덤 하나 앞에 섰다.

TT1. 센네젬의 무덤이었다.

센네젬은 왕이 아니었다. 기원전 13세기, 제19왕조 람세스 2세 시대에 활동한 왕실 장인이었다.

그는 데이르 엘메디나에서 왕들의 무덤을 만드는 장인 공동체에 속했고,

'진리의 장소의 일꾼'이라는 칭호를 지녔다. ¹

파라오의 영원을 만들던 사람은,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준비했을까.

작은 예배 공간을 지나자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타났다.

한 계단. 또 한 계단. 다시 한 계단.

등 뒤의 빛이 조금씩 작아졌다.

마지막 계단을 내려섰다. 어두웠다.

고개를 숙였다. 생각보다 좁았다.

천장은 낮았고, 몇 걸음이면 반대편 벽에 닿을 것 같았다.

그런데 고개를 들어 벽을 보는 순간이었다.

공간이 갑자기 넓어졌다.

벽 안에, 또 하나의 세계가 열려 있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밤이었다.

검은 얼굴이 보였다. 자칼의 머리. 사람의 몸.

아누비스

그는 미라가 된 죽은 자 곁에 있었다.

아누비스는 죽은 자의 몸과 미라 제작, 무덤의 보호, 그리고 죽은 자의 사후 여정과 심판에 관계된 신이었다. ³

나는 그의 검은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상하게,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일어나라.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이제 다른 길이 시작된다.


센네젬은 죽었다.

하지만 벽 속의 센네젬은 살아 있었다.

조금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곁에는 아내 이이네페르티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 앞에는 사후세계의 존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문이 있고, 그 문을 지키는 자가 있고,

그들의 이름을 알아야 하고,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도 알아야 했다.

고대 이집트의 장례 문헌에는 죽은 자가 여러 관문과 수호자를 통과하고,

그들의 이름을 알고 적절한 주문을 말하는 장면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²


죽었다고 해서, 그 세계에 그냥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길을 알아야 했다.

그래서 이집트인은 죽은 자 곁에 글과 그림을 남겼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누구를 만나게 되는지.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어떤 위험을 조심해야 하는지.

『사자의 서』

『사자의 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용이 동일한 한 권의 바카라이 아니었다.

수많은 주문과 그림 가운데 죽은 사람에게 필요한 내용을 골라 파피루스나 장례 공간에 구성했다. ²

어쩌면 그것은 바카라이라기보다, 죽은 사람이 저 세계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가지고 가는 지도에 가까웠다.

벽 위쪽으로 시선을 올렸다. 태양의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라-호라크티와 태양의 이미지.

태양을 맞이하는 개코원숭이들.

태양은 매일 저녁 사라진다. 하지만 끝난 것은 아니다. 밤의 어둠을 지나, 다음 날 다시 떠오른다.

고대 이집트의 사후세계관에서 태양의 밤 여행과 아침의 재탄생은 죽음과 재생을 이해하는 중요한 이미지였다. ²

나는 벽을 바라보다 문득 생각했다. 이집트인은 죽음을 이렇게 보았던 것은 아닐까.

밤이 끝이 아니라, 다시 아침이 오는 것. 그렇다면 죽은 사람에게도, 다시 아침이 올까.


죽은 자가 도착한 곳.

시선을 조금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시선이 멈췄다.

물이 흐르고 있었다. 밭이 있었다.

곡식이 자라고 있었다.

소가 땅을 지나고 있었다.

대추야자나무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센네젬과 이이네페르티가 있었다.

센네젬 무덤의 가장 유명한 벽화 가운데 하나는 이른바

'갈대밭(Field of Reeds)'에서 부부가 농사를 짓는 모습이다.

이 장면은 『사자의 서』 제110주문과 연결된다. ¹

나는 조금 전까지 메마른 사막을 걸어왔다. 무덤 밖에는 물 한 방울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죽은 사람이 살아갈 세계에는,

물이 넘쳤다.

이집트인은 사람을 메마른 사막에 묻고,

그가 살아갈 세계에는 다시 물과 밭을 그려 넣었다.

긴 여행을 끝내고 센네젬이 도착한 곳은 황금 궁전도 아니었다.

신들만 사는 하늘도 아니었다.

밭이었다. 살아서 보았던 강. 살아서 걸었던 들판. 살아서 일했던 땅.

그리고 무엇보다,

그곳에는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다.

이이네페르티.

문 앞에서도 함께였다.

신들 앞에서도 함께였다.

마침내 갈대밭에서도 두 사람은 함께였다.

죽음조차 두 사람을 갈라놓지 못했다.

나는 그 장면 앞에서 조금 오래 머물렀다.

어쩌면 영생은 혼자 끝없이 사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같은 사람과, 같은 길을 걷고, 같은 풍경을 보고, 다시 함께 살아가는 것.

영원히 산다는 것은, 어쩌면 영원히 사랑할 사람이 있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내가 찾던 그림

그런데 센네젬의 무덤에서 나는 계속 한 장면을 찾고 있었다.

눈은 자꾸 벽 사이를 헤맸다.

저울. 심장. 깃털.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은 죽은 자의 심장을 마아트의 깃털과 비교하는 장면이었다.

『아니의 사자의 서』 는 심판의 저울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 가운데 하나다.⁴

하지만 센네젬의 무덤에서는 심판의 저울을 찾을 수 없었다. 조금 아쉬웠다.

그리고 아쉬움은 곧 욕심으로 변했다.

직접 보고 싶다.

『아니의 사자의 서』

문제는 그것이 룩소르에 없다는 것이었다.

런던. 대영박물관. 문득 예전에 런던에 갔던 기억이 났다.

그때 나는 왜 그걸 보러 가지 않았을까.

잠깐 후회했다.

하지만 지나간 일을 붙잡고 있어 무엇하랴.

다음에 런던에 갈 기회가 생기면 꼭 보러 가야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6년 뒤. 정말로 영국에 갈 일이 생겼다.


아니를 찾아갔다가 후네페르를 만나다.

바쁜 일정 사이에서 시간을 만들었다. 대영박물관으로 향했다.

거대한 기둥이 보였다.

이번에는 목적이 분명했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이집트의 죽음과 사후세계를 다루는 Room 62로 향했다.

유리 케이스 앞으로 다가갔다.

긴 파피루스가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검은 자칼의 머리. 아누비스.

조금 더 가까이 갔다. 저울이 있었다.

한쪽에는 심장. 반대편에는 마아트의 깃털. 따오기 머리의 토트는 결과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리고 암무트가 저울 가까이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찾았다. 드디어 찾았다.

그런데 설명을 읽는 순간, 나는 피식 웃었다.

아니가 아니었다.

후네페르였다.


후네페르(아름다운 말)의 『사자의 서』는 약 기원전 1300년경 만들어졌다. 후네페르는 신왕국 시대의 고위 관리로, 죽은 뒤 사후세계를 무사히 통과하기 위해 주문과 그림을 담은 파피루스를 준비했다. 여러 장면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Frame 3의 ‘심장의 심판’이다. 아누비스가 후네페르의 심장을 마아트의 깃털과 비교하고, 토트가 결과를 기록한다.

나는 아니를 찾아 6년을 돌아왔는데,

유리 너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후네페르였다.

심장을 마아트의 깃털과 비교하는 이 심판 장면은 『사자의 서』 제125주문의 대표적 도상이다.

후네페르 파피루스에는 아누비스, 토트, 암무트, 호루스와 오시리스가 이어지는 심판 과정이 한 화면에 펼쳐져 있다.⁴

그런데 이상하게, 실망스럽지는 않았다.

사람은 달랐지만 저울은 같았다. 질문도 같았다. 심장 하나. 깃털 하나.

나는 그 저울을 오래 바라보았다. 한 인간이 살아온 삶 전체를, 겨우 깃털 하나와 비교하고 있었다.

이보다 이상한 저울이 또 있을까.

고대 이집트에서 심장은 생각과 기억, 인격과 긴밀하게 연결된 기관으로 이해되었고,

심판 장면에서는 죽은 자의 심장이 마아트의 질서를 상징하는 깃털과 비교된다. ²


그 순간,

3천 년 전의 그림이 갑자기 가까워졌다.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사랑했던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는가. 나는 제대로 살았는가.

어쩌면 3천 년 전 사람들도 나와 아주 다른 질문을 하며 산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아니를 찾으러 갔다가 후네페르를 만났다. 하지만 결국 내가 찾던 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질문이었다.

내 심장을 저울 위에 올린다면, 나는 마아트의 깃털 앞에서 당당할 수 있을까.

그 순간, 한 가지 상상이 시작되었다.

만약 아니가 정말 『사자의 서』를 들고 저 세계로 들어갔다면,

그는 어디로 갔을까. 누구를 만났을까. 그리고 신들은 그에게 무엇을 물었을까.


열두 신의 문 — 아니가 신들의 질문을 통과하다.

여기서부터는 실제 『사자의 서』의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다.

실제 문헌에 열두 신이 다음 순서로 나타나 수수께끼를 내는 구조는 없다.

이집트 신화와 장례 문헌에 등장하는 신들의 성격과 상징을 바탕으로 상상해 재구성한 이야기다.


아니가 눈을 떴다. 그런데 이상했다.

자신이 보였다. 아래에는 붕대로 감긴 한 남자가 누워 있었다. 자기 얼굴이었다.

그 앞에 검은 자칼 머리의 신이 서 있었다. 아누비스였다.

"아니." 목소리가 울렸다.

"네 몸은 여기에 남는다."

아니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 순간, 새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한 존재가 몸에서 빠져나왔다.

바(Ba)

이집트인은 인간을 단순한 몸과 영혼 두 부분으로 나누지 않았다.

몸, 카(ka), 바(ba), 이름, 그림자 등 여러 요소가 한 사람의 존재를 이루며 죽음 이후에도 서로 관계한다고 생각했다. 바는 흔히 사람 머리를 한 새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²


아누비스가 손을 들었다. 어둠 속에서 거대한 문이 나타났다.

"들어가라. 하지만 기억해라. 마지막 문에서는 외운 주문만으로는 너를 구하지 못한다."

아니가 물었다. "그러면 무엇이 저를 구합니까?"

아누비스가 말했다. "네가 살아온 삶."

문이 열렸다.


첫 번째 문 — 아누비스: 죽음은 왜 검은 얼굴을 하고 있을까

어둠 속에서 두 눈이 떠졌다. 아누비스였다.

"내 얼굴을 보아라."

"사람들은 나를 보면 죽음을 떠올린다." 그가 한 걸음 다가왔다.

"그런데 나는 왜, 죽이는 신이 아니라 죽은 자를 지키는 신이 되었느냐?"

아니가 말했다.

"자칼은 무덤 가까이에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은 두려워하던 존재에게, 오히려 무덤을 지키는 힘을 주었습니다."

아누비스가 자신의 검은손을 보여주었다.

"그럼 이 검은색은 죽음이냐?"

아니가 나일강의 검은흙을 떠올렸다.

"죽음만은 아닙니다. 검은흙에서 다시 생명이 자랍니다."

아누비스의 검은색은 나일강의 비옥한 검은 토양이 상징하는 재생과도 연관된다. ³

아누비스가 웃었다.

문이 열렸다.

죽음과 탄생은, 생각보다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두 번째 문 — 호루스: 상처 입은 눈은 왜 보호의 상징이 되었을까

이번에는 거대한 눈 하나가 떠 있었다. 매의 얼굴을 한 호루스가 나타났다.

"나는 세트와 싸우다 눈을 다쳤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상처 입은 내 눈을 보호의 상징으로 삼았느냐?"

"다시 회복되었기 때문입니다."

호루스의 눈은 세트와의 싸움에서 손상되었다가 회복되는 신화와 연결되었고, 이후 건강·온전함·보호를 상징하는 강력한 부적이 되었다. ³

호루스가 물었다.

"그러면 완전하다는 것은, 한 번도 부서지지 않는 것이냐?"

아니는 자신의 삶을 생각했다. 상처. 실패. 후회.

"아닙니다. 부서졌어도 다시 온전해질 수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호루스가 물었다.

"인간도 그러하냐?"

아니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문이 열렸다.


세 번째 문 — 토트: 없는 날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탁. 게임 말이 놓였다. 따오기 머리의 토트가 게임판 앞에 앉아 있었다.

"한 신화에서 한 해는 삼백육십 일이었다. 누트는 그날들에는 아이를 낳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달과 게임을 했다. 빛을 얻었다."

토트가 아니를 바라보았다.

"그 빛으로 무엇을 만들었느냐?"

"다섯 날입니다."

고대 이집트 신화를 전하는 한 전승에서는 토트가 달과 게임을 벌여 얻은 빛으로 기존 360일에 속하지 않는 다섯 날을 만들고, 그 기간에 여러 신들이 태어난다. ³

토트가 다시 물었다.

"나는 빛을 얻은 것이냐? 아니면 시간을 얻은 것이냐?"

아니가 말했다.

"빛을 얻었지만, 세상에는 시간을 만들었습니다."

토트가 게임 말을 내려놓았다.

"길이 없으면?"

아니가 말했다.

"새로운 길을 만들면 됩니다."

토트가 웃었다.

문이 열렸다.


네 번째 문 — 하토르: 사랑은 무엇을 살게 하는가

찰랑.

맑은 금속음이 들렸다. 소뿔 사이에 태양 원반을 얹은 하토르가 걸어왔다.

하토르는 사랑, 음악, 춤, 기쁨, 모성과 연결된 여신이었으며, 여성 또는 암소의 모습, 혹은 소뿔 사이에 태양 원반을 얹은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³

"사람들은 나를 사랑의 여신이라 부른다. 그런데 왜, 내 머리에 소의 뿔을 올렸을까?"

아니는 어미 소를 생각했다. 새끼를 먹이고, 몸으로 품고, 위험에서 지키는 모습.

"사랑은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마음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토르가 물었다.

"그러면 사랑은 무엇이냐?"

아니는 아내를 떠올렸다. 그리고 말했다.

"누군가를 살아가게 하는 힘입니다."

시스트럼이 울렸다.

문이 열렸다.


다섯 번째 문 — 세크메트: 가장 강한 자는 누구인가

이번에는 뜨거웠다. 암사자의 얼굴이 불길 속에서 나타났다. 세크메트.

"나는 분노했다. 그리고 너무 많은 피를 흘렸다.

사람들은 나를 멈추기 위해, 피처럼 붉은 술을 들판에 부었다."

'인류의 멸망' 신화에서는 파괴적인 여신이 인간을 공격하다가 붉게 물들인 맥주를 피로 착각해 마시고 취하면서 살육을 멈춘다. 이 여신은 대체로 세크메트와 연결된다. ³

그녀가 아니를 노려보았다.

"적을 쓰러뜨리는 자와, 자신의 분노를 멈추는 자. 누가 더 강하냐?"

아니는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자기 자신을 멈출 수 있는 사람입니다."

불길이 꺼졌다.

문이 열렸다.


여섯 번째 문 — 바스테트: 누가 나를 지켜주는가

고양이 한 마리가 어둠 속에서 걸어왔다. 아니의 발 앞에서 멈췄다.

그리고 여신이 되었다. 바스테트였다.

바스테트는 초기에는 사자 같은 맹수의 모습과 관련되었지만, 후대로 갈수록 고양이의 모습으로 널리 표현되며 가정, 여성, 보호, 기쁨과 관계된 여신이 되었다. ³

"나는 작다. 사자처럼 크지도 않다. 그런데 인간은 왜, 나를 자신의 집으로 들였느냐?"

"곁에서 지켜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가장 좋은 수호자는, 가장 강한 자냐?"

아니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잠든 순간에도 곁에 남아 있는 존재입니다."

고양이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문이 열렸다.


일곱 번째 문 — 크눔: 나는 어디까지가 나인가

물레가 돌고 있었다. 숫양 머리의 크눔이 진흙으로 사람을 빚고 있었다.

크눔은 숫양 머리를 한 창조신으로, 인간이나 왕을 물레 위에서 빚어내는 모습으로 표현되곤 했다. ³

손. 얼굴. 가슴.

"아니. 저 몸이 너냐? 몸이 사라지면, 너도 사라지는 것이냐? 네 이름이 너냐? 기억이 너냐? 사랑이 너냐?"

아니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어느 하나만으로는 저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크눔의 손이 멈췄다. "그래. 인간은 하나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문이 열렸다.


여덟 번째 문 — 세트: 선과 악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바람이 불었다. 곧 모래폭풍이 되었다. 그 속에서 기묘한 얼굴이 나타났다.

긴 귀. 휘어진 주둥이. 어떤 동물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얼굴. 세트.

세트의 머리는 실제 동물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아 흔히 '세트 동물(Set animal)'이라고 부른다.

그는 사막, 폭풍, 혼돈과 연결되며 오시리스를 죽이는 적대자로 등장하지만, 다른 이야기에서는 태양신 라를 위협하는 아펩과 맞서 싸우는 보호자 역할도 한다. ³

"나는 오시리스를 죽였다. 나는 사막이고, 폭풍이고, 혼돈이다."

세트가 웃었다. "그러면 나는 악이겠구나."

아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세트 뒤로 거대한 뱀의 그림자가 꿈틀거렸다.

"그런데 나는 라의 배를 지키며 아펩과 싸우기도 한다."

그가 아니에게 물었다. "나는 선이냐? 악이냐?"

아니가 말했다.

"둘 중 하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세트가 웃었다.

"그러면 인간은?"

아니는 입을 다물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이 열렸다.


아홉 번째 문 — 이시스: 이름을 잃으면 나는 사라지는가

이번 문에는 이름 하나도 적혀 있지 않았다. 이시스가 나타났다.

"나는 라에게서, 그의 비밀스러운 이름을 알아냈다."

이시스가 라의 비밀스러운 이름을 알아내 그의 힘을 얻는 이야기는 이집트 신화에서 '이름'이 존재와 권력에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이야기다. ³

"왜 이름을 아는 것이 힘이 되었느냐?"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 존재가 누구인지 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시스가 아니에게 다가왔다.

"그럼 묻겠다. 아무도 네 이름을 기억하지 않는 날이 오면, 너는 존재하느냐?"

아니가 멈췄다. 긴 침묵.

"저는 아니입니다. 그리고 저는 제 이름을 알기에 존재합니다."

그 순간, 문 위에 그의 이름이 나타났다.

문이 열렸다.


열 번째 문 — 라: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진 것일까

빛이 쏟아졌다. 아니는 눈을 가렸다. 태양 원반 아래에 라가 서 있었다.

"나는 아침마다 나타난다. 저녁마다 사라진다. 그렇다면 나는, 매일 죽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다시 떠오른다면?"

아니가 말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라가 웃었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냐?"

아니는 고개를 저었다.

어둠 속에서 또 하나의 문이 열렸다.


열한 번째 문 — 마아트: 네 심장이 말을 한다면

이번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깃털 하나가 천천히 내려왔다. 저울 한쪽에 놓였다.

그리고 마아트가 나타났다.

마아트는 단순한 한 여신을 넘어 진실, 정의, 질서와 우주의 올바른 균형을 나타내는 개념이었으며, 타조 깃털은 그녀를 대표하는 상징이었다. ³

"가볍지?"

"네."

"그런데 이것으로, 인간의 삶을 판단한다."

마아트가 말했다.

"무엇을 재는 것이냐?"

"무게가 아닙니다." 아니가 말했다.

"균형입니다."

마아트가 손을 뻗었다. 저울 반대편에 심장이 나타났다.

아니의 심장이었다. 아니는 본능적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마아트가 물었다. "네 심장이 말을 할 수 있다면, 너를 변호하겠느냐?"

아니는 대답하지 못했다.

저울이 움직였다. 심장. 깃털. 심장. 깃털.

아니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외운 주문도, 말도, 변명도, 이제 소용없었다. 그가 살아온 삶이 대답할 차례였다.

저울이 천천히 멈췄다.

문이 열렸다.


열두 번째 문 — 오시리스: 정답이 없는 질문

마지막 문에는 수수께끼가 쓰여 있지 않았다. 푸른 어둠뿐이었다. 그 가운데 왕좌 하나가 놓여 있었다.

미라처럼 감긴 몸. 갈고리와 도리깨. 오시리스. 오시리스는 죽은 자의 왕이자 죽음과 재생을 대표하는 신으로, 미라 형태의 몸과 왕권을 상징하는 갈고리와 도리깨를 든 모습으로 흔히 표현되었다. ³

그가 아니를 바라보았다.

"앞의 신들은, 너에게 우리에 대해 물었다."

잠시 침묵했다.

"나는 너에 대해 묻겠다."

아니는 숨을 삼켰다.

오시리스가 말했다.

"아니. 너는 왜 죽고 싶지 않으냐?"

아니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사자의 서』에도 정답이 없었다.

한참 뒤, 그가 입을 열었다.

"죽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사라지는 것이 두렵습니다."

"무엇이 사라지는 것이냐?"

아니가 눈을 감았다.

"제 이름. 제가 사랑했던 사람들의 얼굴. 그들과 함께했던 기억."

오시리스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러면 영원히 산다는 것은 무엇이냐?"

아니가 말했다.

"끝없이 사는 것이 아니라, 끝내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잠시 멈췄다. 그리고 한마디를 더했다.

"내가 사랑한 사람들과 함께."

오시리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뒤에서 문이 열렸다.

눈부신 빛이 쏟아졌다.


다시, 갈대밭

물이 흐르고 있었다. 바람이 불었다. 갈대가 흔들렸다.

곡식이 익어가고 있었다. 소가 밭을 갈았다. 멀리 사람들이 보였다.

아니가 천천히 걸어갔다. 낯선 곳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낯설지 않았다. 어디선가 보았던 풍경. 나일강. 밭. 나무. 바람. 갈대밭이었다.


그 순간, 나의 기억은 다시 룩소르의 센네젬 무덤으로 돌아갔다.

센네젬과 이이네페르티.

그들도 같은 밭을 걷고 있었다.

죽은 뒤에도, 센네젬은 센네젬이었다. 이이네페르티는 이이네페르티였다.

고대 이집트인이 바란 사후의 삶은 다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환생이라기보다,

자신의 이름과 존재를 유지한 채 재생하여 계속 살아가는 삶에 가까웠다.

몸을 보존하고 이름과 이미지를 남기는 행위 역시 이러한 영속성과 연결되어 있었다. ²

다른 누군가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이름을 가지고, 얼굴을 가지고, 기억을 가지고,

사랑했던 사람과 함께 다시 살아가는 것.

그래서 그들은 몸을 남기려 했던 것일까. 이름을 적고, 얼굴을 그리고, 자신이 살아갈 세계까지 벽 위에 남긴 것일까.

나는 처음 사자의 서를 볼 때, 사후세계가 궁금했다. 그런데 지금, 내 머릿속에는 다른 문장이 남았다.

죽은 뒤에도, 나는 나이고 싶다.
그리고 아마, 사랑했던 사람도 그 사람으로 남아 있기를 바랄 것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그리다

계단을 올라갔다. 한 계단. 또 한 계단. 눈앞이 밝아졌다. 마지막 계단을 밟자,

뜨거운 룩소르의 햇빛이 다시 얼굴을 덮었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작은 입구 하나. 그 아래에는 물이 흐르고, 곡식이 자라고, 죽은 사람들이 다시 사랑하는 세계가 있었다.

아무도 죽은 뒤의 세계를 보고 돌아와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런데 이집트인은 그 세계를 그렸다.

신에게 얼굴을 주었다. 저승에 길을 만들었다. 문을 만들었다. 문지기를 세웠다. 강을 흐르게 했다.

밭에 곡식을 심었다. 그리고 죽은 자가 그곳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말과 그림을 남겼다.


그리고 다시, 내 주위에서 영어가 들려왔다. 나는 어느새 현실로 돌아와 있었다.

Room 62.

조금 전까지 나는 아니와 함께 저울 앞에 서 있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집트인들은 모두 같은 사후세계를 꿈꾸었을까?

물론 그들에게는 공통된 믿음이 있었다.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죽은 자는 신들의 도움을 받아 저 너머의 세계로 나아갔고, 자신의 이름과 몸, 존재를 지켜야 했다.

살아서 맺었던 관계도 죽음과 함께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센네젬의 곁에는 죽은 뒤에도 아내 이이네페르티가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 역시 그들이 꿈꾸었던 영원의 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영원을 그려낸 풍경까지 모두 같았던 것은 아니다.


세네페르(아름다운 형제)는 신왕국 제18왕조 아멘호테프 2세 시대, 기원전 15세기 중반(약 BC 1427~1401년 무렵)에 활동한 테베의 시장이었다. 그의 무덤 TT96은 룩소르 서안 셰이크 압드 엘쿠르나에 있으며, 천장을 뒤덮은 포도넝쿨 그림 때문에 ‘포도밭의 무덤’이라 불린다.


룩소르에서 보았던 세네페르의 무덤 TT96이 떠올랐다. 그의 무덤에 들어가면 천장에는 포도넝쿨이 가득하다.

돌출되고 움푹 들어간 천장의 굴곡을 따라 넝쿨이 뻗고, 그 사이로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뜻밖에도 라스코 동굴을 떠올렸다.

수만 년 전 라스코의 화가들은 바위의 굴곡을 동물의 등과 배로 이용했다.

세네페르의 무덤에서도 천장의 굴곡은 그림과 만나면서 또 다른 공간을 만들어냈다.

돌로 된 천장은 어느새 사라지고, 머리 위에는 포도가 익어가는 정원이 펼쳐졌다.


센네젬은 갈대밭을 그렸다.

세네페르는 포도넝쿨을 펼쳐놓았다.

그렇다면 두 사람이 꿈꾸었던 영원은 조금 달랐던 것일까?

아니면 사후세계는 하나였지만, 그 안에서 누리고 싶은 행복의 모습은 사람마다 달랐던 것일까?

그 순간 옆방에 있는 한 사람이 떠올랐다.

네바문. Room 61.

그는 자신의 무엇을 남기고 싶었을까?

영원한 행복, 네바문의 연회

1. Museo Egizio. “TT1, Tomb of Sennedjem.” Museo Egizio Photo Archive. Accessed September 26, 2026. 센네젬의 신분과 시대, TT1 벽화, 이이네페르티, 갈대밭 장면을 확인하는 데 참고했다.

2. Taylor, John H., ed. Journey Through the Afterlife: Ancient Egyptian Book of the Dead. London: British Museum Press, 2010. 『사자의 서』의 구성, 사후세계의 관문과 주문, 심장 심판, 바(ba), 정체성의 지속과 재생 개념을 참고했다.

3. Wilkinson, Richard H. The Complete Gods and Goddesses of Ancient Egypt. New York: Thames & Hudson, 2003. 아누비스, 호루스, 토트, 하토르, 세크메트, 바스테트, 크눔, 세트, 이시스, 라, 마아트, 오시리스의 형상·상징·신화를 참고했다.

4. British Museum. “Book of the Dead, Papyrus of Ani, Frame 3,” museum no. EA10470,3; and “Book of the Dead of Hunefer, Frame 3,” museum no. EA9901,3. British Museum Collection Online. Accessed September 26, 2026. 아니와 후네페르의 심장 심판 장면과 관련 도상을 확인하는 데 참고했다.

월요일 연재
이전 07화2부. 보이지 않는 세계를 그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