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보이지 않는 권력을 그리다. 이집트 미술
카이로에 처음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도시 외곽의 낡고 빽빽한 주거지였다.
낮은 건물들이 길게 이어졌다.
차창 밖 풍경은 내가 상상했던 이집트와는 조금 달랐다.
피라미드도, 신전도, 파라오도 없었다.
그저 사람들이 살아가는 거대한 도시가 펼쳐져 있었다.
도심으로 들어갈수록 현대식 건물과 넓은 도로가 나타났다.
오래된 주거지와 현대식 건물은 서로 밀어내기보다
한 도시 안에서 겹쳐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처음 만난 카이로는 미로 같은 도시였다.
길은 복잡했고, 도시는 넓었고,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한눈에 구분되지 않았다.
그래서 자꾸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골목 아래에도, 저 낡은 건물 아래에도, 아직 발견되지 않은 시간이 묻혀 있는 것은 아닐까.
카이로에서는 현재와 과거가 멀리 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의 모습은 서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출근하는 사람들.
휴대전화를 보는 사람들.
어딘가로 서둘러 가는 사람들.
모두 바빴고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움직였다.
그 순간 묘한 생각이 들었다.
내 눈에는 수천 년의 역사가 보였지만, 그들에게 카이로는 역사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도시였다.
그리고 그 바쁜 도시 한가운데 약 5천 년 전의 왕이 아직 남아 있다.
나르메르.
그를 만나려면 카이로의 이집트 박물관으로 가야 한다.
그곳에는 초기 이집트 왕권을 보여주는 대표적 유물인 나르메르 팔레트가 소장되어 있다. ¹
도시의 소음과 자동차 경적을 지나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면 시간의 속도가 달라진다.
그리고 그곳에서 오래된 돌판 하나와 마주하게 된다.
나르메르 팔레트.
사진으로 보면 그저 오래된 돌판 한 장처럼 보인다.
그런데 난 왜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가 이 돌을 직접 보고 싶어 했을까.
아마 유명한 유물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약 5천 년 전
누군가가 이 돌을 만졌고, 누군가는 여기에 그림을 새겼고, 누군가는 이 그림 앞에 섰다.
그리고 지금 내가 같은 돌을 바라본다.
그 순간 5천 년이라는 시간이 갑자기 가까워진다.
어쩌면 나는 유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직접 확인하러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르메르 팔레트를 가까이 보면 이상한 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사람들의 크기가 다르다.
왕은 크다.
신하와 적은 작다.
같은 인간인데 왜 이렇게 다르게 그렸을까.
왕이 실제로 다른 사람보다 훨씬 컸던 것일까.
아니다.
이집트 미술에서는 인물의 실제 신체 크기보다 그 인물의 중요성과 지위에 따라 크기를 달리 표현하는 방식이 사용되었다. ²
중요한 사람은 크게 그려졌다. 그림 속 크기는 권력의 크기였다.
팔레트의 한쪽에서 나르메르는 상이집트의 흰 왕관을 쓰고 있다.
한 손에는 곤봉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무릎 꿇은 적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있다.
왕의 뒤에는 작은 신하가 따라선다.
위쪽에는 매가 보인다. 호루스다.
팔레트의 다른 면에서는 나르메르가 하이집트의 붉은 왕관을 쓰고 있다.
이 두 왕관과 적 제압 장면, 호루스의 이미지는
나르메르의 왕권과 두 지역에 대한 지배를 보여주는 중요한 도상으로 해석되어 왔다. ²
한쪽에서는 흰 왕관. 다른 쪽에서는 붉은 왕관.
왕관은 달라졌지만 왕은 같다.
그림은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두 땅을 다스리는 왕은 하나다.
여기서 잠시
약 5천 년 전으로 가보자.
실제 전투가 어떻게 벌어졌는지는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여기서부터는 나르메르 팔레트에 남아 있는 이미지를 바탕으로
내가 상상해 재구성한 장면이다.
새벽이었다.
나일강 위로 붉은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강에서 불어온 바람이 파피루스 잎을 흔들었다.
나르메르는 북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머리에는 상이집트의 흰 왕관이 올라가 있었다.
주변의 병사들은 창과 곤봉을 움켜쥔 채 몸을 낮췄다.
나르메르는 눈을 감았다.
“호루스여. 오늘 우리에게 승리를 허락하소서.”
멀리서 병사들의 움직임이 보였다.
나르메르가 손을 들었다.
아직이다.
적이 가까워졌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리고 손이 내려갔다.
“지금이다.”
파피루스 사이에 숨어 있던 병사들이 한꺼번에 뛰쳐나왔다.
창이 날아가고, 곤봉이 내려쳤다. 방패와 방패가 부딪쳤다.
고함과 비명이 나일강 위로 퍼졌다.
사람과 사람이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부딪쳤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싸움의 소리가 조금씩 잦아들었다.
마침내 한 남자가 나르메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왕은 그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오른손에는 곤봉이 들려 있었다.
훗날 이와 닮은 장면을 돌 위에 새겼다.
왕은 크게. 적은 작게. 왕의 위에는 호루스를 두었다.
나르메르는 승리한 왕이었다.
팔레트의 다른 면에서 그는 하이집트의 붉은 왕관을 쓰고 있다.
전투가 끝난 뒤 그가 흰 왕관을 벗고 북쪽 땅의 붉은 왕관을 머리에 올리는 순간을 상상해보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패배한 왕에게서 왕관을 빼앗아 쓴 장면이었다는 기록은 없다.
우리가 확실하게 볼 수 있는 것은 팔레트 위의 이미지다.
왕관은 달랐지만 왕은 하나였다.
또한 이집트의 통일을 나르메르가 단 한 번의 전투를 통해 완성한 사건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선사시대 말부터 초기왕조기에 이르기까지 상이집트와 하이집트의 정치적 통합은
여러 단계에 걸쳐 진행된 과정으로 이해되고 있다. ³
그렇다면 나르메르 팔레트는 전쟁의 현장을 그대로 옮긴 그림이라기보다
긴 역사와 왕권의 메시지를 하나의 이미지로 압축한 것인지도 모른다.
팔레트에는 패배한 적들이 쓰러져 있고, 하단에서는 황소가 성벽을 들이받는다. ²
왕은 인간의 모습으로도, 황소의 힘으로도 나타난다.
초기 이집트의 동물 이미지는 선사시대의 의례와 상징체계에서 이어진 왕권 표현의 일부로 해석되기도 한다.⁴
이것이 실제 전쟁 뒤의 상황을 그대로 기록한 것인지,
왕의 완전한 승리를 강조한 상징적 표현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림이 전하는 메시지는 선명하다.
왕은 승리했고, 적은 더 이상 왕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
그림은 이제 단순히 흔적을 남기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림이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그림에 주장이 생긴 것이다. 크기는 권력을 말한다.
왕관은 지배하는 땅을 말한다. 호루스는 신성한 정당성을 말한다.
권력은 보이지 않지만, 이미지는 그것을 보이게 만든다.
그림이 역사와 권위를 전달하는 언어가 된 것이다.
전쟁은 끝났지만 그림은 시작되었다.
5천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이 돌판을 본다.
그날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한 가지는 안다.
누가 왕이었는지는. 이것이 그림의 힘이다.
그림은 사건을 기억하게 할 뿐 아니라 그 사건을 어떻게 기억할지도 보여준다.
선사시대의 그림이 “우리는 여기 있었다.”라고 말했다면,
이집트의 그림은 이제 “누가 이 세계를 다스리는가.”를 말하기 시작했다.
그림은
흔적에서 이야기로, 이야기에서 기록으로, 기록에서 권위로 나아갔다.
생각해 보면 우리도 완전히 다르지는 않다.
우리는 더 이상 사람을 두 배 크게 그리지는 않는다.
대신 중요한 사람을 가운데 세운다.
더 크게 비추고, 더 많은 화면을 내준다.
권력을 크게 보이게 만드는 방식만 달라졌을 뿐이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그 방법이 훨씬 직접적이었다.
언젠가 카이로의 이집트 박물관에서 나르메르 팔레트 앞에 서게 된다면 왕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왕의 크기를 보고, 옆의 작은 신하를 보고, 무릎 꿇은 적을 보고, 왕관을 보고, 호루스를 바라보자.
그러면 오래된 돌판 하나가 조금씩 문장처럼 읽히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5천 년 전 누군가가 전하고 싶었던 말도 들릴지 모른다.
그런데 이집트인은 왕의 크기만 다르게 그린 것이 아니다.
사람의 몸도 우리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렸다.
얼굴은 옆을 보고 있는데 눈은 정면을 바라본다.
어깨는 정면인데 다리는 다시 옆으로 향한다.
왜 이렇게 그렸을까.
사람을 제대로 그릴 줄 몰랐던 것일까.
아니면 오히려 사람을 더 정확하게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이렇게 그린 것일까.
그렇다면 그들에게 ‘닮게 그린다’는 것은 우리와 전혀 다른 의미였는지도 모른다.
사람을 가장 완전하게 그리는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1. Egyptian Museum in Cairo, “Narmer Palette”; Egyptian Ministry of Tourism and Antiquities, “Narmer Palette,” Discover Egypt’s Monuments. 나르메르 팔레트는 히에라콘폴리스에서 발견된 초기왕조기의 대표 유물로, 현재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2. British Museum, “Cast; Palette: Narmer Palette”; Egyptian Ministry of Tourism and Antiquities, “Narmer Palette.” 팔레트에는 상이집트의 흰 왕관과 하이집트의 붉은 왕관을 쓴 나르메르, 적을 제압하는 왕, 호루스, 참수된 적들, 긴 목의 상상 동물, 황소가 성벽을 공격하는 장면 등이 표현되어 있다. 인물의 크기 차이는 초기 이집트 미술에서 지위와 중요성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위계적 표현과 연결된다.
3. Egyptian Ministry of Tourism and Antiquities, “Narmer Palette”; David Wengrow, “Rethinking ‘Cattle Cults’ in Early Egypt: Towards a Prehistoric Perspective on the Narmer Palette,” Cambridge Archaeological Journal 11, no. 1 (2001): 91–104. 나르메르 팔레트는 이집트 통일과 연결되어 해석되어 왔지만, 상·하이집트의 정치적 통합은 단 한 번의 전투보다는 보다 긴 국가 형성 과정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4. David Wengrow, “Rethinking ‘Cattle Cults’ in Early Egypt,” 91–104. 이 연구는 팔레트의 황소를 비롯한 동물 이미지를 선사시대 이집트의 의례와 상징 전통, 초기 왕권 형성의 연속선에서 검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