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인간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4장. 손을 잡다, 고부스탄 암각화

by김현준
아제르바이잔 카스피해 서쪽의 고부스탄에는 6,000점이 넘는 암각화가 남아 있다.
사람과 동물, 사냥과 어로, 배와 생활 모습이 바위 곳곳에 새겨져 있다.
이 유적 전체에는 후기 구석기부터 중세까지 이어지는 약 4만 년의 인간 활동 흔적이 겹쳐 있다. ¹


그 많은 그림 가운데 내 눈을 붙잡는 것은
거대한 동물도, 활을 든 사냥꾼도 아니다.

사람들이다.

뵈윅다시 지역의 몇몇 그림은 유난히 시선을 붙잡는다.

여러 사람이 줄지어 움직이고 있다.

일부 인물들은 서로 손을 잡은 듯 이어져 있다.

얼굴은 없다. 눈도 없다. 표정도 없다.

그런데 이상하다.

관계는 보인다.

연구자들은 이런 장면을 집단 춤이나 의례적 움직임으로 해석해 왔다.

현대 아제르바이잔의 전통 군무인 ‘얄리’와 연결하기도 하고,

사냥과 관련된 주술적·의례적 움직임으로 보기도 한다. ²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왜 춤췄는지 알 수 없다.

사냥을 앞둔 의식이었을까.

누군가의 탄생을 축하하는 춤이었을까.

아니면 긴 하루가 끝난 뒤 그저 오늘도 함께 살아 있다는 것이 좋아 춤을 추었던 것일까.


우리는 모른다.

다만 그림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한 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한 손이 다른 손을 향한다.

그 손은 또 다른 손으로 이어진다.


여기서부터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나의 상상이다.

해가 저문다.

낮 동안 달아올랐던 바위가 천천히 식어간다.

사냥에서 돌아온 사람들, 아이를 품에 안은 사람, 말없이 불을 바라보는 노인이

모닥불 주위에 모인다.

누군가 장작 하나를 더 넣는다.

불꽃이 솟는다.

아이 하나가 땅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집어 든다.

사냥꾼처럼 창을 던지는 흉내를 낸다.

어른들이 웃는다. 아이도 웃는다.

이번에는 커다란 짐승이라도 된 듯 몸을 흔든다.

다른 아이가 따라나선다.

둘은 서로를 쫓고 피하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난다.


한 아이가 발을 굴린다.

쿵.

다른 아이도 따라 한다.

그때 누군가 손뼉을 친다.

짝.

아이들의 발소리에 박자가 생긴다.

한 여인의 입에서 노래가 흘러나온다.

처음에는 작다.

그러나 곧 옆 사람이 따라 부른다.

또 다른 사람이 노랫말을 받는다.

한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옆 사람에게 손을 내민다.

그 손을 잡은 사람이 다시 다른 사람의 손을 잡는다.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난다.

노랫말에 맞춰 발을 움직인다.

처음에는 조금씩 다르다.

누군가는 빠르고, 누군가는 늦다.

그러다 어느 순간 발소리가 맞기 시작한다.

아이들도 그 사이로 들어온다.

작은 손이 어른의 손을 잡는다.

그 작은 손의 반대편에는 또 다른 손이 이어진다.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모닥불을 중심으로 하나의 원을 만든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아이의 장난이었는지, 누군가의 박수였는지, 여인의 노래였는지.

어느 순간 한 사람의 춤은 사라지고 우리의 춤이 시작되었다.

춤은 혼자서도 출 수 있다.

혼자라면 내가 원하는 속도로 움직이면 된다.

빠르게 움직여도 되고, 멈춰도 되고, 마음대로 방향을 바꿔도 된다.


하지만 손을 잡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진다.

이때부터 춤은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이미 다른 사람과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내가 너무 빨리 움직이면 옆 사람이 따라오지 못한다.

내가 늦으면 누군가는 기다려야 한다.

함께 춤추려면 내 발만 봐서는 안 된다.

옆 사람의 호흡을 느껴야 한다. 움직임을 살펴야 한다.

서로의 속도를 맞춰야 한다.


함께 산다는 것은 서로의 속도를 맞추는 일인지도 모른다.

사냥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는 동물을 몰고, 누군가는 기다리고, 누군가는 창을 던져야 했다.

혼자 강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함께 살아남으려면 다른 사람의 움직임을 읽어야 했다.


고부스탄의 집단 장면을 의례나 사냥과 관련된 움직임으로 보는 해석이 있지만,

그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다. ³

그래도 나는 그 맞잡은 손을 오래 바라본다.

우리는 지금도 손으로 마음을 전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넘어진 사람에게 손을 내밀고, 두려운 아이의 손을 꼭 잡는다.

말보다 먼저 손이 말할 때가 있다.

괜찮아.

내가 여기 있어. 같이 가자.

어쩌면 손은
인간이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사용한 언어인지도 모른다

수천 년 전 사람들도 그런 마음을 알았을까.

알 수 없다.

그들의 이름은 사라졌다. 얼굴도 남지 않았다.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손을 맞잡은 모습은 남았다.

고부스탄은 한 시대의 그림만 남은 장소가 아니다.

오랜 시간 동안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 흔적을 남긴 곳이다. ³


그래서 나는 이곳을 바라볼 때마다 인간의 시간이 겹쳐 보인다.

서로 다른 시대와 장소의 그림들이지만 나는 그 흔적들을 이렇게 읽어본다.

라스코에서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바라보았다.

손 스텐실에서는 자신의 존재를 남겼다.

그리고 고부스탄에서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민다.

우리.

인간을 여기까지 데려온 것은 강한 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손을 잡을 줄 아는 능력이었는지도 모른다.

고부스탄의 맞잡은 손은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

우리는 함께 있었다.

그리고 인간의 시선은
조금씩 다른 곳을 향하기 시작한다.

눈앞의 동물도, 자신의 손도,

곁에 있는 사람도 아닌 곳.


보이지 않는 질서
태양은 왜 매일 다시 떠오르는가.
강은 왜 때가 되면 다시 넘치는가.
사람은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인간은 이제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세상에는 분명
어떤 질서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질서를 움직이는 힘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인간은
보이지 않는 힘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신이라는 이름에 얼굴을 주기 시작한다.

다음 2부에서는
그 보이지 않는 세계를 가장 정교하게 형상화했던 문명,
고대 이집트의 미술을 만나보려 한다.


1. UNESCO World Heritage Centre, “Gobustan Rock Art Cultural Landscape,” accessed September 20, 2026.
UNESCO는 고부스탄에 6,000점이 넘는 암각화가 남아 있으며, 후기 구석기부터 중세까지 이어지는 장기간의 인간 활동과 생활상을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2. Rahman Abdullayev, “Bronze Age Rock Art of Gobustan,” in Proceedings of the XIX International Rock Art Conference IFRAO 2015, Arkeos 37 (Cáceres, 2015), 1693–1703.
Abdullayev는 뵈윅다시의 집단 인물상을 춤과 의례의 맥락에서 다루며, 현대의 얄리와 연결하는 해석과 사냥과 관련된 주술적 의례라는 견해를 소개한다. 다만 이러한 연결은 해석의 영역이며 직접적인 문화적 연속성을 확정하는 것은 아니다.

3. ICOMOS, Advisory Body Evaluation: Gobustan Rock Art Cultural Landscape (Azerbaijan), No. 1076 rev. (Paris: ICOMOS, 2007).
ICOMOS의 세계유산 평가서는 고부스탄의 암각화와 거주·정착 흔적이 매우 긴 시대에 걸쳐 형성되었음을 검토한다. 따라서 고부스탄은 한 시기의 단일 작품군이라기보다 여러 시대의 삶이 중첩된 문화경관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월요일 연재
이전 03화1부. 인간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