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인간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3장. 나를 남기다, 손 스텐실

by김현준
스페인 북부의 엘 카스티요 동굴에 손 스텐실이 남아 있다.
이곳의 일부 손 스텐실은 약 3만 7천 년 전 무렵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확한 개수를 하나로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여러 개의 손 스텐실과 점, 기호들이 함께 남아 있다.
또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의 쿠에바 데 라스 마노스(Cueva de las Manos), ‘손의 동굴’ 에는 대략 기원전 1만 3천 년에서 9천5백 년 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손 스텐실이 남아 있다.
이곳에는 800개가 넘는 손자국이 모여 있다.


동물의 모습이 사라지고 벽 위에 손이 나타난다.

말도 아니다.

사슴도 아니다.

거대한 오록스도 아니다.

그저 손 하나다.

손을 벽에 대고 그 주변에 안료를 불어 뿌린다.

그리고 손을 뗀다.

그러면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손은 사라졌는데 손이 있던 자리는 남는다.

그것은 그림이라기보다 존재가 빠져나간 자리처럼 보인다.


유럽의 구석기 동굴에서는 이러한 손 스텐실이 여러 지역에서 발견된다.

최근 연구는 그것을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인간의 신체를 직접 이용해 만들어낸 흔적이자

상징적 이미지로 바라본다. ¹


나는 손 스텐실을 볼 때마다 이 질문을 떠올린다.

사람은 왜 자신의 손을 남겼을까.

스페인 북부의 엘 카스티요 동굴에도 오래된 손 스텐실이 남아 있다.

그리고 유럽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에도 수많은 손이 남아 있다.

쿠에바 데 라스 마노스.

말 그대로 ‘손의 동굴’이다.

서로 멀리 떨어진 장소다.

시대도 다르다.

그런데 인간은 비슷한 방법으로 손을 남겼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 손들이 모두 같은 손이 아니라는 점이다.

최근에는 손의 형태와 비율을 분석해 손을 남긴 사람의 연령과 성별을 추정하려는 연구까지 이루어지고 있다. ²

벽에 남은 것은 하나의 추상적인 ‘인간’이 아니다.

서로 다른 크기의 손, 서로 다른 손가락, 서로 다른 사람들이 남긴 실제 몸의 흔적이다.


나는 먼저 스페인의 한 동굴을 떠올려본다.

여기서부터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나의 상상이다.

겨울이 왔다.

바람은 매섭고 땅은 얼어붙었다.

한 여인이 동굴 입구에 선다.

나는 그녀를 잠시 네안이라고 불러본다.

네안데르탈인 여성.

그녀는 오랫동안 자신의 동족을 찾아 헤맸다.

그러나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눈 위에는 자신의 발자국만 길게 남았다.

동굴 안은 비어 있다.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다.

네안은 안으로 들어간다.

마른 가지를 모으고 불을 피운다.

작은 불꽃 하나가 어둠을 조금 밀어낸다.

그녀는 불 가까이에 몸을 웅크린다.

오늘은 살아남았다. 하지만 내일은 모른다.

먹을 것도 찾아야 한다. 추위도 견뎌야 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자신의 사람들을 다시 찾아야 한다.

며칠이 지난다.

어느 날 네안은 동굴 벽 앞에 선다.

오랫동안 그 벽을 바라본다. 차가운 바위다.

네안은 천천히 손을 벽에 댄다.

차가운 돌의 감촉이 손바닥에 전해진다.

안료를 입에 머금는다.

그리고 숨을 내쉰다.

붉은 가루가 손가락 사이로 퍼져나간다.

잠시 뒤 손을 뗀다.

벽에는 그녀의 손이 아니라

그녀의 손이 있던 자리가 남는다.

네안은 한동안 그 흔적을 바라본다.

나는 그 침묵 속에 한 문장을 넣어본다.


나는 여기 있었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모른다.

언젠가 이 동굴을 찾아올 누군가에게 일까.

다시는 만나지 못할 가족에게 일까.

아니면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일까.

나는 살아 있었다. 나는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나는 이곳을 지나갔다.

물론 실제로 네안데르탈인 여성이 엘 카스티요의 이 손을 남겼다는 증거는 없다.

그 손에 ‘나는 여기 있었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는 증거도 없다.

이것은 손 스텐실을 바라보며 내가 떠올린 이야기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누군가는 손을 벽에 댔다. 안료를 뿌렸다. 그리고 다시 손을 거두었다.

그 짧은 순간이 수만 년의 시간을 건너 우리 앞에 남아 있다.


그리고 아주 먼 곳에 또 다른 손들이 있다.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

절벽과 강이 이어지고 거센 바람이 지나가는 땅.

그곳의 동굴 벽에는 수많은 손 스텐실이 남아 있다.

유네스코는 쿠에바 데 라스 마노스의 암벽미술 전통이 매우 오랜 기간 이어졌으며,

손 스텐실뿐 아니라 구아나코—라마를 닮은 파타고니아의 야생동물—를 사냥하는 장면도 남아 있다. ³


멀리서 보면 수많은 손이 하나의 거대한 무늬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전혀 다르다.

손의 크기가 다르다. 손가락의 길이가 다르다. 놓인 위치도 다르다.

어떤 손은 크고, 어떤 손은 작다.

어떤 손은 또렷하고, 어떤 손은 시간 속에서 희미해졌다.

나는 그 손들을 하나씩 바라본다.

이 손은 누구의 것이었을까.

이 작은 손을 남긴 사람은 몇 살이었을까.

이 손의 주인은 무엇을 보았을까.

무엇을 두려워했을까.

누구를 사랑했을까.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이름도 남아 있지 않다. 얼굴도 모른다. 목소리도 들을 수 없다. 그런데 손은 남았다.

그래서 손 스텐실은 이상할 만큼 가까이 느껴진다.

정교한 초상화도 아니다.

눈도 없다. 코도 없다. 입도 없다.

그런데 오히려 한 사람의 존재가 더 직접적으로 다가온다.

그 손은 누군가가 실제로 그 벽 앞에 서 있었다는 사실과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그린 것이 아니다. 자기 몸을 직접 벽에 댔다.

그 점에서 손 스텐실은 다른 그림과 조금 다르다.


라스코의 동물을 그릴 때 인간의 시선은 바깥을 향했다.

말을 바라보고, 사슴을 바라보고, 거대한 오록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손을 벽에 대는 순간 조금 다른 일이 일어난다. 인간이 그림 안으로 들어온다.

대상을 그리는 대신 자기 존재의 흔적을 남긴다.


나는 이것이 선사시대 미술에서 흥미로운 변화처럼 느껴진다.

인간이 이때 처음 자아를 가졌다는 뜻은 아니다.

자신의 존재를 이때 처음 깨달았다는 뜻도 아니다.

다만 그림 속에 인간 자신의 몸이 직접 흔적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우리는 지금도 비슷한 일을 한다.

사진을 찍는다. 이름을 적는다. 날짜를 남긴다. 글을 쓴다.

돌아보면 인간은 끊임없이 흔적을 남긴다.

어쩌면 언젠가 사라질 것을 알기 때문에 무언가를 남기는지도 모른다.


나는 수만 년 전의 손과 지금 내 손을 번갈아 바라본다.

모양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다섯 손가락, 손바닥, 손목.

시간은 너무 멀리 흘렀지만 손 하나가 그 거리를 단숨에 줄인다.


그 사람도 나처럼 손을 펼쳤을 것이다.

차가운 벽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손을 떼었을 것이다.

사람은 사라졌다. 하지만 손의 흔적은 남았다.


그래서 나는 그 오래된 손 앞에서 한 문장만 떠올린다. 나도 여기 있었다.


1. Fernández-Navarro, Verónica, Olga Spaey, and Diego Garate. “Reevaluating Hand Stencil Phenomena in Cave Art: A Step Forward towards the Characterization of Symbolic Patterns during the Upper Palaeolithic in Europe.” Cambridge Archaeological Journal 36, no. 3 (2026): 272–292. https://doi.org/10.1017/S0959774325100322.

유럽 후기 구석기시대 손 스텐실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최신 연구다. 연구진은 손 스텐실을 사람의 실제 신체가 벽에 닿아 만들어진 생물학적 흔적이면서 동시에 의도적으로 제작된 상징 이미지로 본다. 이 장에서 손 스텐실을 단순한 장식이나 사람의 그림이 아니라, 한 인간의 몸이 직접 남긴 흔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뒷받침한다. 또한 엘 카스티요 동굴에서 붉은 손 스텐실 78점을 집계해, 스페인 사례를 설명하는 데도 중요한 근거가 된다.

2. Fernández-Navarro, Verónica, Daniel Fidalgo Casares, David García Martínez, and Diego Garate. “Decoding Palaeolithic Hand Stencils: Age and Sex Identification Through Geometric Morphometrics.” Journal of Archaeological Method and Theory 32 (2025).
구석기 손 스텐실의 형태를 분석해 손을 남긴 사람들의 연령과 성별을 추정한 연구다. 벽 위의 수많은 손을 하나의 집단 이미지가 아니라 서로 다른 실제 개인들의 흔적으로 바라보는 이 장의 시각과 이어진다.

3. UNESCO World Heritage Centre. “Cueva de las Manos, Río Pinturas.”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 손의 동굴의 손 스텐실, 구아나코, 사냥 장면과 제작 전통을 정리한 공식 자료다. 이 장에서 손의 동굴의 장소, 연대, 기법과 문화적 배경을 설명하는 사실적 토대로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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