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칫과 내달음

3장.사이-토끼

by바다별다락방


여전히 모니터 속 화살표의 윤곽이 픽셀을 밀어내며 퍼졌다. 마우스를 움직여보아도 모니터에는 흰색 화면만이 그대로 있었다. 단어들이 컴퓨터에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의 머릿속에서도 그것들이 똑같이 떨어져 내렸다.


기준.

과함.

예민함.

미안함.

그래도 괜찮음.

그래도 불안함.


하나를 붙잡으려 하면 그것은 통통 튀어 달아났다. 단어들은 이제 직선으로 흐르지 않았다. 사방으로 튀었다. 그는 그것들을 정렬하려 했다. 줄을 세우고, 원인을 찾고, 결론을 내려보려 했다. 그러나 문장들은 그의 손을 빠져나갔다. 그 순간, 단어들이 형상을 갖기 시작했다.


작은 토끼 한 마리가 모니터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하얀 몸은 가볍고, 귀는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눈은 지나치게 또렷했다. 토끼는 그의 생각 위를 뛰어다녔다. 한 단어 위에 올라섰다가, 다른 문장으로 순식간에 넘어갔다.


그는 손을 뻗어 붙잡으려 했다. 마우스는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토끼는 멈칫했다. 아주 잠깐. 그 짧은 정적 속에서 그는 희망처럼 느껴지는 무언가를 보았다. 이제 붙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토끼는 더 빠르게 뛰어올랐다. 그의 생각을 가로질러, 오래된 기억 위를 밟고, 미래의 걱정 쪽으로 순식간에 달려갔다.


그는 불안했다. 왜 가만히 두지 못하는지. 왜 이렇게 빠른지. 왜 이렇게 예민한지. 그러나 동시에, 그 속도가 자신을 지켜왔던 순간들도 떠올랐다. 누군가의 표정을 먼저 읽어내던 순간, 위험을 감지하고 한 발 물러섰던 순간, 침묵을 선택했던 순간들.


토끼는 그에게 있어 불안의 상징이었지만, 생존의 속도이기도 했다. 그는 언제나 토끼를 줄세우려했다. 느려지라고, 차분해지라고, 한 자리에 머물라고. 그러나 토끼는 본래 뛰는 존재. 귀를 세우고, 사방을 살피고,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몸을 먼저 움직이는 존재였다. 그 사람은 토끼의 뜀박질을 체념한 듯 바라보았다. 숨을 고르며 그 속도를 따라가 보았다. 빠름을 멈추는 대신, 빠름을 관찰했다.


눈을 감자, 단어들이 더 빠르게 회전했다. 해태의 질문이 번쩍였고, 도깨비의 웃음이 스쳤으며, 앵무의 반복이 겹쳤다. 불가사리의 둔중한 그림자도 그 뒤에서 느리게 숨을 쉬고 있었다. 모든 것이 동시에 움직였다. 토끼는 그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달렸다. 멈칫. 내딛음. 멈칫. 내딛음. 그 리듬이 반복되었다. 불안함은 영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 불안이 자신을 망가뜨리기 위해 달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도망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 있기 위해 뛰고 있었다.


그는 아주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토끼는 멀찍이 서서 귀를 세운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전히 예민했고, 여전히 빠를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무작정 도망치지는 않았다. 멈칫도, 내딛음도 모두 그의 리듬이었다. 빠름과 고요가 같은 자리에서 숨 쉬고 있었다. 토끼는 가만히 귀를 세운 채 서 있었다. 그는 그 모습을 오래 바라보았다. 뛰어다니던 속도가 한곳에 모여 서 있는 느낌이었다. 그는 더 이상 토끼를 잡으려 하지 않았다. 토끼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았다. 그 순간, 익숙한 소리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이 온라인카지노북은 소설도 에세이도 아닌, 마음의 창에서 꺼내온 감각을 적어 내려간 기록입니다.

‘그 사람’을 따라가며 자신의 감각이 머무는 지점을 천천히 느껴보셔도 좋겠습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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