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기 없이 살아있는 꽃, 압화

오늘의 식물

by조이 영


압화를 핀셋으로 조심스럽게 들었다. 물기 없이 눌린 마른 꽃은 중력을 잊은 듯 가벼웠다. 화려하게 단장한 마가렛 꽃송이는 얇게 공중을 나는 듯 종이 위에 내렸다. 후덥지근한 날씨이지만 선풍기조차 켤 수 없다. 날아갈 듯 가벼운 꽃을 다루는 시간에는 한 치의 바람도 허락되지 않는다. 작은 바람에도 날아가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쓸 만큼의 압화를 조심스럽게 나눠 흰 종이 위에 올린다.


압화(press flower)는 식물의 꽃, 열매, 잎, 줄기 등의 수분을 물리적인 방법이나 약품 처리로 제거하여 평면적으로 건조한 것이다. 꽃에 있는 수분을 눌러 없애 썩지 않도록 하는 것이 특징이다. 빨리 시드는 생화를 오래 보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다.


생화로 압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막 피어나 생기 있을 때 잘라서 눌러 주어야 한다. 마음껏 즐기다 시들 때쯤 누름 꽃을 만들면 좋으련만 그렇게 하면 작업 시 꽃잎이 부서지거나 떨어져 나가기 쉽다. 가장 싱싱하고 아름다울 때 꽃을 눌러야 하기 때문에 압화를 만들면 꽃이 아프다고 한다고 강사들끼리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이다.


습기 많고 더운 여름의 원예 수업 소재로 압화만큼 좋은 것은 없다. 빨리 상하는 생화를 준비할 수 없고 화분 심기도 어려운 시기에, 수분 없는 압화는 표현력 향상과 완성도를 높이는 원예작품으로 탄생한다. 특히 장마철에는 식물 키우기가 힘들다. 더운 기온은 화병이나 화분에 있는 물의 온도를 올리고, 습기는 식물의 증산작용을 막아 물이 고이게 한다. 고인 물은 썩게 되어 있다. 이는 생화 줄기나 식물뿌리가 쉽게 상하여 식물이 죽는 원인이기도 하다.


압화의 역사는 빅토리아 여왕 시대로 올라간다. 주로 어두운 방에서 수를 놓는 궁중 여인들에게, 야외로 나와 산바카라하며 야생화를 채집하여 장식하도록 유도하게 되면서 발전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옛 어른들도 단풍잎, 은행잎, 구절초를 눌러 말린 후 창호지에 발라 문을 장식하였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압화 역사도 짧지 않다.


꽃을 아프게 하며 압화를 만드는 과정은 원예활동의 창조적 파괴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창조적 파괴는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가 제시한 개념으로 새로운 혁신이나 기술이 기존의 시장 구조, 산업, 제품, 서비스를 파괴하고 대체하는 과정을 말한다. 누름꽃으로 탄생하게 되면 한정된 시간만 허락되는 생화의 생육환경에서 벗어나 오랜 시간,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다. 재탄생된 압화 작품으로 꽃을 오래 보관할 수 있고 우리의 생활이 빛나게 된다.


더위가 시작되는 단오쯤에 만드는 단오 압화 부채는 여름 준비를 위해 꼭 준비하는 수업이다. 대나무 부챗살이 짱짱한 한지 부채에 압화를 붙인 후 꽃 얇은한지나 코팅지를 덮어 준다. 공기와 맞닿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공기가 차단된 압화는 몇 년이 지나도 색이 변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투명 부채가 인기이다. 부채에 압화를 붙이고 시트지를 붙이거나 투명 마감재를 발라준다. 임금에게 받는 단오부채는 아니지만 여름을 준비하는 부채로 충분하다.

아이들과 하는 수업에는 압화 필통 만들기를 한다. 플라스틱이나 나무로 만들어진 필통에 압화를 장식한 후 공기를 차단해 준다. 같은 모양 같은 양의 압화를 이용하지만 모두 다른 모양의 필통이 탄생한다. 꽃과 그린 소재의 식물 잎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표현하였기 때문이다. 완성된 모양을 보며 한 사람도 같은 사람이 없다는 것을 실감한다. 이 또한 압화의 힘일 것이다.


압화를 만들기 위해서 끼워 둘 누름지가 필요하다. 신문지가 될 수 있고 바카라이 될 수도 있다. 예전에 사용하던 두꺼운 전화번호부바카라이 압화 만들기에 최적이었다. 두꺼운 바카라 페이지를 열어 휴지 한 장을 깔고 그 위에 꽃을 올리고 또 한 장 덮어준다. 꽃의 물을 흡수하는 것이다. 신문지를 이용할 경우 신문지 위에 휴지를 깔고 꽃을 올리고 다시 휴지로 덮어 전체를 무거운 것으로 눌러 준다. 꽃 양면에 휴지를 물기가 마를 때까지 여러 번 갈아 주는 것도 물 흡수를 빠르게 한다. 양이 작을 때는 바카라 사이에 그냥 끼워두어도 된다.


풀이 많이 자라는 여름, 산바카라길에 키가 크게 자란 개망초를 본다. 개망초도 누름 꽃을 만들 수 있다. 수분이 많지 않은 얇은 식물 잎은 대부분 압화가 가능하다. 오늘 만난 식물의 시간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허락된 범위 안에서 창조적 파괴를 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 시간 그 장소의 나를 기억하기 위해 꽃과 노력하는 것이다. 빠삭하게 마른 압화를 만나 습하고 더운 날이 뽀송한 날로 변화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