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식물
새로 시작하는 원예 수업 첫 시간은 공기 정화식물 심기를 한다. 실내식물 키우는데 필요한 기본 지식을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기 정화식물은 계절 영향을 받지 않고 판매하여 1년 내내 꽃 시장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공기정화 기능이 있는 관엽식물은 다양하다. 관음죽, 드라세나, 고무나무, 산세베리아, 선인장, 스파티필름 등 50여 종류가 있다.
그중 주로 선택하는 식물은 스파티필름이다. 구하기 쉽고 가격도 저렴하여 국민 식물이라며 추천한다. 공기 정화 기능이 뛰어나 우리 집 거실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 식물을 선택한 또 다른 이유는 열대지역이 원산지라 흙이 습해도 뿌리가 쉽게 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이 필요한 시기는 잎의 모양새로 알 수 있다. 물이 부족하면 잎이 밑으로 처지다가도 물을 주면 다시 잎이 바로 선다. 회복탄력성이 뛰어나다. 이런 모습을 보고 어떤 이는 ‘좀비식물’이라고 별명을 붙였다.
노인대학 첫 수업 날이었다. 그날도 공기정화식물로 스파티필름을 준비하였다. 수업 내용은 화분 분갈이로 꽃 시장에서 판매되는 플라스틱 화분에서 조금 더 큰 토기 화분으로 옮겨 심는 거다. 식물을 소개하며 키우기 까다롭지 않고 오래 사는 ‘장수식물’이라 설명했다. 젊은 사람에게는 좀비 식물로 어르신께는 장수식물로 소개하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고 싶은 마음에 어르신은 부엽토를 맨손으로 뒤적거렸다. 흙냄새가 났다. 모종삽이 옆에 있었지만 눈길도 주지 않았다. 주름으로 덮인 마른 손과 얼굴에서 부드럽게 생기가 돌았다.
옮겨 심는 방법과 물 주기를 설명하는데 어르신이 말씀하셨다.
“선생님, 이 식물이 스타킹필림이라 했나?
”네, 스파티필름이요, 어머님.”
“응, 그래 스타킹필림. 야가 오늘 우리 집으로 시집오네? 선생님이 데려왔응께 친정엄마 되고. 나는 시에미되것네. 잘 키워 볼라네.”
물 주는 방법을 애써 설명하는 모습이 딸 시집보내는 친정엄마 같았을까. 스파티필름 화분을 자식처럼 생각하였다. 스스로를 ‘시에미’라고 표현하며 애지중지 식물을 키울 어르신 모습이 그려졌다. 나는 그날 그렇게 스파티필름의 친정엄마가 되었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그동안 보낸 수많은 식물이 떠올랐다.
식물을 시집보내듯 사람들에게 전하는 친정엄마가 아니라 시어머니가 된 적도 있다. 동남아 여행 중 후덥지근한 길을 걷다가 푸른 잎 건강한 모습의 스파티필름을 보았을 때였다. 사파이어 보석처럼 진한 청록색에 크게 자란 잎은 손을 펼쳐도 가려질 만큼 넓었다. 스파티필름뿐 아니었다. 원산지와 유사한 기온에 세상 겁나는 것 없이 자라 우산 대신 비를 막아 줄 것 같았던 아이비도 있었다. 겨울을 모르고 살아온 나무들의 호기로운 모습이 놀라웠다.
수업을 위해 꽃 시장에서 쉽게 사서 쓰는 스파티필름의 작고 날렵한 모습에 익숙했다. 다른 식물인가 하고 다가갔다 한눈에 같은 식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잎 표면이 어찌나 단단한지. ‘너희 고향에서는 이런 멋진 모습이었구나. 이렇게 크고 강하게 자랄 수 있는데.’ 그것도 모르고 저렴하고 쉽게 구할 수 있다고 수업 때마다 마음대로 쓰고 만졌다. 스파티필름의 자유로운 모습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전에 본 TV 프로그램 ‘고부 열전’에 나오는 시어머니가 된 기분이었다. 외국인 며느리 고향을 방문해 당황스러워하며 그제야 며느리를 이해하는 한국인 시어머니처럼.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에서 마음 놓고 자라는 관엽식물의 모습은 자유롭다. 식물을 잘 키우기 위해서 원산지를 확인하고 생육 조건을 알아야 하는 이유이다. 자라던 곳의 환경을 알면 식물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적응해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사계절이 있어 온도 변화가 많은 우리나라에서 식물의 잎은 한없이 크게 성장하지 않는다. 우리의 빛과 온도를 알아차리고 거기에 견딜 만큼의 크기로 살아간다. 우리가 주변에서 보는 관엽식물들은 스스로 크기를 줄이며 적응한 모습이다. 우리도 식물처럼 환경에 맞추어 잘 변화한 모습일까. 자신의 최고의 모습을 만들기 위해 과하게 부딪히고 힘들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오늘도 우리 집 거실 창가로 들어오는 빛과 온도에 맞게 성장하여 산소를 내주는 스파티필름을 본다. 나는 스파티필름의 친정어머니이자 시어머니가 되었다. 외국인 며느리와 속마음을 알게 된 시어머니가 서로 화해하듯 스파티필름은 바라본다. 물뿌리개에서 흘러나오는 작은 물소리를 듣고 잎 위에 쌓인 먼지를 닦으며 쓰다듬는다. ‘오늘 나에게 오는 빛과 온도는 어디까지일까, 나는 제 크기로 잘 살고 있나’ 나의 반려 식물에게 물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