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실청은 탄산수를 기다립니다
누나와 아빠가 외출하고 조용했던 토요일, 초등학교 2학년 아들 준이가 '무채 떡볶이'를 해 달란다.
무를 채 썰어 프라이팬에 살살 볶았다. 어느 정도 익었을 때 물을 자작하게 붓고, 양념장을 풀었다. 옆에서 준이는 다양한 모양 틀로 떡볶이에 들어갈 어묵을 신나게 찍어내는 중이었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양념장 속으로 한 입 크기의 귀여운 쌀떡을 넣었다. 보기만 해도 몰랑몰랑한 식감이 느껴진다.
준아, 심부름 하나만 해 줄래?
응, 뭔데?
편의점 가서 탄산수 한 병만 사 와.
싫어.
아, 준이가 탄산수 사 오면 새콤달콤한 매실에이드 만들어 주려고 했지. 킥보드 타고 씽 다녀오면 돼.
사실 속으로는 '초등학교 2학년이면 이제 혼자 물건 하나쯤은 사 올 수 있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동안 매일 누나를 따라서만 다녀왔지, 혼자 간 적은 거의 없었다. 게다가 냉장고 안에는 드디어 잘 숙성된 소중한 '매실청'이 기다리고 있었다.
준이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엄마가 해주는 짜릿하고 맛있는 에이드는 먹고 싶은데, 막상 혼자 갈 용기가 나지 않는가 보다.
엄마, 계산은 어떻게 해?
엄마 카드를 줄게. 편의점 사장님께 드리면 돼.
거기는 우리가 직접 카드를 꽂아야 한단 말이야.
그러면 '전 잘 몰라요. 해 주세요.' 하면 되지.
떡볶이에 준이가 찍어낸 곰 모양, 별 모양, 달 모양의 귀여운 어묵들을 넣었다.
엄마, 탄산수가 얼만데?
한 2천 원 정도 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파를 쫑쫑 썰어 넣고 떡볶이 국물을 조금 더 조리기 위해 불을 낮췄다.
그 순간, 조용한 거실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준이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 내 어릴 적 모습과 준이가 겹쳐졌다. 뭔가를 하고 싶어도 상황이 머릿속에 완벽히 그려져야 할 수 있고, 용기도 안 나고 부끄럽기도 하고 겁까지 많았던 참 소극적이었던 어린 시절의 나. 아마 아들도 내 기질을 물려받았나 보다.
미안한 마음에 얼른 준이를 토닥여 주었다. 엄마 품에 안기니 준이의 눈물방울이 더 커졌다.
준아, 엄마도 예전에 그랬어. 음료수는 먹고 싶은데 겁이 나서 혼자 못 가겠더라고. 근데 그건 준이가 못나서 그런 게 아니야. 그냥 사람마다 다른 것뿐이야. 틀린 게 아니거든.
아이를 달래면서 나도 눈물이 찔끔 났다. 어린 시절의 내가 참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적극적이고 활발한 친구들과 비교하며 '나는 왜 그럴까' 자바카라하고, 내가 바보같이 느껴져 성격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었으니까.
준이도 비슷한 마음이었으면 어쩌지? 아이를 한번 더 꼭 안아주고, 다음에는 같이 편의점에 가서 준이가 직접 결제해 보기로 했다. 아이의 얼굴이 조금씩 풀어졌다. 옆구리를 콕! 찌르니 다시 웃음이 씩 번진다.
앗, 떡볶이!
다행히 바닥에 약간만 눌어붙었다. 우리는 그렇게 매운 떡볶이와 물에 탄 매실차를 마시며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