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길로 가도 괜찮아
지난 주 금요일, 초등학교 2학년 아들 준이가 점심을 먹고나서 옷을 주섬주섬 갈아입었다. 1시에 집 앞 놀이터에서 친구를 만나 킥보드를 타기로 약속했단다. 휴대폰도 없는 아이가 어떻게 약속을 했나 싶어 물으니, 전날 우연히 밖에서 만났다고 했다.
엄마, 친구랑 놀고 바로 피아노 학원으로 갈게.
준아, 잘 놀고 2시까지 학원 늦지 않게 가!
그런데 준이가 2시 40분쯤 집에 왔다. 아직 학원에 있어야 할 시간인데 왜 벌써 왔지?
준아, 혹시 노느라 학원 못 갔어?
갔다 왔지.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일찍 왔어?
친구가 놀이터에 안 나왔어.
어머, 그럼 혼자 놀다가 갔어?
아니, 그냥 학원 옆 마라탕집 앞에서 시간 될 때까지 기다렸어.
정해진 시간이 있으니 학원에도 바로 못 가고, 엄마에게는 놀고 바로 학원으로 간다고 했으니 집에도 못오고, 시계도 없어 어림잡아 '이 정도면 됐겠지' 싶은 시각에 학원에 들어갔단다. 예정된 2시보다 일찍 가서 수업도 그만큼 일찍 끝난 것이다.
에구, 못 놀아서 아쉬웠겠다. 친구가 약속을 잊을 수도 있어. 다음부터 그럴 땐 집으로 다시 와. 엄마가 놀아줄게.
아이 앞에서는 담담한 척 말했지만 무척 속상했다. 혼자라도 놀지, 집으로라도 오지, 아니면 피아노 학원으로 가서 선생님께 지금 들어가도 되냐고 한 번 여쭤보지, 왜 처량하게 밖에서 기다렸을까. 그것도 하필 음식점 앞에서.
푹푹 찌는 길 위에서 한 시간 가량을 가만히 서 있었을 고지식한 아들이 짠하기 그지 없었다.
남편의 생각이 궁금했다.
자기야, 오늘 속상한 일이 있었었는데, 준이가...
괜찮아. 남자애들 별로 신경 안 써. 그냥 가만히 두면 돼.
6학년 딸 나나는 어떻게 생각할까?
나나야, 오늘 준이에게 이런 일이 있었는데 네가 만약 엄마였으면 어떤 마음이 들었을 것 같아? 엄마는 마음이 좀 아팠거든.
엄마, 나 'F'인가 봐. 왜 이렇게 슬프지? 내가 놀아주고 싶다. (평소에도 좀 잘해주렴.)
나나는 마라탕집 앞에서 한참을 기다렸을 동생이 불쌍하다고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심지어 '그 친구가 누구냐'며 주먹을 꽉 쥔다.
평소 동생에게 무심해 보이던 사춘기 누나의 분노하는 모습에 '훗' 하고 웃음이 터졌다. 공감해 주는 딸 덕분에 묵직하게 짓누르던 속상함도 사르르 녹아내렸다. 우리는 준이를 좀 더 예뻐해 주자며 결의를 다졌다.
하, 이런 것도 나를 닮으면 어떡하니.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면 어찌할 줄 모르고 당황하던 내 모습이 아이에게 그대로 겹쳐보였다. 내 안의 불완전함을 아이에게서 발견할 때 엄마의 마음은 왜 이토록 시려오는 걸까.
이제부터 준이의 '융통성 기르기 훈련'에 본격적으로 돌입해야겠다.
1. 모든 건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다.
2. 그럴 땐 다른 길로 가도 된다.
3. 너의 뒤에는 언제나 안전기지인 '우리'가 있으니 걱정 말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