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추억을 만들며 살아가는가 보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기분 좋은 가을 주말, 오랜만에 놀이공원으로 가족 나들이를 나섰다. 동생네 가족도 그곳에서 같이 만나기로 해서 출발 전부터 마음이 설렜다. 이곳은 아들 준이는 두 살 때, 딸아이 나나는 여섯 살 때 와서 신나게 놀았던 것이 마지막 기억이었다.
마침내 130cm를 훌쩍 넘어 키 제한에서 드디어 해방된 준이가 눈을 반짝이며 롤러코스터를 타자고 한다.
오, 정말? 탈 수 있겠어?
응! 제발!
6학년 사춘기 딸 나나는 당연히 타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남편은 어지러워서 못 탄다며 슬그머니 뒤로 빠졌다.
얘들아, 사실 아빠는 연애할 때도 놀이기구 못 탔단다.
혼자 바이킹을 신나게 타고 내려오면, 아래에서 '저런 걸 어떻게 타냐'며 머쓱하게 웃던 구남친이자 현 남편. 그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나나가 자라는 동안에도 내가 항상 놀이기구를 같이 타주곤 했다. 준이는 매번 아빠랑 살살 움직이는 회전목마나 잔잔한 어린이용만 타왔지만, 보호자 동행하에 같이 탈 수 있었던 후룸라이드를 제일 재미있어했다. 그런데 이제는 180도 뒤집히는 롤러코스터에 도전한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준아, 이거 출발하면 중간에 못 내려. 정말 타는 거 맞지?
잘 탈 수 있다니까!
우리는 준이를 배려해서 중간에 자리를 잡았다. 나나랑 둘이만 탔다면 주저 없이 맨 앞이나 맨 뒤로 향했을 테지만.
안전바를 꽉 잡고 있는 준이의 손을 살짝 잡아보았더니, 역시 차디찬 손에 땀이 나고 있었다. 생애 첫 롤러코스터에 앉아 출발을 기다리는 그 마음은 어떤 느낌일까?
준아, 긴장돼?
응, 조금. 엄마, 우리 '소리 안 지르기' 미션 하자!
오케이, 엄마는 자신 있지.
드디어 철컥철컥 소리를 내며 롤러코스터가 오르막길로 출발했다.
준아, 저 위로 올라가서 갑자기 훅 떨어질 거야.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해!
아이가 행여 너무 무서워할까 봐 끊임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뒤에 앉은 나나는 '엄마 그만 좀 해!'라며 타박을 준다.
롤러코스터가 잠시 멈추는가 싶더니 슈웅 가파르게 내려가면서 속도가 제대로 붙었다. 미션은 무슨.
으악! 꺅! 우와!
사춘기 소녀, 40대 아줌마, 그리고 키 130cm 넘은 형아까지 모두 난리가 났다. 가슴속까지 뻥 뚫리는 해방감이 엄청났다. 준이가 흥분에 차서 말했다.
엄마, 배가 간질간질했어! 진짜 재미있었어.
다음 코스는 우리 가족이 다 같이 탈 수 있는 후룸라이드다. 이건 유일하게 남편도 좋아한다. 앞자리에는 아이들이, 뒷자리에는 우리 부부가 앉았다. 고요히 물길을 따라가다가 뚝 떨어지며 물보라가 확 튀는 그 맛!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다섯 살 조카의 눈높이에 맞는 놀이기구를 여러 개 타느라 애쓴 동생네와 드디어 만났다.
언니, 저 다람쥐통 기억나?
응, 알지. 내가 제일 싫어하는 거잖아.
정말? 나는 저걸 제일 좋아했는데!
순간 어린 시절 우리도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놀이공원에 왔던 기억이 아련히 떠올랐다. 엄마 아빠는 무서운 건 못 타시겠다며 아래에서 기다리고, 동생과 나는 놀이기구를 향해 뛰어다니며 탔던 기억. 재밌다고 서로 깔깔거리고, 엄마가 싸 온 김밥을 먹으며 행복을 느꼈던 그 시간들. 같은 공간에서 같은 기구를 탔지만 서로 정반대의 기억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
이모의 말을 놓치지 않은 나나가 이모에게 다람쥐통을 타러 가자고 했다. 이모랑 손잡고 신나게 뛰어가는 나나의 뒷모습을 보며 속으로 나지막이 속삭였다.
넌 이제 곧 지옥을 맛보게 될 거야.
준이는 아빠와 후룸라이드를 한 번 더 타러 갔고, 제부와 조카도 귀여운 꼬마 열차를 타러 갔다. 혼자 벤치에 남아 짐을 지키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족 단위로 온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오후 세 시가 좀 넘어가자 여기저기서 울고 떼쓰는 아이들이 속출했다. 엄마들의 목소리는 점차 날카로워졌고, 아빠들은 반쯤 넋이 나가 눈이 풀려 있었다.
그래, 우리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분명 그 시절 육아는 힘들었다. '육아봇' 남편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나 역시 우울증 약까지 처방받아먹었을 만큼 지쳤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왜 힘들었던 기억은 희미해지고, 행복했던 순간들만 선명하게 남아있는 걸까? 그 기억의 힘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결국 나나와 나는 롤러코스터를 한 번 더 탔다. 마지막은 바이킹이었고, 멋진 퍼레이드까지 본 뒤에 집으로 향했다.
반팔 반바지에 끝까지 안 춥다던 사춘기 나나는 결국 몸살에 걸렸고, 준이는 롤러코스터를 또 타고 싶다며 연신 노래를 부른다. 남편은 못 들은 척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나는 그날의 기억을 담아 이렇게 글을 쓴다.
소소한 하루하루가 켜켜이 쌓여가듯 아이들이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