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맞는 조명을 찾는 법
"지금의 나로 충분하다
Who I am now is enough"
사는 게 힘들고 버거울 때 마법의 주문 같은 말.
그러나 쉽게 이 말이 내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나는 늘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무더운 어느 날,
오래된 필사 노트를 뒤적이다가 오래전 밑줄 그어 두었던 문장을 다시 만났다.
지금의 나로 충분하다는 말은 다시 보아도 역시 낯설다.
그 문장을 보면서 나는 시간을 거슬러 마음 깊은 곳에 담아 두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삼 남매로 자란 나는 언니와 늘 비교 대상이었다.
다섯 살 터울의 언니는 태생적으로 참 많이 달랐다.
말 수가 적고 공부를 잘했던 언니는 모범생으로 부모님의 총애를 받았다.
자연히 친척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언니는 늘 부모님의 자랑이었다.
외할아버지는 언어폭력에 가까운 말로 어린 마음에 상처를 수도 없이 남기셨다.
"니네 언니는 이번에도 1등을 했다는 데 너는 몇 등이냐?"
"공부도 못 하는 게 말은 왜 저리 많아"
"말할 시간에 공부를 하면 언니 발꿈치라도 따라가지"
외할아버지의 언어폭력에 친척들은 웃음으로 맞장구를 치는 가운데 어린 가슴은 까맣게 멍들어갔다.
언니는 원하던 대학에 들어가 좋은 온라인 게임에 들어갔고 나는 원하던 대학에 떨어졌다.
그 이후 나는 모든 면에서 언니에게 뒤처진다는 마음을 오래도록 안고 살아왔던 것 같다.
온라인 게임을 구하려 하지 않고 남자도 없이 결혼을 하겠다고 했던 건 아마도 경쟁에서 또다시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늘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결혼도 늦었고 아이도 늦었고 모든 게 늦었다.
그러다 50이 넘어 벼랑 끝에서 자기 계발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나는 또 다른 비교의 레이스에 뛰어들었다.
나보다 훨씬 어린 사람들을 따라잡으려 뒤처진 시간을 한꺼번에 만회하려 애썼다.
'왜 나만 부족하지?'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더 배우고, 더 달리고, 더 애썼다.
그러던 올해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힘들어하면서까지 살아야 하나?'
더 이상 나를 몰아붙이고 싶지 않았다.
성공이라는 단어에도 조금은 지쳐 있었다.
그까짓 성공, 안 하면 어때서.
엄마가 살아 계실 때는
'성공해서 보란 듯이 멋진 모습을 보여드려야지'라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엄마가 떠나시고 나니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이렇게까지 애쓰고 있었던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나아가는 대신 역주행하듯 과거의 기록에서 행복해지기 위한 방법을 찾던 중
다시 꺼내든 필사 노트 속에서 지쳐있는 나를 깨워주는 말이 들려왔다.
"나 자신에게 너그러운 주인이 되자"
그동안 나 스스로 쥐어박아 쪼그라든 내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하녀 근성에 젖어 눈치 보는 데 일가견이 있던 터라 주변에서 야단치기 전에 나 스스로를 쥐 잡듯 하고 있었다.
세상에는 잘난 사람들이 천지입니다.
멋진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될 수는 없습니다.
바카라 속에서 잘난 저자가 말해주는 게 처음 읽을 땐 잘난 사람의 여유처럼 느껴져 공감이 가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달리 들렸다.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너 자신이 되어라.
다른 사람은 이미 존재한다"
말이 큰 소리로 쩌렁쩌렁 들리는 듯 했다.
하지만 나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뼛속에 각인된 비교하는 하녀 근성으로 자꾸 다른 사람의 속도와 비교하게 되니까 말이다.
이럴 땐 세뇌밖에 없다.
살다 보면 계획대로 되는 일은 없다고..
생각지도 않았던 막다른 골목에 접어들기도 한다고 내게 말을 해 준다.
이번에 새로 마음에 콕 박히는 문장이 있다.
"삶의 비결은 올바른 조명 아래 자신을 두는 것이다"_<지금의 나로 충분하다;이소은>
누구는 스포트라이트 조명 아래서 빛나는 사람이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을 비추는 스포트라이트 조명이 버거운 사람이 있다.
내게 어울리는 조명은 무엇일까?
자기 계발 세계에서 허덕대던 시절 남들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무대 중앙으로 나가려고 해 보았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건 내게 어울리는 조명이 아니었다.
거기서는 오히려 더 위축되고 마음이 불편해졌다.
나는 주변에 있는 듯 없는 듯 그런 게 편한 사람이다.
그렇다고 해서 루저가 되는 건 아니다.
각자 자기에게 맞는 자리가 있을 뿐이다.
생각을 바꾸니 나의 부족함 대신 내가 갖고 있는 장점에 마음이 넉넉해진다.
이제부턴 나 자신에게 조금은 너그러운 주인이 되어보려 한다.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조명아래서 조급함보다 편안함을, 비교보다 나다움을 선택하면서.
지금의 나로 충분합니다.
아직은 이 말이 입에 잘 붙지 않는다.
그래도 오늘도 한 번 더 나 자신에게 말해 본다.
오늘도 오래된 독서 기록 하나가 나를 자유롭게 만들었다.
@지금의 나로 충분하다_이소은_수오서재
@어제의 기록, 오늘의 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