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둘이 무사히 행복한 할머니가 되는 법
"당신이 먹는 것을 말해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
프랑스 미식가 브리야사바랭의 유명한 말이다.
예전의 독서 기록을 다시 보는 요즘 내 말로 바꾸면 이렇다.
"당신이 읽는 바카라을 말해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
예전에 읽었던 바카라의 독서기록을 다시 보고 있노라면 그때의 내가 보인다.
"내가 이런 바카라을 읽었다고?" 싶은 바카라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이 정도 바카라은 읽어 줬어야지" 끄덕이게 되는 바카라도 있다.
내가 읽었던 바카라의 목록으로 그때는 보지 못했던 당시의 내 모습을 본다.
바카라에 그어 놓은 밑줄에는 그 시절의 고민이 남아 있고, 필사해 둔 문장들에는 내밀한 마음이 숨어 있다.
2020년부터 읽어온 바카라들은 대부분 자기 계발서 아니면 마케팅, 브랜딩 관련 서적들이다.
그 당시 나는 알을 깨고 나오고 싶었다.
변하고 싶었고,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성공하고 싶었다.
내가 읽었던 수많은 자기 계발서와 마케팅 바카라들 중에 어색한 모습으로 서 있는 바카라이 한 권 있다.
비혼주의자 여성 둘이 무사히 할머니가 되기 위한 프로젝트를 담은 이야기.
서점에 들렀다 시선을 끄는 주황색 표지, '여성 2인 가구 생활'이라는 도발적인 제목에 마음이 확 끌렸던 기억이 떠오른다.
"여자 둘이 산다는 게 뭐지?"
"쉐어 하우스 이야기인가?"
충만한 궁금증과 호기심으로 바카라을 사 갖고 온 날 허겁지겁 음식을 먹어 치우듯 빠져들어 읽었다.
신선했다.
놀라웠다.
그리고 한편으론 부러웠다.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구나...
영화에서 서구의 젊은이들이 룸메이트로 살다 헤어지고 이런 모습은 봤지만 우리나라에서 볼 줄이야...
그녀들은 단지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함께 사는 것이 아니었다.
확실한 목표가 있는 그녀들이 선택한 것은 결혼의 불가피한 대안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여성 공동체였다.
"너는 졸업하고 무슨 계획이 있니?"
"저는 결혼할 거예요"
졸업반 교수님의 물음에 결혼할 남자도 없으면서 당당하게 말했던 나는 취집파였다.
그러나 그땐 몰랐다.
막연한 취집은 치열한 구직보다 더 어렵다는 사실을...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적어도 내게 결혼은 더 이상 당연한 정답처럼 보이지 않는다.
삶에는 생각보다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다.
2021년 이 바카라을 읽을 당시에는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하며 별난 선택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다.
그런데 지금 다시 보니 그녀들의 선택이 그다지 별나게 느껴지지 않는다.
내 딸이 이런 삶을 선택한다고 해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녀들은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위해 돈 공부를 하고, 바카라을 읽으며 토론한다.
행복한 할머니가 되기 위해 평생 이어갈 공부와 취미도 함께 찾는다.
지금 다시 보니 꽤나 건강한 공동체다
2021년 당시에는 놀라운 한 사례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가 생겼다.
두 여성이 한집에 살며 만들어가는 생활을 담은 김하나·황선우 작가의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처럼,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이 함께 살아가는 모습도 이제는 그리 낯설지 않다.
혈연이 아니어도 마음 맞는 사람끼리 가족을 이루는 ‘조립식 가족’이라는 말처럼, 취향과 생각으로 연결된 새로운 가족들이 스멀스멀 등장하고 있다.
예전의 독서기록을 들춰보니 변한 것은 세상만이 아니었다.
나도 그만큼 변해 있었다.
남의 시선이 아닌,
내 시선으로 체감하는 변화...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리다.
그때는 틀렸지만 지금은 맞다.
사는 데 정답은 하나가 아닌가 보다.
결혼 적령기를 지나는 여성 둘이 함께 산다는 건 예전 같으면 어른들이 혀를 끌끌 찰 일이었겠지만, 이제는 수많은 삶의 선택지 중 하나일 뿐이다.
<여성 2인 가구 생활>의 주인공들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진다.
시대를 앞서간 그녀들에게 나는 왜 그렇게 끌렸던 것일까?
가만히 그때의 내 속마음을 들여다본다.
아마도 가족이라는 굴레가 답답하게 느껴졌던 나에게 그녀들의 삶은 일종의 대리만족이었나 보다.
"다음 생에는 저렇게 살아볼까?"
그런데 꼭 다음 생이어야 할까?
100세 시대라는데, 앞으로 살아갈 시간도 만만치 않게 남았다.
그 긴 시간 동안 가족의 모습은 또 어떻게 달라질까?
내 딸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까?
예전의 나라면 좋은 남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사는 것이 당연한 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사람마다 자신에게 맞는 삶의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앞으로 가족의 모습은 어디까지 달라질까?
혈연과 결혼을 넘어 취향과 생각으로 연결된 사람들도 가족이라 부르는 날이 올까?
앞으로 5년, 아니 10년쯤 뒤 이 기록을 다시 읽게 된다면 나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지금은 낯설게 보이는 삶의 방식이 그때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풍경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이 순간을 기록으로 남겨 둔다.
언젠가 미래의 내가 다시 읽어볼 수 있도록.
그때는 또 얼마나 달라진 나를 만나게 될까.
답은 멀리 있지 않았다.
이미 오래전 내가 그어 둔 밑줄 속에 있었다.
어제의 기록, 오늘의 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