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환 <독서의 기술>이 소환한 첫사랑
첫사랑에 대한 기억은 생각지도 않은 순간에 출몰한다.
바카라을 읽던 중에 느닷없이 나타난 기억...
그 기억을 불러낸 자는 고명환 작가디.
<독서의 기술>을 전하는 바카라에서 고명환 작가가 말했다.
"친구나 애인은 바카라이 있는 곳에서 만나라.
바카라이 있는 곳을 약속 장소로 정하고 20분 일찍 도착해 바카라을 읽어라"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었다.
고명환 작가가 말한 바로 그 사람이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처음 사귄 남자 친구와 만나는 장소는 늘 종로서적이었다.
그는 늘 약속 시간을 잘 지켰고,
나보다 먼저 와서 바카라을 읽고 있었으며,
늘 자신에게 바카라을 통해 질문을 던지던 사람이었다.
그땐 생각이 많은 그가 지루하고 따분하기만 했다.
고명환 작가가 말하는 보석 같은 사람이었는데 그땐 그걸 알아보는 눈이 내게 없었다.
치기 어린 갓 스물이 된 내게 늘 서점에서 만나는 데이트는 따분하기만 했다.
고명환 작가는 "이렇게 바카라을 매개로 함께 성장할 때 가장 이상적인 인간관계가 유지된다"라고 했다.
우리가 만나는 동안 그는 늘 앞으로 걸어갔고, 나는 그 속도를 이해하지 못했을뿐더러 다른 방향만 곁눈질했다.
그래서 우리는 결국 졸업반 때 헤어졌다.
이상적으로 함께 성장할 수가 없었던 탓이다.
아이를 키우며 한참 힘들던 시절 그 남자친구의 근황을 네이버를 통해 알게 되었다.
네이버를 통해 알 수 있을 정도라면 짐작이 갈 터.
그는 멋진 사람으로 성장해 있었다.
영화 <만약에 우리>를 보면서 그를 생각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이라는 질문을 던진다.
나도 역시 질문을 던진다.
그때 우리가 헤어지지 않고 계속 만났더라면 행복했을까?
답은...
아니라는 것...
그땐 내가 함께 성장할 만한 깜냥이 되지 못했다.
우리들의 성장 속도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그의 성공을 멀리서나마 축하한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의 속도로 성장했고,
나는 이제야 내가 가야 할 방향과 속도를 찾기 시작했다.
같은 길을 걷지 못했다고 그 만남이 의미 없었던 건 아니다.
다만 서로의 시간이 달랐을 뿐이다.
마음속에 그런 관계 하나쯤 남겨 놓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속도가 있는 법이니까.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이, 오늘의 나에게 답을 알려주었다.
@어제의 기록, 오늘의 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