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역전, 마흔의 잔인한 연애
원래 나는 이성과의 만남에 크게 연연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마흔 즈음이 되자 내 안의 온도도 변하기 시작했다.
잔잔하던 마음에 불안이 찾아왔다. '이렇게 평생 혼자 살다 죽는 게 맞을까?' 하는 의문이 들면서, 누군가를 만나보고 싶다는 마음이 조금씩 자라났다.
조금 더 이른 나이에 이런 마음이 생겼다면 좋았을 텐데, 지금의 나이에는 어딘가 불가능에 가깝게만 느껴진다.
작년에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우연히 연이 닿은 사람이 있었다. 내가 20대 초반이었을 때 나를 좋아했던 사람인데, 내가 궁금하다며 지인을 통해 다시 연락을 해온 것이다.
그렇게 십수 년 만에 마주한 그 사람.
길에서 우연히 스쳤다면 전혀 알아보지 못했을 만큼 변해 있었다. 예전에는 삐쩍 말랐었는데 지금은 배가 볼록 나오고 살이 쪄 있었다. 살이 오르면서 날카로웠던 턱선은 사라졌고, 매서웠던 눈매에는 두꺼운 쌍꺼풀이 생겨 인상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눈가에 잡힌 주름과 꺼진 눈밑을 보니 그의 나이가 실감 났다. 그나마 목소리를 들으니 '아, 이 사람이었지' 하고 옛 기억이 머리를 스친다. 술이 들어가기 전까지 내 눈조차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그를 보며, 나에게 마음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그는 종종 나에게 선물을 보내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둘이서 볼 생각은 하지 않고, 자꾸만 제삼자가 동석하는 자리에 나를 불러냈다. 나에게 관심이 있다고 해도 이상하고, 관심이 없다고 해도 참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었다.
그에게 오해 아닌 오해가 쌓여가면서도 선뜻 돌아설 수가 없었다. 내 나이에 새로 누군가를 만날 기회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너무 거절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나 싶어 후회가 밀려오던 5월의 첫날, 큰 용기를 내어 그에게 전화를 걸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나이에 전화 한 통 거는 것마저 버거웠지만 그가 나에게 다시 연락해 오기까지 겪었을 용기와 무안함을 헤아려 보았다. 이번에는 내가 한 발자국 다가가 보자면서 소심한 나를 흔들어 깨웠다.
그동안 그에게 몇 번 전화가 걸려온 적은 있었지만, 내가 먼저 전화를 건 것은 처음이었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걱정이 앞섰다. 속마음을 숨긴 채 안부 전화인 양 구는 내 모습이 찔려서였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통화 연결음을 누르자마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전화를 받았다. 그는 핸드폰을 하고 있었나 보다.
"반석 오빠, 잘 계시죠? 물어볼 게 좀 있어서요."
전화하기 전의 엄청난 걱정이 무색할 만큼, 막상 대화를 시작하니 할 이야기가 굉장히 많았다. 4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어색함 없이, 말이 끊기지 않고 통화가 이어졌다. 너무 통화가 길어지는 것 같아 내가 먼저 전화를 끊자고 했다.
"조만간 한번 봐요."
''그래. ''
그리고 며칠 뒤, 만날 약속을 잡기 위해 다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하필 그는 통화 중이었다. 콜백은 오지 않았다.
다시 연락이 오지 않는다는 건, 그에게 나를 향한 마음이 없다는 뜻 같았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다시 전화해서 만나자고 해볼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마음에 이대로 마음을 접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