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증명사진을 보내온 소개팅남

내 어플 사진의 면죄부

by이뻔뻔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습관적으로 휴대전화 화면부터 확인했다. 카지노톡을 열어보니 광고 문자 몇 통과 읽지 않고 있는 단체 채팅방 메세지가 전부였다. 카지노톡 화면을 닫으려는 순간, 정미에게서 카지노톡 메시지가 도착했다. 용건이 없으면 먼저 연락을 하는 법이 없는 정미답게 날아온 카지노톡 메시지는 간결했다. 정미가 보낸 텍스트 아래로 네모난 사진 한 장이 따라붙었다.


"그분이 마땅한 사진이 없나 봐. 평소에 사진을 워낙 안 찍으셔서... 15년 전에 찍은 증명사진밖에 없다고 하네."



15년 전 사진이라니... 강산이 한 번 바뀌고도 남았을 시간이다. 그 순간, 전날 내가 보낸 보정 어플 사진에 대한 죄바카라감이 조금은 사라졌다. 그 역시 15년 전의 모습을 사진으로 내세웠으니, 나만 실제보다 괜찮아 보이는 사진을 보낸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증명 사진을 터치해 화면 가득 키웠다. 나의 시선은 그의 증명사진으로 향했다.




증명사진 속의 그는 빳빳한 정장을 입고 있었다. 그의 나이가 50이니까 그 사진은 아마도 그의 30대 시절 사진이다. 넥타이의 색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통 매지 않는, 나이 지긋한 아저씨들이나 선호할 법한 어둡고 탁한 빨간색이었다. 머리는 무스를 가득 발라 한 올의 흐트러짐도 없이 깔끔하게 올백으로 넘겨 이마를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두 눈은 카메라 렌즈의 정중앙을 아주 똑바로, 정직하게 응시했다. 입가에는 사진사가 웃으세요라고 요청했을 때 지었을 법한, 부자연스러운 미소가 번져있었다. 과한 보정은 아닌 것 같았다. 증명사진 보정이야 내가 10대였던 때에도 있었으니, 그의 30대 시절 증명사진도 어느 정도의 보정은 했을 것이다. 동네 어디에나 흔하게 있는 사진관에 들어가 찍은 듯한 증명사진이었다.


하이닉스에 다닌다고 해서 모범생같고 유순한 인상을 예상했었다. 하지만 사진 속의 그는 묘하게 날티가 났다. 그 시절의 그는 객관적으로 꽤 잘생긴 편에 속했다. 머리를 올백으로 넘긴 이마의 선도 번듯했고, 이목구비 역시 또렷하고 선이 굵었다. 예상과 달랐던 그의 사진을 보니 하이닉스에서 무슨 일을 하는 걸까 궁금했졌다.


화면을 조금 더 확대해 증명사진 속 그와 정면으로 눈을 마주했다.


그의 눈빛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설명하기 힘든 미묘한 거부감이 툭 하고 고개를 들었다. 잘생긴 외모를 뚫고 나오는 낯선 기류. 세한 눈빛에서 거부감이 느껴진 것 같다.


그의 증명사진을 처음 마주한 순간, 내게 가장 강하게 남은 것은 눈빛에서 느껴지는 '세함'이였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으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실제로 보지 않고, 외모로 보고 사람을 지레짐작하는 건 선입견이지.’


지독한 외로움에서 비롯된 우울감이 밑바닥을 찍은 후 절묘한 타이밍에 찾아와 준 소개팅. 사소한 직감 따위로 앞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정미에게 다시 한번 고맙다는 답장을 보냈다.


"고마워, 정미야. 신경 써줘서. "


정미에게 답장이 왔다.


"그 남자분도 솔로로 지낸 지 오래돼서 엄청 외로워한다고 해. 잘해봐. "


친구의 응원에 다시 한번 마음이 따뜻해졌다. 나는 머릿속으로 얼마 안되는 그에 대한 정보들을 하나씩 나열해 보았다.




이름 : 모름

나이 : 1977년생 (나보다 열 살 연상)

온라인 게임 : 하이닉스 재직 중

키가 큼, 살이 쪘다고 함 (외모 괜찮지만, 눈빛 어딘가 세함)

연애 경력 : 쉰 지 아주 오래됨

특이사항 : 자전거 동호회 멤버


이렇게 조각난 정보들이 전부였다. 정미조차 직접적으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기에 소개팅남에 대한 정보는 철저히 한계가 있었다. 나는 상대의 이름도, 연락처도 알지 못했다.


결국 그날 오후, 밀려드는 호기심에 카지노톡 설정 창으로 들어가 친구 추천 허용 버튼을 슬그머니 켰다.


"최민수"


낯선 이름의 프로필 하나가 새로 떠올랐다. 아무런 힌트도 없었지만, 직감으로 이 사람이 나의 소개팅남이라는 것을 알았다. 사진을 크게 확대하기도 전이었는데, 작은 프로필 사진으로도 그의 비대한 체격이 고스란히 뿜어져 나왔다. 조그만 액정 화면으로 마주한 그의 실제 체격은, 내가 상상했던 조금 통통함이나 체격이 좋음의 범주를 아득하게 뛰어넘어 있었다. 15년 전, 턱선이 날렵하고 제법 잘생겼던 남성의 실루엣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프로필 사진을 보고 나의 소개팅에 대한 설렘은 일시정지 되었다.


'살이…… 이 정도로 쪘다고?!'


'나...이사람 만날 수 있을까...?'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