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니 사진도 딸깍 아닌가?
우리는 왜 남의 일이
쉬워 보이면 억울해질까?
누군가 내가 몇 년 혹은 몇 십년에 걸쳐 배운 일을 버튼 하나로 해낸다면 어떤 기분일까.
버튼 하나로 끝난다는 말은 참 묘하다.
내가 누르면 혁신이고, 남이 누르면 날로 먹는 것 같다.
특히 요즘 AI가 만든 콘텐츠나 결과물에는 이 복잡한 감정을 아주 간단하게 표현하는 말이 따라붙는다.
“딸깍.”
남의 작업을 두 글자로 정리해버리니 참 효율적인 말이다.
130여 년 전에도 비슷한 말이 오갔다.
1888년에 코닥이 첫 카메라를 내놓으면서 건 문구가 "버튼만 누르세요, 나머지는 저희가 합니다"였다. 카메라를 통째로 회사에 보내면 사진을 뽑아서 돌려주던 시절이다. 그 전까지 사진은 화학약품 만지고 유리판 다루는 사람들의 일이었으니, 아무나 버튼만 누르면 된다는 말이 꽤 얄미웠을 거다.
1896년 미국 잡지에는 "버튼 누르는 사람(Button Presser)이 되지 말라"는 취지의 광고가 실렸다. 버튼만 누르고 나머지는 남에게 맡긴 채 그 결과를 제 것이라 하는 사람은 형편없다는 식이다. 반대편에서는 따지고 보면 사진을 찍는 건 햇빛이지 우리가 아니라며, 버튼 누르는 사람을 변호하는 글도 나왔다고 한다.
지금 현상과 꽤 비슷하지 않나.
물론 사진과 생성형 AI는 원리부터 다르다. 사진은 현실의 빛을 기록하고, AI는 학습한 데이터로 새 이미지를 만든다. 학습 데이터와 저작권 문제도 따로 있다. 둘이 같다는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새 도구가 나올 때마다 우리는 옛 기준으로 먼저 재보려 한다. 디지털 드로잉이 나왔을 때도, 컴퓨터로 음악을 만들고 샘플링을 시작했을 때도 그랬다. 어렵던 일이 쉬워지면, 그 쉬워진 부분이 새 방식을 얕보는 구실이 되곤 한다.
AI 덕에 할 수 있게 된 일이 꽤 많다. 코딩을 모르는 사람이 간단한 웹사이트를 만들고, 작곡을 안 배운 사람이 음악을 만들고,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이 원하는 이미지를 얻는다. 전문가 결과물과 비교하면 부족한 구석이 많지만, 모든 사람이 매번 전문가 수준을 필요로 하는 건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60점짜리로도 충분하다. 비용이나 기술 때문에 시도조차 못 하던 일을 해볼 수 있게 됐으니, 나는 이게 좋은 일이라고 본다.
다만 이런 반응을 볼 땐 마음이 좀 복잡해진다.
"이 정도면 충분한데 굳이 전문가가 필요해?"
"이제 그 직업은 끝났네."
잠깐, 그건 좀 다른 얘기 아닌가.
내가 60점으로 만족한다고 해서 누군가의 90점짜리 능력이 쓸모없어지는 건 아니다. 다른 분야의 전문성을 조금 빌려 쓰게 됐으면서 그 분야를 오래 공부한 사람을 우습게 보면 좀 이상하다. 반대로 전문가라는 이유로 새 기술을 무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쉬워 보이는 쪽은 상대의 노력이 안 보이고, 어려웠던 쪽은 상대의 쓸모가 안 보이는 거다.
요즘은 또 다른 종류의 딸깍도 눈에 띈다.
“딸깍 해서 10분 만에 만든 앱, 월 O천만 원 벌었어요!”
"딸깍 해놓고 자는동안 AI가 돈 벌어다 줬어요."
한쪽에서는 딸깍이라며 남의 작업을 비웃는데, 다른 쪽에서는 그 딸깍을 만능 열쇠처럼 판다. 정반대 같아도 둘은 꽤 닮았다. AI가 뭘 할 수 있고 뭘 못 하는지, 그 과정에 어떤 능력이 필요한지를 너무 단순하게 말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AI로 작업 시간이 확 줄 수도 있고, 새 수익을 만드는 사람도 분명 있다. 하지만 누가 10분 만에 뭔가를 만들었다고 처음 하는 사람도 같은 결과를 얻는 건 아니다. 그리고 10분 만에 만드는 것과 그걸로 돈을 버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이 둘을 슬쩍 섞어서 광고하면 꽤 그럴듯해진다.
새 기술이 자리 잡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그 사이엔 뭐가 가능한지 정확히 모르르는 사람들이 많고, 그 틈을 파고드는 사람이 꼭 나온다. 뒤처질까 불안한 사람한테는 지금 안 배우면 큰일 난다고 하고, 쉽게 벌고 싶은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몰라도 된다고 한다. 물론 유익한 교육도 많다. 다만 누구나 쉽게 성공한다는 말에는 의심이 조금 필요하다.
그러니 '딸깍'은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하다.
맞는 쪽은 이렇다. AI로 만든 결과물이 전부 훌륭한 창작이라고는 나도 생각하지 않는다. 별 고민 없이 뽑은 이미지도 많고, 그럴듯해 보여도 자세히 보면 엉성한 것도 있다. 그런 건 딸깍이라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틀린 쪽은 버튼을 눌렀다는 사실 하나로 가치를 정해버리는 거다. 생각해보면 사진도 딸깍인데, 우리는 어떤 사진 앞에서는 한참을 서 있고 어떤 사진은 그냥 넘긴다. 셔터를 누른 사실이 아니라 그 앞에서 뭘 보고 뭘 골랐는지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AI라고 그렇게 못 볼 이유가 있을까.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우리는 왜 남의 일이 쉬워 보이면 억울해질까. 아마 남의 일은 결과만 보이고, 내 일은 과정이 전부 보이기 때문일 거다. 내가 쌓아온 시간은 나만 알고, 남이 누른 버튼은 나도 아는 버튼이니까. 억울한 마음이 드는 건 자연스럽다. 다만 그 마음으로 남의 작업을 두 글자로 정리해버리면 좀 서둘러 보인다. 딸깍만 하면 다 된다는 말에 솔깃하는 것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요즘은 딸깍이라는 말을 만나면 하나만 궁금해한다. 이 사람은 버튼 앞에서 뭘 했을까. 무조건 비웃지도, 무조건 믿지도 말고 조금만 더 들여다보는 것. 같은 두 글자에 속지 않는 법은 아마 거기서부터일 거다.
[참고자료]
Rachel Plotnick (2018). Power Button: A History of Pleasure, Panic, and the Politics of Pushing. MIT Press. (발췌: Science Friday, “‘You Press The Button.’ The Rest Is History.” https://www.sciencefriday.com/articles/you-push-a-button-the-rest-is-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