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껴도 아무렇지 않은 그림과, 빼앗기고 싶지 않은 작품 사이
1년 전 쯤 안동에 여행을 갔다. 하회마을 골목을 걷고, 탈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다.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그 표정들이 묘하게 끌렸다.
숙소에 돌아와 아이폰 메모장을 열었다. "탈, 한국적인 소재. 이걸로 뭔가 해볼 수 있겠다" 적은 건 그 몇 줄이 전부였다. 이런 번뜩임은 그냥 흘려보내면 다시 안 온다는 걸 알아서, 나는 뭐가 스치면 일단 적어두고 보는 편이다.
그 메모가 다시 떠오른 건 1년 뒤였다.
K-Food 초상화 시리즈를 만든 뒤로, 나는 한국적인 소재를 좀 더 깊게 파보고 싶어서 바카라을 하나둘 사 모으고 있었다. 한국의 전통 문양을 다룬 바카라, 유물 도록 같은 것들. 바카라상 한쪽에 쌓여가는 바카라들을 보면서 다음 작품은 뭘로 해볼까 고민하던 중에, 메모장 속 그 한 줄이 생각났다.
'이번에는 탈. 지난번에 적어뒀던 그 소재로 해볼까'
그때부터 탈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봉산탈춤의 탈이 눈에 확 들어왔다. 빨강, 검정, 하양. 얼굴 위에 점이 박히고, 여러 요소가 한 얼굴 안에서 조화롭게 엉켜 있었다. 이걸 뜯어서 해체하면 패턴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나온 게 '현대의 탈' 시리즈다.
(작업 이야기는 아래 글에 따로 적어두었다.)
1년 가까이 내 머릿속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소재. 다시 꺼낸 뒤로는 몇 주 동안 손에서 놓지 못한 작업. 안동 골목을 걷던 두 다리, 메모를 적던 엄지, 도록을 넘기던 손, 시안을 수백장씩 살펴보던 눈. 따지고 보면 이 작품엔 내 신체 요소가 꽤 많이 쓰였다. 중간에 AI가 몇 번을 끼어들었든, 이렇게 몸을 굴려(?) 만든 작업에는 정이 안 들 수가 없다.
그럼 반대로, 몸을 거의 쓰지 않은 작업은 어떨까?
그 반대편의 대표적 예시로는 지난번에 미드저니로 만든 공갈빵 표지 이미지가 있다.
지난 글 표지로 쓴 그 공갈빵 이미지.
글의 메시지를 그대로 담은 빵이다. 사실 예상보다 꽤 예쁘게 나왔다. 나름 컨셉도 잡았고, 어떤 느낌으로 갈지 기획도 했다. 그런데 그 모든 과정이 스치듯 지나갔다. 프롬프트를 넣고, 10초 만에 뜬 이미지 몇 장 중에 하나를 골랐다. 첫 에디션이 맘에 안들어서 한번 더 돌렸다. 그리고 8컷 중에 골랐다. 그게 끝이었다.
이런 식으로 블로그에 빠르게 쓸 용도로 만든 삽화 이미지들은 언제 만들었는지, 어떤 이미지였는지도 가물가물한 경우가 많다. 누가 그대로 가져다 써도 별로 기분 나쁠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잘 쓰세요" 할지도 모른다.
둘 다 AI로 만들었다. 둘 다 컨셉도 있고 기획도 있었다. 그런데 하나는 지킬 마음조차 안 들고, 다른 하나는 절대 빼앗기기 싫다.
왜 그런걸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원인은 시간.
1년과 10초의 차이. 오래 붙잡고 있던 것에 정이 드는 건 너무 당연해 보인다.
이걸 실험으로 확인한 사람들도 있다. 이름하여 'IKEA 효과'. 사람들한테 이케아 수납함을 직접 조립하게 했더니, 이미 다 조립된 똑같은 수납함보다 자기가 낑낑대며 만든 쪽에 더 높은 값을 매겼단다. 나사 하나 삐뚤게 박힌 것까지 내 것 같아지는 그 마음, 나도 안다.
재밌는 건 이 실험에 반전이 하나 있었다는 거다. 열심히 조립해놓고 다시 부숴버리거나, 끝까지 완성하지 못한 사람들한테서는 이 효과가 싹 사라졌단다. 낑낑댄 시간은 똑같았는데도. 애착은 들인 시간만큼 알아서 쌓이는 게 아니었던 거다.
탈 작업의 1년을 가만히 되짚어봐도 그렇다. 메모장 속에서 잠자던 1년보다, 다시 꺼낸 뒤 고르고 버리던 순간들이 훨씬 선명하게 남아 있으니까. 봉산탈춤의 탈을 고르던 순간, 점과 색을 쪼개서 패턴으로 만들어보자고 한 순간, 수많은 시안 중에 이거다 싶어서 남긴 순간. 기억나는 건 전부 뭔가를 정했던 순간들이다.
심리학에는 '심리적 소유감'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사람은 내가 방향을 정할 수 있었던 것, 속속들이 알게 된 것, 나를 쏟아 넣은 것을 내 것으로 느낀다는 이야기다. 법적으로 누구 소유냐와는 별개로.
나는 여기에 내 식으로 이름을 하나 붙여봤다.
결정의 밀도
하나의 결과물 안에 내가 직접 내린 의미 있는 선택이 얼마나 촘촘하게 들어 있는지를 말한다. 왜 이 소재인지, 왜 이 색인지, 뭘 버리고 뭘 끝까지 남겼는지. 이런 질문에 내가 대답할 거리가 많을수록, 그 결과물은 점점 내 것이 된다.
공갈빵에도 나름의 결정은 있었다. 컨셉을 정했고, 한 번 더 돌렸고, 8컷 중에 하나를 골랐다. 다만 그 결정들은 몇 분 사이에 스치듯 지나갔고, 손에 꼽을 만큼의 컷 수였다. 밀도로 치면, 공갈빵 속만큼이나 헐거웠다.
비유를 들어보자면,
사진 앱에 기본으로 깔린 필터가 있다. 그리고 몇 달 동안 톤을 이리저리 만져서 완성한 내 보정 프리셋이 있다. 그림자는 얼마나 눌러줄지, 초록은 어느 정도 빼서 차분하게 갈지, 피부 톤은 어디까지 따뜻하게 올릴지. 수백 장에 적용해보고 또 고치면서 겨우 "이게 내 색이다" 싶어진 그런 프리셋.
둘 다 사진을 바꿔주는 건 똑같다. 슬라이더도 원래 앱에 있던 거다. 그런데 누가 내 프리셋 값을 그대로 따서 "제가 만든 감성 필터예요" 하고 판다면?
기본 필터를 누가 쓰는 거랑, 내 프리셋을 가져가는 거. 여러분이라면 어느 쪽이 더 화가 날까.
아마 대부분 두 번째일 거다. 숫자 몇 개 옮겨 적은 것뿐인데도 그렇다. 그 숫자 하나하나에, 내가 몇 달 동안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고른 시간들이 들어 있으니까.
AI 이미지도 비슷하다. 픽셀은 둘 다 AI가 만들었지만, 봉산탈춤 시리즈에는 1년이 들어 있다.
아티스트들이 표절에 유독 예민한 것도 이렇게 보면 조금 이해가 된다. 비슷한 그림이 하나 더 생겨서 억울한 게 아니다. 내가 오래 헤매다 겨우 도착한 자리에, 누군가 그 길을 한 발짝도 걷지 않고 결과만 들고 서 있으니 억울한 거다. 베껴 간 건 이미지 한 장인데, 빼앗긴 기분은 그 이미지까지 오면서 내린 결정의 수만큼 든다.
그래서 요즘은 작업 앞에서 가끔 스스로 물어본다. 누가 이걸 그대로 베껴 가면, 나는 얼마나 화가 날까. 그 화의 크기가 대충, 내가 그 안에 넣은 결정의 크기다.
그렇다고 10초짜리 공갈빵이 잘못된 건 아니다. 그건 원래 그러라고 만든 그림이다. 글 옆에서 제 할 일을 하고, 조용히 물러나면 된다. 모든 이미지에 1년씩 쏟을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다만 내 이름을 걸고 오래 남기고 싶은 작업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탈 시리즈는 이제 겨우 첫 장이다. 바카라상 위에 쌓인 바카라들 사이에는 아직 꺼내지 않은 소재가 한가득이고, 아이폰 메모장에도 언제 적었는지 모를 아이디어들이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아마 그걸 하나씩 꺼낼 때마다 또 한참을 고르고 버리겠지. AI가 아무리 빨리 그려줘도, 그 부분만큼은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내 이름으로 생성된 것과 진짜 내 것이 된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결정의 밀도를 재는 정확한 자 같은 건 없다. 다만 요즘 AI 작업을 붙잡고 있을 때 가끔 이런 걸 스스로 물어본다.
왜 하필 이 소재였지? - 다른 걸 골랐어도 괜찮았다면, 아직 내 이유가 약한 거다.
이번에 뭘 버렸지? - 버린 시안이 기억나지 않으면, 고른 것도 크게 고민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끝까지 안 바꾼 건 뭐였지? - AI가 몇 번을 다르게 제안해도 지킨 게 있다면, 거기가 이 작업의 중심이다.
이걸 누가 그대로 베끼면 얼마나 화가 날까? - 별로 안 난다면, 그건 원래 그렇게 쓰고 지나갈 그림일 수도 있다.
말로 설명할 수 있나? - 왜 이 색, 이 구도인지 누가 물었을 때 대답할 거리가 있으면, 그만큼 내가 들어가 있는 거다.
참고자료
Norton, M. I., Mochon, D., & Ariely, D. (2012). The IKEA effect: When labor leads to love. Journal of Consumer Psychology, 22(3), 453–460. 직접 만든 것에 더 높은 가치를 매기는 'IKEA 효과'를 이케아 수납함, 종이접기, 레고 조립 실험으로 확인한 연구.
Pierce, J. L., Kostova, T., & Dirks, K. T. (2001). Toward a theory of psychological ownership in organizations. Academy of Management Review, 26(2), 298–310. 법적 소유와 별개로 무언가를 '내 것'으로 느끼는 심리적 소유감이 통제, 깊이 앎, 자기 투입이라는 세 경로로 생긴다고 제시한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