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말릴 때, 먼저 '나는 왜 하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어차피 해봤자 안돼. 그게 될것같아?"라는 부정적인 대답이 돌아온 적이 있으신가요?
예를 들어, 회사를 그만두고 가게를 열겠다고 할 때, 늦은 나이에 다시 공부를 시작하겠다고 할 때,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아이를 키우겠다고 할 때. 가족도, 친구도, 선배도 한목소리로 말립니다.
그러면 마음이 흔들립니다.
"다들 안 된다는데.. 내가 틀린 걸까?"
반대하는 사람을 설득하기 전에, 흔들리는 마음을 다그치기 전에 먼저 할 일이 있습니다.
나에게 물어보는 것입니다.
"나는 이 일을 왜 하는가?"
반대가 많다고 해서 님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 반대 앞에서 버틸지 꺾일지는 반대의 크기가 아니라, 내가 그 일을 하는 이유가 정해야 합니다.
지난 이야기에서 우리는 결과가 보이지 않아도 계속하게 만드는 힘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결과가 안 보이는 것보다 더 견디기 힘든 순간이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까지 한목소리로 말릴 때입니다. 그 말은 대부분 나를 아끼는 사람들의 입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더 무겁고, 더 쉽게 마음을 흔듭니다.
이럴 때 우리는 보통 둘 중 하나를 합니다.
반대하는 사람을 어떻게든 설득하려 하거나, 흔들리는 내 마음을 다그칩니다.
하지만 둘 다 먼저 할 일이 아닙니다. 먼저 할 일은 나에게 묻는 것입니다.
"나는 이 일을 왜 하는가?"
먼저 그 일을 하는 목적을 알아야 내가 해야할지 말아야 할지, 그리고 얼마나 멀리 갈 수 있을지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어떤 답들이 있을까요? 도전의 성격에 따라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크게는 3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감성적 반응에 의한 도전은 쉽게 무너집니다
첫 번째 사람은 회사가 싫어서 가게를 엽니다. 상사가 싫고, 출근이 싫고, 반복되는 일이 싫습니다. 이렇게 좋다·싫다는 감정에서 시작한 도전을 감성적 반응에 의한 도전이라고 합니다. 감정은 빠르고 솔직해서 도전을 쉽게 시작하게 해 줍니다. 하지만 그만큼 쉽게 흔들립니다. 싫음은 더 싫은 것을 만나면 방향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새벽 장보기의 고단함과 "그러게 내가 뭐랬어" 하는 핀잔이 상사보다 더 싫어지는 순간, 이 도전은 멈춥니다.
2. 이성적 반응에 의한 도전도 흔들릴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사람은 이것이 옳다고 판단해서 가게를 엽니다. 이 동네에는 제대로 된 반찬가게가 없고, 맞벌이 가정이 많으니 수요가 있다고 계산합니다. 이렇게 옳다·그르다를 따져 본 판단에서 시작한 도전을 이성적 반응에 의한 도전이라고 합니다. 감정으로 시작한 도전보다 훨씬 단단합니다. 하지만 더 그럴듯한 계산을 만나면 흔들립니다. "요즘 같은 경기에 무슨 가게야", "그 돈이면 적금이 낫지" 같은 말이 내 계산보다 그럴듯해 보이는 날, 이 도전도 흔들릴 수 있습니다.
3. 의식적 반응에 의한 도전은 멀리 나아갈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사람은 믿어서 가게를 엽니다. '좋은 재료로 정직하게 만든 반찬은 사람들이 반드시 알아본다'는 믿음입니다. 이렇게 가치관, 신념, 소신, 좌우명 같은 굳건한 믿음에서 시작한 도전을 의식적 반응에 의한 도전이라고 합니다. 이 도전은 몸이 고되어도, 당장 손해를 봐도, 남들이 반대해도 멈추지 않습니다. '나는 이것을 믿는다'는 그 믿음이 계속 앞으로 밀어 주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바꾼 큰 도전들을 떠올려 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감성적으로는 매우 고통스러웠고, 이성적으로는 매우 비합리적이었다는 것입니다.
한글창제가 그랬습니다. 나라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집현전 학자들이 상소를 올려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세종은 글을 몰라 억울한 일을 당해도 호소조차 못 하는 백성을 위해 새 글자를 만들었습니다.
비행기도 그랬습니다. 사람이 하늘을 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이 당연하던 시절, 자전거 가게를 하던 라이트 형제는 수많은 실패와 추락 끝에 1903년 처음으로 동력 비행에 성공했습니다.
신대륙도 그랬습니다. 콜럼버스는 서쪽으로 바다를 건너면 새 길이 열린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여러 왕실에서 거절당하며 몇 년을 기다려야 했고, 항해 중에는 돌아가자는 선원들의 불만과 싸워야 했습니다. 그 끝에 신대륙이 있었습니다.
독립운동도 그랬습니다. 목숨까지 걸어야 합니다. 그 어떤 고통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듭니다. 모든 부귀영화를 버려야 합니다. 그래도 조선을 지켜야 한다는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었고, 결국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와 국민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이들의 도전이 감성에서 시작됐다면, 그 고통 앞에서 멈췄을 것입니다. 이성에서 시작됐다면, "말이 안 된다"는 계산 앞에서 멈췄을 것입니다. 그래도 끝까지 갈 수 있었던 건 고통보다 크고 계산보다 단단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는 인류가 화성에 갈 수 있다고 믿고 그 도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비합리적이라고 비난하고, 무모하다고 우려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될 것이라 생각하시나요?
믿음이 있다고 해서 그 믿음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선택을 하기 전에는 내 믿음을 철저하게 의심하고 따지고 물어야 합니다.
그렇게 내린 내 선택은 믿고 가야 합니다. 따져 보지 않고 버티는 것은 고집이지만, 따져 본 뒤에 믿는 것은 소신입니다. 세상을 바꾼 것은 고집이 아니라 소신이었습니다.
좋아서 시작한 일은 흥미가 사라지면 멈출 것입니다.
옳아서 시작한 일은 그릇된 계산을 만나면 멈추게 될 것입니다.
물론 의식적 믿음으로 시작한 일도 믿음이 깨지면 멈출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은 쉽게 깨지지 않습니다. 고통스러워도, 비합리적이라는 비난을 받아도 버팁니다.
만약 가볍게 해 보는 일이라면 좋아서, 옳아서 시작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인생을 건 도전이라면,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나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에게는 이 도전을 끝까지 밀어 줄 가치관, 신념, 소신, 좌우명 같은 굳건한 믿음이 있는가?"
내가 이 일을 왜 하는지, 그리고 그 이유가 얼마나 단단한지가 내 도전의 타당성을 정합니다.
한글과 비행기를 만든 사람들처럼 모든 반대를 뚫고 끝까지 가는 것만이 답은 아닙니다. 살다 보면 맞서기엔 너무 지치고, 참기엔 너무 아픈 괴로움을 만납니다. 일 때문에, 돈 때문에, 사람 때문에 '이제 그만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날도 있습니다.
다음 이야기,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에서는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세 가지 길과, 지금 내 문제에 맞는 길을 고르는 법을 이야기합니다.
Q. 다들 말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맞습니다. 그래서 반대를 흘려듣지 말고 따져 물어야 합니다. 다만 봐야 할 것은 반대하는 사람의 숫자가 아니라 반대의 근거입니다. 열 사람이 같은 걱정을 해도 근거가 없다면 그것은 걱정일 뿐이고, 한 사람의 반대라도 근거가 분명하다면 귀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그러다 실패하면요? 결국 고집 부리다 망하는 것 아닌가요?
고집과 소신은 다릅니다. 따져 보지 않고 버티는 것이 고집이고, 따져 보고도 남은 믿음으로 가는 것이 소신입니다. 그리고 같은 실패라도 내 믿음으로 선택한 실패는 왜 틀렸는지 알 수 있어 배움이 되지만, 남의 말을 따른 실패는 본질을 몰라 후회만 남는다고 생각합니다.
Q. 싫어서 시작하는 것도 충분한 원동력 아닌가요?
시작의 불씨로는 충분합니다. 하지만 싫음은 싫은 대상이 사라지거나 더 싫은 것을 만나면 금방 꺼집니다. 싫어서 시작했더라도, 하는 동안 '이 일이 왜 옳은지', '나는 무엇을 믿는지'를 찾아야 오래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