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보다 먼저 믿음입니다, 의심은 함께하기 전에만 하세요
꾹 참고 맞추며 버틴 시간은 버린 시간이 아니라, 나의 내면을 성장시킨 시간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내면이 성장한 사람이 고개를 들면, 곧 한 가지 벽을 만납니다. 타인이나 환경 등 외부 문제는 나 혼자 아무리 잘해도 풀리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협의, 협력, 협동이 필요합니다.
1970년대 중반의 미국. 컴퓨터는 방 하나를 가득 채우는 거대한 기계였고, 회사나 연구소만 가질 수 있는 물건이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생각했습니다. "평범한 사람도 집에서 쓰는 컴퓨터를 만들 수는 없을까?"
이건 잡스 혼자서는 절대 풀 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그는 회로를 직접 설계할 만큼 뛰어난 엔지니어가 아니었고, 부품을 살 돈도, 기계를 조립할 손도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을 모았습니다. 천재 엔지니어였던 친구 스티브 워즈니악, 그리고 기판 조립을 거들어 줄 친구와 가족들. 그렇게 잡스 부모님 집 창고에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렇게 협력은 시작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애플의 성공을 잡스의 안목과 워즈니악의 천재성으로 설명합니다. 하지만 그 능력보다 먼저 있었던 것이 있습니다. 서로에 대한 굳건한 믿음입니다.
잡스는 자동차를, 워즈니악은 아끼던 계산기를 팔아 첫 자금을 마련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직 아무것도 만들어지지 않은 회사에, 아직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한 서로에게 가진 것을 건 겁니다. 워즈니악은 '잡스가 컴퓨터를 판매 할 것'이라 믿었고, 잡스는 '워즈가 컴퓨터를 만들어낼 것'이라 믿었습니다. 첫 주문을 받았을 때는 부품 가게마저 돈 한 푼 없던 청년들을 믿고 외상으로 부품을 내주었습니다. 부품 가게 역시 믿었던 것입니다.
만약 서로를 의심했다면 어땠을까요? '내 설계만 가져가고 나는 버리는 거 아냐?', '저 녀석이 정말 끝까지 할까?' 이런 의심이 있었다면, 아무리 뛰어난 두 사람이라도 절대 협력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각자의 능력은 그 믿음 위에서 비로소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무거운 화분을 여럿이 함께 드는 장면을 떠올려 보세요. "하나, 둘, 셋!" 하고 다 같이 힘을 주면 번쩍 들립니다. 그런데 모두가 속으로 '쟤가 진짜 힘을 줄까? 나만 힘쓰고 손해 보는 거 아냐?' 하고 의심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무도 선뜻 힘을 보태지 않고, 화분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겁니다.
능력이 아무리 뛰어난 사람들이 모여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를 믿지 못하면 각자 몸을 사리고, 힘은 하나로 모이지 않습니다. 협동을 가능하게 하는 건 능력보다 먼저, 믿음입니다.
여기서 믿음이 무엇인지 짚고 가겠습니다. 믿음이란 직접 보고 듣지 않아도 그것을 사실로 여기는 힘입니다. 아직 오지 않은 내일, 눈앞에 없는 약속, 아직 증명되지 않은 사람을 마음속에서 진짜로 여기는 능력입니다. 창고의 청년들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 컴퓨터를 믿었던 것처럼요.
사실 우리는 이미 매일 이 힘으로 살고 있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택배 기사가 물건을 가져다줄 거라 믿고 돈부터 냅니다. 처음 보는 버스 기사에게 내 목숨을 맡기고, 한 달 뒤 받을 월급을 믿고 오늘 출근합니다. 이 모든 게 보지 않은 것을 믿는 일입니다.
더 놀라운 건, 모든 문명의 발전도 이 믿음 위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입니다. 농사가 시작되고, 한글이 만들어진 것도 믿음 때문입니다. 씨앗을 심으면 1년 뒤에 수확을 할 수 있다는 믿음, 문자를 만들면 백성들이 편해질 것이라는 세종대왕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지갑 속 지폐를 떠올려 보세요. 사실 종이 한 장일 뿐이지만, 모두가 그 종이에 가치가 있다고 함께 믿기 때문에 처음 보는 사람과도 물건을 사고팔 수 있습니다. 법과 계약도 그렇습니다. '약속을 어기면 바카라임을 진다'는 것을 모두가 믿기에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거래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수십 년에 걸쳐 쌓은 성벽과 다리도, 오늘 우리가 쓰는 전기와 인터넷도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같은 목표를 함께 믿고 힘을 보탠 결과입니다.
많은 학자들은 이 '함께 믿는 능력'이 인간을 대규모로 협력하게 만든 결정적 열쇠였다고 봅니다.
유발 하라리의 저서 《사피엔스》를 비롯해 현대 인류학 및 진화생물학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는 ‘상상된 질서(Imagined Order)’ 또는 ‘상호주관적 현실(Intersubjective Reality)’ 개념을 핵심적으로 짚고 있습니다.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무조건 상대를 믿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함께하기 전에는 최대한 의심해야 합니다. 철저하게 의심해야 합니다. 그 사람이 지금까지 어떤 약속을 지켜왔는지, 말과 행동이 같은 사람인지 끝까지 따져봐야 합니다.
하지만 함께하기로 했다면, 그때부터는 믿어야 합니다. 반쯤 믿고 반쯤 의심하며 드는 화분은 끝내 들리지 않습니다.
이는 협력 관계뿐만 아니라 모든 관계에서 핵심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친구를 사귈 때도, 연인을 사귈 때도, 결혼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최대한 의심하되, 결혼한 이후에는 내 아내, 내 남편을 믿어야 합니다. 의심은 문 앞에서 하고, 문 안에서는 믿는 것. 이것이 관계를 지키고 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순서입니다.
지난 이야기들에서 우리는 타인이나 환경 등 외부 문제를 찾아 직접 푸는 것을 '반응과 대응'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의 대응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믿음으로 손을 잡는 순간, 대응은 '여럿이 함께하는 대응'이 됩니다.
창고에서 시작된 몇 사람의 믿음은 훗날 수많은 사람이 함께 일하는 회사가 되었고, 개인용 컴퓨터는 전 세계 가정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열 사람이 마음을 모으면 열 배가 아니라 그 이상의 일이 가능해집니다. 혼자서는 잡을 수 없던 큰 짐승을 사냥하고, 혼자서는 쌓을 수 없던 성을 쌓고, 혼자서는 만들 수 없던 회사와 도시를 만든 것도 모두 이 힘이었습니다. 인간이 다른 어떤 생명보다 큰 문제를 풀어온 비결은, 힘이 세서가 아니라 함께 믿을 줄 알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믿는 건 분명 두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아무도 믿지 않는 사람은 손해를 피하는 대신, 혼자서는 닿을 수 없는 모든 가능성을 포기하게 됩니다. 함께하기 전엔 철저히 의심하고, 함께하기로 했다면 확실히 믿는 것. 그 믿음이 님 앞의 불가능을 하나씩 가능으로 바꿔 놓을 것입니다.
믿음은 사람 사이에서만 힘을 발휘하지 않습니다. 인류가 해낸 가장 놀라운 일 중 하나는 농사였습니다. 씨앗을 땅에 묻는 그 순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몇 달 뒤의 수확을 믿고 씨를 뿌렸습니다.
우리 삶도 그렇습니다. 공부, 운동, 저축, 새로 시작한 일. 열심히 하는데 당장 아무 결과도 보이지 않을 때 마음이 흔들립니다. 다음 이야기, "그만두고 싶다.. 포기하고 싶다.. 의지가 약한 걸까?"에서는 보이지 않는 수확을 믿는 사람만이 씨앗을 뿌릴 수 있는 이유를 이야기합니다.
Q. 믿었다가 배신당하면요? 저는 이미 한 번 크게 데였습니다.
그 상처는 진짜이고, 쉽게 아물지 않는다는 것도 압니다. 다만 한 사람에게 배신당했다고 모든 사람을 닫아버리면, 그 한 사람이 님의 남은 모든 가능성까지 가져가는 셈입니다. 배신의 경험은 '아무도 믿지 말라'는 교훈이 아니라 '함께하기 전에 더 철저히 의심하라'는 교훈으로 쓰일 때 가장 값지다고 생각합니다.
Q. 의심이 오히려 저를 지켜주지 않나요?
맞습니다. 그래서 함께하기 전엔 철저히 의심하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의심이 문제가 되는 건, 손을 잡은 뒤에도 계속 의심할 때입니다. 함께하기 전의 의심은 나를 지키지만, 함께하면서의 의심은 협동을 멈춥니다. 의심은 문 앞에서 하고, 문 안에서는 믿어야 합니다.
Q. 그냥 혼자 하는 게 속 편하지 않나요?
혼자 하는 길을 택하면 속은 편할지 몰라도, 내가 풀 수 있는 문제의 크기는 딱 나 한 사람만큼으로 줄어듭니다. 따라서 큰일을 하려면 반드시 협동, 협력이 필요합니다.
이는 내 그릇의 크기에 따라 결정하면 되겠습니다.
Q. 믿을 만한 사람인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말이 아니라 지켜온 약속을 보면 됩니다. 작은 약속을 하고 그 사람이 지키는지 보세요. 작은 약속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은 큰 약속도 가볍게 여기기 쉽습니다. 믿음은 한 번에 크게 주는 것이 아니라, 지켜진 약속만큼 조금씩 키워가는 것입니다.
Q. 믿음이 그렇게 중요하면, 사기꾼이나 맹목적인 집단도 믿음으로 뭉치지 않나요?
날카로운 지적입니다. 믿음은 칼과 같아서, 누가 무엇을 위해 쓰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래서 '무엇을 함께 믿는가'를 살피는 일이 중요합니다. 근거를 묻지 못하게 하고, 의심하는 사람을 내쫓는 믿음이라면 그건 협동이 아니라 맹목이라고 생각합니다. 건강한 믿음은 살펴볼 자유가 있는 곳에서 자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