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기에 울고, 끝내기로 일어선 KIA
야구의 시선
- 끝내기에 울고, 끝내기로 일어선 KIA
야구는 참 묘한 스포츠다.
한 경기의 승패가 다음 날이면 다시 0에서 시작한다.
그래서 야구에서 강한 팀은 늘 이기는 팀이 아니라, 처참하게 진 다음 날 다시 일어설 줄 아는 팀인지도 모른다.
지난 한 주 KIA 타이거즈가 그랬다.
8월 23일 고척 키움전.
KIA는 8회까지 7대2로 앞서 있었다. 승리는 거의 손에 들어온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9회말 야구가 뒤집혔다.
마지막에는 끝내기 만루홈런까지 얻어맞았다.
7대8.
5점 차 리드가 한 이닝 만에 사라진 충격적인 패배였다.
야구에서 한 경기의 패배는 그저 ‘1패’일 뿐이라고 하지만 이런 패배는 다르다. 선수들의 머릿속에 오래 남는다. 특히 시즌 막판 순위 싸움을 하는 팀이라면 자칫 분위기 전체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
그런데 이틀 뒤, 광주에서 믿기 어려운 장면이 나왔다.
이번에는 KIA가 롯데를 상대로 9회말 4대5로 뒤진 상황.
2사 만루에서 대타 이호연이 타석에 들어섰다.
그리고 타구는 담장을 넘어갔다.
‘끝내기 만루홈런.’
불과 이틀 전 끝내기 만루홈런을 맞고 주저앉았던 KIA가 이번에는 똑같은 방식으로 상대를 쓰러뜨렸다.
스코어는 8대5.
야구가 써낸 각본이라고 하기에도 절묘했다. KIA는 KBO리그에서 두 경기 연속 ‘끝내기 만루홈런’의 패자와 승자가 되는 진기한 장면의 주인공이 됐다.
그리고 다음 날 KIA 타선은 폭발했다.
롯데를 16대11로 꺾었다.
김도영은 시즌 39호 홈런을 터뜨렸다. 자신의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새로 쓰면서 이제 40홈런까지 단 하나만을 남겨두었다.
하지만 내가 지난주 KIA 야구에서 더 눈여겨본 것은 ‘39’라는 숫자가 아니다.
29일 SSG전이었다.
화려한 홈런도 없었다.
KIA는 7회까지 0대1로 끌려갔다.
SSG 선발 아빌라에게 막혀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반면 KIA 선발 아담 올러는 6이닝 3피안타 9탈삼진 1실점으로 버텼다.
그리고 8회.
박재현이 동점 2루타를 만들어냈다.
승부는 연장으로 들어갔다.
10회말 KIA는 1사 만루의 기회를 잡았다.
SSG는 김도영과 카스트로를 연속 자동 고의4구로 내보냈다.
선택은 명확했다.
‘김도영과 카스트로 대신 박정우와 승부하겠다.’
박정우에게는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야구에서는 때로 상대의 선택이 자신의 기회가 된다.
박정우는 문승원의 공을 받아쳐 중견수 앞으로 보냈다.
끝내기 안타.
2대1.
그리고 KIA는 3연승을 완성했다. 박정우에게는 프로 데뷔 첫 끝내기 안타였다.
나는 이 장면이 지난 한 주 KIA를 가장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23일에는 끝내기 한 방에 무너졌다.
25일에는 이호연이 끝내기 한 방으로 팀을 살렸다.
29일에는 박정우가 끝내기 안타로 다시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주인공도 달랐다.
슈퍼스타 김도영만의 야구가 아니었다.
이호연이 있었고, 박재현이 있었고, 박정우가 있었다. 그리고 올러가 1실점으로 버텨주었다.
강한 팀이 되려면 결국 이런 선수들이 나타나야 한다.
매일 김도영이 홈런을 칠 수는 없다.
나성범이 언제나 해결할 수도 없다.
누군가 막히면 다른 누군가가 나타나는 팀.
그런 팀이 긴 시즌을 버틴다.
29일 승리로 KIA는 63승 2무 50패, 3위를 지켰다.
이제 김도영의 40홈런이라는 큰 기록도 눈앞에 있다.
하지만 시즌 막판 KIA에게 더 중요한 것은 어쩌면 홈런 하나가 아닐지도 모른다.
‘이 팀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 믿음을 선수들 스스로 갖는 것이다.
야구는 실패가 가장 많은 스포츠다.
열 번 가운데 세 번만 안타를 쳐도 좋은 타자이고, 아무리 좋은 마무리 투수라도 언젠가는 역전타를 맞는다.
그래서 야구에서 중요한 것은 실패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실패한 다음에 어떻게 돌아오는가.’
끝내기 만루홈런을 맞았던 KIA가
끝내기 만루홈런으로 일어섰고,
다시 끝내기 안타로 3연승을 만들었다.
지난 한 주 KIA 야구를 보며 다시 생각한다.
야구도, 인생도
넘어지지 않는 것이 강함은 아니다.
넘어진 자리에서 얼마나 빨리 다시 일어서느냐.
어쩌면 그것이 진짜 강함인지도 모른다.
2026년 가을을 향해 가는 KIA에게
지난 한 주는 단순한 3연승 이상의 의미가 있어 보인다.
‘끝내기에 울었던 팀이,
이제 끝내는 법을 다시 기억하기 시작했다.’